연평도 사태와 관련, 청와대와 정부, 한나라당 등 한국 여권의 지도부 가운데 군 면제를 받은 사람들이 바늘방석에 앉아있는 듯한 모습이다. "군대도 안 가본 주제에…"라는 조롱 섞인 비난이 터져나오기 때문이다.

안상수 한나라당 대표는 '보온병 포탄' 해프닝으로 망신을 당했고, 원세훈 국가정보원장은 '북 도발 첩보 혼선' 등으로 곤욕을 치렀다. 그들 역시 병역미필자다.

군대도 안 갔다온 사람들이 안보를 책임지고 있으니 민심이 좋을 리 없다.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군복무 면제를 받은 연예인들만 나무랄 것도 못된다.

오죽했으면 홍사덕 의원이 청와대 참모들을 향해 '개새끼들'이라는 직격탄을 날렸을까 싶다.

벌써부터 내년 총선은 후보들의 '군 복무'가 표심을 좌우하게 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미국서도 의원들의 병역이 논란이 된 적이 있었다.

장본인은 앤드루 제이콥스. 인디애나주 출신으로 1949년부터 2년 동안 한 차례 하원의원직을 지냈다. 민주당 소속인 그가 재선을 포기한 이유는 6ㆍ25 전쟁 때문. 중공군의 참전으로 한반도에 살육의 광풍이 몰아치자 의사당을 뒤로 하고 해병대에 자원입대, 전선으로 향했다.

의정활동은 2년에 불과해 눈에 띄지 않았지만 베트남전이 한창이었던 1960년대 말, 이른바 ‘제이콥스 리스트’를 발표해 전국적인 스타로 떠올랐다. 연방의원들 중 병역기피나 면제자들을 색출해 명단을 만들었다.

‘리스트’는 정치권에 일대 회오리바람을 몰고 왔다. 명단에 오른 상당수가 보수 공화당 의원들이었다. 미국의 영광을 외치며 확전을 주장하는 공화당 의원들이 실제로는 병역기피자였던 것이다.

전혀 뜻밖의 결과가 나오자 미국인들은 깊은 충격을 받았다. 반면 평화를 주장하는 진보ㆍ좌파 성향의 민주당 의원들은 대부분 2차세계대전이나 한국전 참전용사들이었다.

‘제이콥스 리스트’는 그해 11월 선거에서 대폭발했다. 분노한 유권자들이 ‘리스트 의원’들을 몽땅 낙선시켜 정치판을 뒤흔들어 놨다.

제이콥스가 미국 정치판에 유산처럼 남긴 말이 ‘치킨 호크(chicken hawk)’다. 겁이 많은 ‘병아리’와 용맹한 ‘매’…. 자신은 전쟁이 무서워 징집을 기피했지만 남들에겐 국가와 자유수호를 위해 전쟁터에 나가라며 등을 떠민 정치인들을 싸잡아 비난한 것이다.

제이콥스는 치킨과 호크에 빗대 이들 정치인들의 비도덕적이고 위선적인 행태를 신랄하게 꼬집었다.

제이콥스가 되살아난 건 ‘테러와의 전쟁’ 때문이다. 부시 행정부의 중심축인 신보수, 이른바 ‘네오콘’들은 알고 보니 대부분 ‘치킨 호크’였다. 딕 체니 부통령을 비롯해 전쟁을 총괄지휘하는 도널드 럼스펠드 국방장관조차 병역기피자로 들통났다.

심지어 어느 ‘치킨 호크’는 북한이 즐겨 쓰는 ‘불바다(sea of fire)’ 발언을 해 빈축을 샀다. ‘악의 축’으로 분류된 테러국가들에 3일간의 최후통첩을 보내자고 목소리를 높였다. 말을 안들으면 주민대피 경고방송을 한 뒤 나흘 째 되는 날부터 융단폭격을 해 이 나라들을 ‘불바다’로 만들자는 섬뜩한 주장을 폈다.

‘치킨 호크’ 중 최대의 압권은 하원의장을 지낸 공화당의 뉴트 깅리치. 왜 징집에 응하지 않았냐는 질문에 “베트남 보다는 의회에서의 전투가 더 치열했기 때문”이라고 둘러대 야유를 받았다.

걸프전 승리의 주역 콜린 파월 전 합참의장도 ‘치킨 호크’에 밉보여 결국 국무장관직에서 떨려나야 했다. 한국서 군대갔다 온 사람과 안갔다 온 사람이 군대얘기를 하면 안 간 사람이 이긴다는 우스개가 미국서도 통하는 모양이다.

말로만 ‘노블리스 오블리주’(사회지도층의 도덕적 책무)를 외쳐대는 ‘치킨 호크’들. 연평도 사태를 계기로 한국서도 '리스트’가 나올법 하다.

박현일 기자, ukopi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