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기독교 역사상 유래없는 부흥을 일군 한국 교회. 부흥의 가장 강력한 원동력의 하나로 ‘새벽기도’를 꼽는다. 본지는 미주한인교회의 부흥을 염원하며 부흥의 바람을 일으킬 새벽 기도회 현장을 찾고, 은혜의 말씀을 전하고자 한다.
열네번째로 찾은 교회는 퀸즈한인교회(월~금 5시 30분)다. 이규섭 목사가 시무하는 이 교회는 ‘변화와 성장, 건강한 공동체, 함께하는 사역’을 표어로 한다. 이 목사는 지난 2009년 1월 퀸즈한인교회 3대 담임 목사로 부임했으며, 개혁주의에 입각한 철저한 ‘신본주의 목회, 하나님 말씀 중심의 목회, 제자 삼는 일을 감당하는 성경적 교회관을 따르는 목회’가 이 목사의 목회철학이다.
11월 19일 이 목사는 이사야서 65장 1절부터 7절을 본문으로 말씀을 전했다.
이사야 65장
1절 나는 나를 구하지 아니하던 자에게 물음을 받았으며 나를 찾지 아니하던 자에게 찾아 냄이 되었으며 이름을 부르지 아니하던 나라에게 내가 여기 있노라 내가 여기 있노라 하였노라
2절 내가 종일 손을 펴서 자기 생각을 좇아 불선한 길을 행하여 패역한 백성들을 불렀나니
3절 곧 동산에서 제사하며 벽돌 위에서 분향하며 내 앞에서 항상 내 노를 일으키는 백성이라
4절 그들이 무덤 사이에 앉으며 은밀한 처소에서 지내며 돼지고기를 먹으며 가증한 물건의 국을 그릇에 담으면서
5절 사람에게 이르기를 너는 네 자리에 섰고 내게 가까이 하지 말라 나는 너보다 거룩함이니라 하나니 이런 자들은 내 코의 연기요 종일 타는 불이로다
6절 보라 이것이 내 앞에 기록되었으니 내가 잠잠치 아니하고 반드시 보응하되 그들의 품에 보응할찌라
7절 너희의 죄악과 너희 열조의 죄악을 함께 하리니 그들이 산 위에서 분향하며 작은 산 위에서 나를 능욕하였음이라 그러므로 내가 먼저 그 행위를 헤아리고 그 품에 보응하리라 여호와가 말하였느니라
다음은 설교 말씀이다.
'죽은 나무에 봄은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봄이 되면 죽은것 같았던 나무들에 다시 싹이 나고 잎이 피는 모습을 우리가 봅니다. 죽었다면 아무리 봄이 와도 꽃을 피울 수가 없다는 말입니다. 인간은 죽은 나무였습니다. 꽃을 피울 수 없는 나무였지만 하나님께서 꽃을 피우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 인간은 겸손히 머리를 조아리고 사는게 당연한 이치입니다.
본문은 그렇지 못했던 이스라엘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부름에 하나님이 침묵하셨다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본문은 탄식의 답변인데 그렇지 않다고 하나님이 답변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거꾸로 하나님이 이스라엘 민족을 찾았지만 그들이 대답치 않았다고 합니다.
이사야서 64장까지 보면 하나님을 찾았다고 하는데 하나님은 그들이 하나님을 찾지 않았다고 합니다. 본문 1절에서 역설적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구하지도 찾지도 않는 그런 민족, 이것은 이방 사람을 말하는 것일 겁니다. 이 말씀은 참 놀라운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름도 모르는 이방 나라에 "내가 여기 있노라"고 말씀하시겠다는 건데 그 이유는 2절부터 나와있습니다. 과거에 하나님을 찾지도 말하지도 않았던 이방인들이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을 찾아야했을 이스라엘 민족이 하나님을 찾지 않고 이방을 섬기고 우상을 섬기는 것에 빠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 제사하는 방법과 장소는 지정되어 있었습니다. 그 방법대로 제사를 드리도록 지시하셨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민족을 보면 우상에게 제사를 지내고 있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노를 일으켰습니다. 4절, 5절에 교만한 그들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이방과 우리는 다르다며 우월감을 가지고 살고 있었습니다.
