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 이전: 하나님의 택하심

일반적으로 택함, 혹은 선택의 교리로 알려져 있는 하나님의 택하심에 관한 말씀은 신, 구약 성경 도처에 나온다. 그러나 그 하나님의 택하심이 시간적으로 창조 전에, 영적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 진 것이라고 하는 것을 알려 주는 확실한 진술은 에베소서 1장 4절 말씀에 나온다. 하나님께서 예수를 믿는 사람들에게 주시는 “신령한 복(들),” 곧, 영적 복들 중 하나가 창조 전부터 하나님께서 예수 믿는 사람들을 그리스도 안에서 택하셨다는 것이다. 이런 하나님의 영적 활동에 대한 지식은 객관적 진리로서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인정하고 믿을 때만 마음으로 받아 들일 수 있다. 하나님의 계시가 아니면 알 수 없는, 인간의 경험과 이성의 추론 영역 밖에 속하는 지식이기 때문이다.

“택하다’라는 말은 “선택하다,” “뽑다,” “고르다”에 해당하는 말이다. 열이면 열, 백이면 백을 다 택할 수도 있고 택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래서 칼 발트같은 신학자는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열외 없이 모든 사람들을 다 구원하도록 선택 하셨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성경에서 “택하다”라고 하는 말을 사용 할 때는 많은 사람들 중에서 얼마를 골라 뽑아 냈다는 뜻이다. 하나님께서 이 땅에 태어난 모든 사람들을 다 택하여 구원 하시는 것이 아니라, 그 중의 얼마를 뽑아서 구원 하시기로 하셨다는 말이다. 바로 이 점이 하나님의 택함의 교리에 대한 감격과 반발을 동시에 불러 일으키기도 한다.

택함의 교리는 사람들에게 복도 되고 화도 된다. 택함의 교리를 성경이 말씀하고 있는 그대로 믿는 사람들에게는 하나님께 뽑힘을 받았다고 하는 사실이 말로 다 할 수 없는 하나님의 은혜요 축복이다. 이 믿음을 가진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하나님께서 어떻게 창조 전부터 나 같은 죄인을 구원 하실 생각을 하고 계셨다는 말인가!” “어떻게 내가 뽑힘을 받는 은총과 영광을 누리게 되었는가!” 라고 감격해 한다.

그러나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 모두가 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의 택함에 대하여 말하면, 하나님의 공의와 공평에 대하여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 사람들은 종종 이렇게 반문한다. “사람들이 누구나 다 똑같은 죄인들이라면, 하나님께서 누구나 다 똑같이 구원하시거나 벌을 주셔야 공평하신 것이 아닌가?” “똑같은 죄인들인데 누구는 구원하고 누구는 버려 둔다고 하면 공의롭다고 할 수 있는가?” “세상을 보라. 이 세상에는 예수를 믿는 사람들보다 예수를 믿지 않는 교회 밖에 있는 사람들이 비교 할 수도 없을 많큼 많은데, 선택 받아 예수를 믿게 된 사람들만 구원을 받고, 나머지 사람들은 다 버림을 받았다고 하면, 다수를 버리고 소수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을 사랑의 하나님이라고 할 수 있는가?”

하나님을 변호하기 위한 말들인 것처럼 보이는 이런 질문들은 종종 신학적 논쟁의 주제들이 된다.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질문은 만민구원론의 기초를 제공한다. 하나님의 공의나 공평에 대한 질문들은 하나님의 택하심의 근거가 인간의 자유의지와 행위로 말미암는 것이라고 하는 신학의 단초를 제공한다. 그러나 만민구원론은 하나님의 공의를 부정하는 결과를 낳게 되고, 인간의 자유의지와 행위에 대한 강조는 하나님의 긍휼과 은혜에 대한 감격에서 우러나는 자발적인 감사와 예배를 하나님께 드릴 수 없게 한다. 또 이웃을 향하여 사랑을 베푸는 것이나 선을 행하는 것조차도 전적으로 하나님의 택하심을 따라 주어진 구원의 결과로 말미암는 것이라고 말 할 수 없게 된다. 여전히 하나님의 공의와 맞물려 있는 구원에 이르기 위한 행위가 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사도 바울이 본문에 바로 이어 나오는 5 절 말씀에서 하나님의 예정을 말씀 할 때, 그 하나님의 예정이 그의 기뻐하시는 뜻대로 된 것이라고 하는 것을 언급한 것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라고 본다. 하나님께서 구원하실 자를 택하거나 예정한 것은 장래 태어나게 될 사람의 됨됨이나 그 행위에 근거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뜻에 기초하고 있다는 것이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 9장에서도 같은 택함의 원리를 에서와 야곱의 관계를 실례로 들어 설명하였다. 로마서에서는 택함이 전적으로 사람을 구원으로 부르시는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은 것임을 강조한데 비해서, 에베소서에서는 바로 그 하나님의 택하심이 시간적으로 볼 때 창조 이전에 있었던 영적 사건이라고 하는 것을 강조 한 것이다. 사람의 구원은 확실하게 전적으로 하나님께서 결정하신 하나님의 은총과 축복이라는 말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우리가 택함을 받은 것을 알 수 있는가? 성경 전체를 통하여 여러 가지로 장황하게 말 할 수 있겠으나, 신약의 몇 곳 말씀을 참고하여 간략하게 말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들었을 때, 예수가 구세주라고 믿어지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 하신다고 하셨는데 (고린도전서 1:21), 예수를 믿는 믿음은 모든 사람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데살로니가후서 3:2). 둘째로, 예수를 믿고 난 후 하나님께서 주신 영원한 생명이 확신되는 것이다 (사도행전 13:48). 셋째로, 신앙 생활 속에 “믿음의 역사,” “사랑의 수고,”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의 인내”가 드러나는 것이다 (데살로니가전서 1:3,4). 사도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인들에게 이런 신앙생활의 모습이 그들의 신앙생활 속에 나타나고 있다고 하는 것을 언급하면서, 그런 것들이 바로 하나님께서 그들을 택하신 것이라고 하는 것을 알게 해 주는 외적 현상들이라고 말씀한다.

정리하면, 우리가 택함 받은 사람이라고 하는 것을 알 수 있는 길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향하여 진솔하게 세 가지 질문을 해 보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나는 예수를 진정으로 나의 구세주라고 믿는가? 나는 영원한 생명을 받은 사람이라고 확신하는가? 나는 믿음, 사랑, 소망에 뿌리를 두고 있는 삶의 선하고 아름다운 열매들을 지속적으로 맺어 가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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