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이 모르는 사이에 훌쩍 커버렸다. 많이 컸다 싶어 키를 재어 보아도 늘 한 치 아래였던 둘째 아들이 어느새 나를 앞질러 버렸다. 정말 눈 깜짝 할 사이에 일어났다. “어? 존귀가 아빠보다 커 보이네.” 저녁을 먹기 위해 식탁에 다가오는 아들보고 아내가 한 마디 한다. 나는 그런 이변이 일어날 수 없다고 주장하며 그 자리에서 일어나 아들과 뒤로 서서 키를 쟀다. 아내가 딱딱한 공책을 가지고 오더니, 아들과 나의 머리를 치며 눌러 본다. 온 식구들이 저녁 먹다말고 누가 더 큰가 초미의 관심이 집중된다. 잠시 후 아내가 “와~ 존귀가 더 크다!” 얼마나 크게 소리치던지, 난 귀청이 떨어지는 줄 알았다. 아들이 자기 남편보다 키가 큰 것이 그리 좋았나 보다. 신이 나서 어쩔 줄 몰라 하는 아내의 모습을 보면서 남편은 남인가 하는 야릇한 느낌마저 들었다. 막내딸이 옆에서 한 수 거든다. “그럼, 우리 집에서 존귀 오빠가 제일 커?” “아빠가 2등이네.” 아내는 아들이 대견스러운 듯 저녁식사 하는 아들 등을 자꾸 쓰다듬는다.

최근 들어 둘째 아들은 점심때마다 집에 들어와 엄마가 직접 해주는 맛있는 식사를 했었다. 내 아내를 너무 부려 먹는 것 같아서 맘이 찜찜했는데, 그것이 효력이 있었던지, 드디어 내 키를 따라 잡은 것이다. 나도 아들이 나보다 더 크다는 사실을 확인한 후 얼마나 기쁘든지, 식사 후 따로 아들을 내 방에 데리고 올라가 함께 거울 앞에 서서 “어쭈, 이것 봐라... 존귀 어깨가 아빠 어깨보다 올라갔네?” 하며 쥐어박는 듯 아들을 밀쳤다. 아들도 싫지 않았는지, 아니 내 속 마음을 읽었는지, 넘어지는 척 하면서 기분이 좋아 실실 웃기만 한다.

6년 전 쯤으로 기억된다. 큰 아들이 나랑 농구경기를 일대 일로 한 번 벼르다가 붙은 때가 있었다. 그 전까지만 해도 기를 쓰고 해도 나를 이길 수 없었던 아들이, 그땐 내가 기를 쓰고, 악을 써도 아들을 이길 수 없었다. 나를 처음으로 이긴 아들이 너무 좋아서 펄펄 뛰던 모습을 보면서, 난 그때도 나를 이긴 아들 때문에 기분이 너무 좋아서 아들보다 더 높이 뛰고 싶었다. 이렇게 아버지들은 아들들이 자기를 추월하는 것이 자랑스럽고, 대견스럽나 보다.

얍복강 나루터에서 하나님과 씨름하다가 환도뼈를 얻어맞고 T-KO 당한 야곱은 그 후 평생 다리를 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하나님은 패한 야곱에게 “네가 이겼다”고 우기시며 이름도 이스라엘이라고 명명하셨다. 이해 못할 일이지만 하나님도 아버지이신 것이 분명한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