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최고의 베스트셀러는 단연 <정의란 무엇인가(Justice: What’sthe right thing to do?, 김영사)>이다. 이후 저자인 하버드대 정치철학 교수인 마이클 샌델(Michael J. Sandel) 열풍이 불었고, 그의 저작이 잇따라 소개되고 있다.

‘지금 왜 우리에게 도덕이 화두일 수밖에 없는가?’라고 묻는 샌델의 또다른 베스트셀러는 <왜 도덕인가?(Public Philosophy: Essays on Morality in Politics·한국경제신문)>이다. 샌델은 이 책에서 민주사회에서 도덕성의 의미와 본질, 이를 둘러싼 다양한 논쟁, 나아가 공공생활을 움직이는 도덕적·정치적 딜레마를 탐구하고 있다. 개인의 권리와 선택의 자유는 도덕적, 정치적 삶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규범이지만, 과연 그것들이 민주사회를 위한 적절하고도 충분한 기반이 될 수 있는가, 우리는 좋은 삶에 관한 올바른 정의(定義)없이 공공생활에서 발생하는 난해한 도덕적 의문들을 논리적으로 풀어나갈 수 있는가 등을 따져본다.

샌델은 1부 ‘도덕이란 무엇인가’의 <종교와 도덕> 파트에서 ‘생명의 의미는 누가 부여하는가’를 묻고, 존엄사와 배아 복제, 낙태와 동성애 문제를 다루고 있다. 그의 첫 질문은 ‘당신은 도덕적으로 허용할 수 있는가’이다.

다소 아쉽지만, 그는 동성애 자체에 대한 도덕성 여부를 따지지 않았다. 대신 관련 판결을 역사적으로 따라가면서 논지를 전개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보다 동성애 논쟁이 깊고 오래된 미국에서의 ‘동성간 성행위 금지’가 ‘허용’으로 바뀌는 역사를 따라가다 보면, 동성애 금지법이 위헌 판결을 받았을 뿐 허용한 것이 아니고, 오히려 판결에서 도덕적 가치를 배제시키는 어려움을 이야기하고 있는데도 마치 동성애 허용으로 주장이 흐르는 듯한 착각이 일어나기도 한다.

도덕적 판단 피하고, ‘개인의 자유’에 초점 맞춰

낙태와 동성애를(샌델은 낙태와 동성애를 같이 다루고 있다) 금지하는 법을 옹호하는 사람들은 ①낙태와 동성애가 단순히 도덕적으로 옳지 않으므로, ②도덕적 판단은 피하는 대신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정치적 다수가 법을 규정할 수 있는 권리를 지니므로 등 두 가지 이유를 댄다. 이 법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①낙태와 동성애가 도덕적으로 허용할 수 있는 일이며 때로는 바람직하므로, ②도덕성과 관계없이 각 개인에게는 어떤 행동을 할지 여부를 스스로 선택할 권리가 있다고 주장한다.

샌델은 ①을 ‘단순한 논리’, ②를 ‘세련된 논리’라 부른다. 단순한 논리는 법의 공정성 여부가 금지하거나 지지하는 행동의 가치에, 세련된 논리는 정치적 다수의 지배(민주주의)와 개인의 권리(자유)에 관한 일반적인 이론에 각각 달려있다.

‘무엇이 좋은 삶인가’, 즉 ‘낙태나 동성애를 허용해야 하는가’와 관련해 법이 중립을 지켜야 한다는 측은 좋은 삶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개인을 존중하기 위해 정부는 중립을 지켜야 한다는 ‘자원(自願)주의’나 사람들은 도덕성과 종교에 관해 저마다 의견이 다를 수밖에 없으므로 정치적 합의나 사회적 협력이 도출되도록 정부가 간섭하지 말아야 한다는 ‘최소주의(실용주의)’ 입장에 선다.

과거 국가에 의해 제한됐던 사생활은 낙태의 경우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국가에 의해 침해받지 않도록 개인의 권리가 향상되는 방향으로 진행돼 왔고, 이에 따라 법에 의한 ‘금지’에서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여성의 결정권’으로 확장됐다. 바로 자원주의 경향이다. 당시 사생활 보호권을 개인의 자율권과 동일시하는 경향이 강했지만, 연방대법원은 이를 동성애에까지 확장시키는 데는 거부했다. 화이트(White) 판사는 조지아 주민들이 “동성애는 부도덕하며 용인할 수 없는 행위”라는 신념을 법으로 구체화할 수 없다는 주장은 옳지 않다고 선언했다.

자원주의와 달리 최소주의에서는 사회적 협력을 확보하기 위해 도덕적·종교적 주제를 배제하려 하지만, 잇따른 연방대법원의 판결 논지는 이러한 배제가 어려움을 보여준다. 대법원은 낙태와 관련해 “의학·철학·신학자들도 생명 시작 시점이 언제냐는 합의에 도달하지 못한 현 상황에서 사법부가 그 답을 밝혀낼 입장은 아니다”고 중립적 입장을 취하는 듯 했지만, 잠재적 생명체에 대해 ‘생존 능력’이 가장 중요하다는 ‘대법원만의 또다른 견해’로 대체하고 말았다.