이런 자들을 5절에 ‘내 코의 연기요 종리 타는 불’이라고 표현합니다. 지금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화가났다는 겁니다. 그래서 코에서 불이 나올 정도로 이스라엘 백성이 교만하고 그들의 모습에 대해서 잠잠치 아니하시고 보응하시겠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포로로 끌려가는 것을 경험케하시고 그들이 고난을 당하게 하십니다. 그런데 특이한 방법이 있습니다. 그것은 이방 나라에 복을 주심으로 인해서 이방 나라를 질투하게 하는 방법입니다. 로마서 10장을 보면 오늘 말씀이 그대로 인용되는 것이 있습니다. '오직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겁니다.
바울은 아직도 유대인들이 완악한 가운데 복음을 믿지 아니하여 이방에게 믿음을 주셔서 질투하게 했다고 합니다. 롬 10:19절 미련한 백성으로서 노여케 하리라. 이해할 수 없지만 그런 것을 통해서 이스라엘이 질투하고 노엽게 되는 일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그래서 '겸손하라'는 말이 나옵니다. 이제 저와 여러분이 영적 이스라엘이 됐습니다. 그런데 유대인처럼 똑같이 되고 있다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다른 사람보다 낫다고 하고, 그래서 높아집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을 판단하고 조롱합니다. 이스라엘이 선민 의식에 빠져 타락하여 그 나라가 어려움을 받는 것처럼, 오늘날 우리도 같은 일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한민족을 돌아봅시다. 우리는 소망이 없었던 그런 나라였다. 이제는 어느 나라보다 복받는 나라가 됐습니다. 그런 축복을 우리가 받게 됐는데 문제는 늘 겸손히 무릎꿇고 겸손하게 살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가 교만해졌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처럼, 마치 자기의 공로로 된 것 처럼 하나님의 은혜를 잃어버렸습니다. 그리하여 교회가 타락하여 참 부족한 우리의 모습이 질타의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오늘 이 말씀 몸을 낮추고 겸손하게 머리 조아리라고 주신 말씀이라고 믿습니다.
열네번째로 찾은 교회는 퀸즈한인교회(월~금 5시 30분)다. 이규섭 목사가 시무하는 이 교회는 ‘변화와 성장, 건강한 공동체, 함께하는 사역’을 표어로 한다. 이 목사는 지난 2009년 1월 퀸즈한인교회 3대 담임 목사로 부임했으며, 개혁주의에 입각한 철저한 ‘신본주의 목회, 하나님 말씀 중심의 목회, 제자 삼는 일을 감당하는 성경적 교회관을 따르는 목회’가 이 목사의 목회철학이다.
11월 19일 이 목사는 이사야서 65장 1절부터 7절을 본문으로 말씀을 전했다.
이사야 65장
1절 나는 나를 구하지 아니하던 자에게 물음을 받았으며 나를 찾지 아니하던 자에게 찾아 냄이 되었으며 이름을 부르지 아니하던 나라에게 내가 여기 있노라 내가 여기 있노라 하였노라
2절 내가 종일 손을 펴서 자기 생각을 좇아 불선한 길을 행하여 패역한 백성들을 불렀나니
3절 곧 동산에서 제사하며 벽돌 위에서 분향하며 내 앞에서 항상 내 노를 일으키는 백성이라
4절 그들이 무덤 사이에 앉으며 은밀한 처소에서 지내며 돼지고기를 먹으며 가증한 물건의 국을 그릇에 담으면서
5절 사람에게 이르기를 너는 네 자리에 섰고 내게 가까이 하지 말라 나는 너보다 거룩함이니라 하나니 이런 자들은 내 코의 연기요 종일 타는 불이로다
6절 보라 이것이 내 앞에 기록되었으니 내가 잠잠치 아니하고 반드시 보응하되 그들의 품에 보응할찌라
7절 너희의 죄악과 너희 열조의 죄악을 함께 하리니 그들이 산 위에서 분향하며 작은 산 위에서 나를 능욕하였음이라 그러므로 내가 먼저 그 행위를 헤아리고 그 품에 보응하리라 여호와가 말하였느니라
다음은 설교 말씀이다.
