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자들과 목회자들이 모여 미래이민신학의 방향을 논했던 지난 ‘제 2회 이민신학심포지엄’이 마쳐진 후 오랫동안 뇌리에서 떠나지 않는 주제가 있었다. 바로 ‘신학과 이민교회의 통합’에서 언급됐던 ‘이민교회의 강단 위기’였다.

신학과 목회현장의 공통 분모를 찾을 때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영역이 ‘설교’라는 점에서 발제됐다는 용이성의 측면을 차치하고라도 이 같은 이민교회 강단위기를 공개적으로 언급한 적은 거의 없던 터라 기독교신문 기자로서 귀가 솔깃해 지는 동시에 가슴이 먹먹해 지는 것을 부인할 수 없었다.

신학자패널토의를 통해 이민교회 설교에는 너무나 인위적인 요소가 많이 가미돼 왔다고 지적한 주승중 교수(장로회신학대학교, 예배설교학)는 “설교자가 자기 말을 하고 그것을 증명하는 자료로 성경을 인용하는 모습이 있어 왔다. 이런 모습이 결국 이민교회 강단의 위기를 초래하고 말았다”고 했다. 또 인본주의적 설교와 포퓰리즘적 설교가 현대설교학의 흐름이기도 하지만, 이민교회는 주님이 원하시는 메시지의 본문에 치중하기 보다 메시지를 듣는 청중이 무엇을 듣기 원하는 가, 곧 오늘의 상황에 더 큰 관심을 가지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물론 모든 이민교회가 인본주의적 설교를 전하고 있는 것은 아니기에 ‘이민교회=인본주의적 설교’라고 성급히 일반화 해 버리는 오류는 피한다 하더라도, 냉정하게 현실을 돌아볼 필요는 충분히 있다고 생각된다.

실제로 주 교수의 이 같은 지적은 우연히 만나 대화를 나누게 된 한 이민자의 한탄 섞인 말을 떠올리게 했다.

이민 온 지 10년이 다 되어 간다는 그는 지금은 교회를 다니지 않는다고 했다. 어린 시절 주일학교의 소중한 기억을 갖고 평생을, 심지어 교회를 다니지 않는 지금까지도 신실하게 주님을 섬기고 있다고 자부하지만 교회 만은 잠시 쉬고 있다는 그의 역설적인 말을 되물은 기자는 돌아온 그의 대답을 듣고 곱씹고 또 곱씹었던 기억이 난다.

그는 “이민 온 후 방황 많이 했다. 실제로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선포하는 교회를 찾기 힘들었다”며 “이렇게 말하면 충격 받을 수도 있지만, 실제로 하나님 말씀을 말씀으로 선포하는 이민교회가 없다. 기독교의 핵심인 고난과 희생에 대한 강조가 없다”고 말했다.

하나님의 말씀을 좇고자 하는 한 크리스천이 ‘방황’과 ‘하나님 말씀에 대한 그리움’이라는 단어를 가슴 속에 새기며 걸어야 했을 지난 10년의 신앙여정이 눈에 선하게 그려지는 듯 해, 그 한 사람의 잘못이라고 치부하고 넘어가지 못했던 것이다.

이와 맥락을 같이 하는 한 가지 사례가 있다. 최근 애틀랜타 지역에서 개척 3년 만에 200여명 대로 성장한 교회를 조사하면서 공통적인 담임 목회자들의 증언을 들었다. 그들은 모두 약속이나 한 듯 하나님의 말씀을 말씀 자체로 전하는 교회를 지향하며, 때로는 가슴을 찌르는 회개를 일으키는 말씀과 성경교육에 중점을 두고 있었다. 부흥하는 교회 담임목회자들 모두 현 시대 말씀에 대한 갈급함을 호소하는 교인들이 늘고 있다는 인식을 하고 있었던 터였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히 4:12)’

오늘 날 기독교인들의 삶에 이 성경구절이 체험적으로 다가오게 만들기 위해서는 주 교수의 말처럼 “설교자들이 철저히 말씀으로 돌아가는” 또 한 번의 개혁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