동성애 역시 ‘사적인 권리’로 초점이 변질

▲동성애에 관해 다룬 영화 <브로큰백 마운틴>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동성애 문제도 자원주의와 실질적인 관점에서 논의된다. 법원은 사생활 보호권을 동성애까지 확장하는 것을 거부하면서 “동성애자가 추구하는 권리가 사생활 보호와 관련된 이전 판례들에서 지지된 가족, 결혼, 출산 등 권리들 중 어느 것과도 유사한 측면이 없다”고 판결했는데, 샌델은 “이같은 법원 입장에 반대되는 변호를 하려면 사생활 보호권을 인정받은 관습들과 아직 보호받지 못하는 동성애 사이의 연결점을 제시해야 한다”고 다음과 같은 논리를 제시한다.

자원주의는 ‘타인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한 보편성과 상관없이 누구나 자신의 사적인 인간관계를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며, 동성애와 이성애 모두 자율적인 개인의 선택을 반영한다는 점에서 크게 다르지 않다고 본다. 실질적 관점은 ‘전통적인 이성간 결혼의 가치있는 많은 측면들이 동성간 결혼에도 존재한다’고 주장하고, 두 가지를 똑같이 인정해야 하는 이유는 둘 다 중요한 인간의 선을 실현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사적인 공간에서 즐길 권리’도 하나의 근거가 된다. 법원은 개인이 사적인 공간에서 음란물을 소지할 권리를 인정받은 판결 이후, 성행위 권리 역시 존재한다고 결론내렸다. 법원은 당시 “동성애에 관한 어떤 신학적, 도덕적·심리적 판단에 대해서도 견해를 표멍하지 않는다”고 전제했다. 샌델은 이처럼 도덕성을 다루지 않고 배제하는 ‘관용 논리’에 대해 “동성애를 죄악으로 보는 사람들도 자신의 가치관을 바꾸도록 설득당할 필요가 없으며 그저 사적인 공간에서 동성애를 즐기는 이들을 묵인하면 된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러한 장점에도 중립적 관용은 ①현실적으로 도덕적 합의 없이 자율권만을 토대로 사회적 협력이 확보될지 확실치 않고, ②권리 존중의 질과 관련된 문제로 위 판결에서 음란물 소지 권리와 동성애를 동일시했듯, 동성애를 천박하게 폄하할 수밖에 없다는 난점이 있다. 도덕적 논쟁을 배제한 초점은 ‘성적 만족’의 허용으로 가 버린다.

또 하나의 문제점으로는, 도덕을 배제하면 동성애 자체에 대한 반대의견이 전혀 공격받지 않게 되는 점을 들 수 있다. 그러면 동성애에 찬성하는 법원 판결조차 동성애자들에게 빈약한 관용 이상의 의미를 부여하기 힘들어지는 역설적 상황이 나타난다.

2003년, 동성애 금지법이 위헌 판결을 받다

샌델의 동성애 이야기는 지난 2003년의 가장 ‘따끈따끈한’ 판결로 마무리된다. 연방대법원에서 텍사스 주의 동성간 이른바 ‘비정상적인 성행위’ 금지법을 위헌 판결한 것이다. 법원은 동성애금지법이 동성애자들의 삶을 비하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에 반대한 스칼리아(Scalia) 판사는 당시 “법원이 동성애에 전통적으로 따라붙는 도덕적 오명을 씻어내려는 일부 동성애 운동가들의 주장에 편승했고, 문화전쟁에서 한쪽 편을 들고 있다”고 비난하면서 “법원이 동성애 행위에 대한 도덕적 반대를 거부하면 동성간 결혼 금지를 정당화하기도 힘들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동성애 금지법을 ‘금지’하려는 순간, ‘도덕’이 어둠 속에서 드러난 것이다. 스칼리아 판사는 자신이 문화전쟁에서 어느 편도 들지 않지만, 동성애금지법을 ‘다수주의’라는 이름으로 지지하면서 “다수주의적 성도덕을 장려하는 것은 정당하고, 법원은 그저 중립적 관찰자로 민주주의 원칙이 수호되도록 이끌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샌델은 이에 대해 “동성애를 불명예스러운 것으로 간주하는 행동이 정당하다는 스칼리아의 주장은 다수주의 인식을 넘어선다”며 “적어도 다수주의에 근거해 동성애를 금지하자는 주장은 동성애가 비도덕적인 행위인 경우 훨씬 강력한 호소력을 갖는다”고 말한다. 하지만 동성애가 비도덕적이지 않을 경우 허용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지 않은가?

‘도덕이란 무엇인가’에는 <종교와 도덕> 이외에 <경제적 도덕>, <사회적 도덕>, <교육과 도덕>, <정치적 도덕> 등에서 복권과 도박, 소수집단 우대정책과 공정한 법 집행, 교육의 시장논리와 공정성, 정치인의 거짓말과 케네디의 약속 등 다양한 이슈들을 다루면서 명쾌하고 정연한 논리로 이들을 정면 돌파한다.

하지만 <종교와 도덕>, 특히 낙태와 동성애 부분에서는 가장 길게 설명했음에도 이들 항목과 달리 다소 불투명하게 끝이 난다. ‘도덕이란 무엇인가’ 낙태와 동성애 항목에서 그는 동성애 자체보다 현실에서 도덕을 배제하는 것이 어려움을 설명하려는 듯 하다. 동성애가 ‘도덕적으로 옳으냐’ 하는 문제는 아무래도 신학자들에게 들어야 할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