'죽은 나무에 봄은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봄이 되면 죽은것 같았던 나무들에 다시 싹이 나고 잎이 피는 모습을 우리가 봅니다. 죽었다면 아무리 봄이 와도 꽃을 피울 수가 없다는 말입니다. 인간은 죽은 나무였습니다. 꽃을 피울 수 없는 나무였지만 하나님께서 꽃을 피우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 인간은 겸손히 머리를 조아리고 사는게 당연한 이치입니다.
본문은 그렇지 못했던 이스라엘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부름에 하나님이 침묵하셨다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본문은 탄식의 답변인데 그렇지 않다고 하나님이 답변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거꾸로 하나님이 이스라엘 민족을 찾았지만 그들이 대답치 않았다고 합니다.
이사야서 64장까지 보면 하나님을 찾았다고 하는데 하나님은 그들이 하나님을 찾지 않았다고 합니다. 본문 1절에서 역설적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구하지도 찾지도 않는 그런 민족, 이것은 이방 사람을 말하는 것일 겁니다. 이 말씀은 참 놀라운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름도 모르는 이방 나라에 "내가 여기 있노라"고 말씀하시겠다는 건데 그 이유는 2절부터 나와있습니다. 과거에 하나님을 찾지도 말하지도 않았던 이방인들이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을 찾아야했을 이스라엘 민족이 하나님을 찾지 않고 이방을 섬기고 우상을 섬기는 것에 빠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 제사하는 방법과 장소는 지정되어 있었습니다. 그 방법대로 제사를 드리도록 지시하셨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민족을 보면 우상에게 제사를 지내고 있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노를 일으켰습니다. 4절, 5절에 교만한 그들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이방과 우리는 다르다며 우월감을 가지고 살고 있었습니다.
이런 자들을 5절에 ‘내 코의 연기요 종리 타는 불’이라고 표현합니다. 지금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화가났다는 겁니다. 그래서 코에서 불이 나올 정도로 이스라엘 백성이 교만하고 그들의 모습에 대해서 잠잠치 아니하시고 보응하시겠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포로로 끌려가는 것을 경험케하시고 그들이 고난을 당하게 하십니다. 그런데 특이한 방법이 있습니다. 그것은 이방 나라에 복을 주심으로 인해서 이방 나라를 질투하게 하는 방법입니다. 로마서 10장을 보면 오늘 말씀이 그대로 인용되는 것이 있습니다. '오직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겁니다.
바울은 아직도 유대인들이 완악한 가운데 복음을 믿지 아니하여 이방에게 믿음을 주셔서 질투하게 했다고 합니다. 롬 10:19절 미련한 백성으로서 노여케 하리라. 이해할 수 없지만 그런 것을 통해서 이스라엘이 질투하고 노엽게 되는 일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그래서 '겸손하라'는 말이 나옵니다. 이제 저와 여러분이 영적 이스라엘이 됐습니다. 그런데 유대인처럼 똑같이 되고 있다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다른 사람보다 낫다고 하고, 그래서 높아집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을 판단하고 조롱합니다. 이스라엘이 선민 의식에 빠져 타락하여 그 나라가 어려움을 받는 것처럼, 오늘날 우리도 같은 일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한민족을 돌아봅시다. 우리는 소망이 없었던 그런 나라였다. 이제는 어느 나라보다 복받는 나라가 됐습니다. 그런 축복을 우리가 받게 됐는데 문제는 늘 겸손히 무릎꿇고 겸손하게 살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가 교만해졌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처럼, 마치 자기의 공로로 된 것 처럼 하나님의 은혜를 잃어버렸습니다. 그리하여 교회가 타락하여 참 부족한 우리의 모습이 질타의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오늘 이 말씀 몸을 낮추고 겸손하게 머리 조아리라고 주신 말씀이라고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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