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한 명은 바보처럼 가야 하지 않겠어요? 왜 하필 그게 ‘나’ 인지, ‘우리 교회’인지 묻는 사람도 있겠지만 부르심을 따라 더 늦기 전에 거꾸로 가보고 싶어요.”

단풍이 아름답게 물들어 있던 지난 10월 중순, 한 중견 목회자가 기자와 함께 교회 주변을 걸으며 말했다. ‘바보’가 되어 거꾸로 가보겠노라고.

당시 기자는 반신반의했다. 아무리 본인의 의지가 확고해도 성도들이 결사적으로 반대한다면야 안될 일이고, 인지상정이란 게 있는데 주변에서 다 말리고 가지 말라고 하면 ‘못 이기는 척’하고 가는 시늉만 하지 않을까 싶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정말 이 목사님이 가려는 모양이다.

성약장로교회 심호섭 담임목사의 이야기다. 2003년 부임 당시 40명 안팎이던 교인들이 그와 함께 8년을 오면서 10배로 늘었다. 예배당만 덩그러니 있던 자리에 지역에서도 손 꼽히는 체육관을 완공해 개방하고 있다. 설교 말씀뿐 아니라 끊임없는 연구와 발 품 팔아 얻은 ‘성경과 세계사’에 관한 지식도 아낌없이 지역사회를 위해 나눴다. 그런 그가 돌연 사임의사를 밝혀 많은 이들을 놀라게 하고 있다.

시계를 거꾸로 돌려 약 3주전, 심호섭 목사는 다른 일로 교회를 찾은 기자에게 바로 지난 주 전 성도에게 사임의사를 밝혔다고 했다. 이유를 묻자 선교사로 헌신하겠다는 서원을 갖고 신학교에 입학했는데 열어주시는 길이 계속 목회였단다. 동기들은 선교사로 나가 사역하는 동안, 자신은 하나님 은혜로 가는 곳마다 교회가 안정되고 부흥하는 목회를 할 수 있었다고 했다. 이제는 더 나이 들기 전에 처음 서원대로 선교사의 길을 가겠다는 것이었다.

이민 목회자라면 이상적이라 할 수 있는 안정된 지역의 규모 있는 교회 담임목회. 이걸 내려 놓고 간다고 하니 아쉽기만 할 텐데 오히려 그는 즐거워 보였다. 다만 성도들이 울고 불고 하는 통에 어찌해야 할지 몰라 그게 가장 안타깝다더니 이제 성도들도 그의 뜻을 이해하고 기립박수로 보내기로 했다는 소식이 들렸다.

‘바보’ 목사의 거꾸로 가는 길… 3주 내내 기자의 마음을 따뜻하게 울린 파장이다. 이 소식을 듣고 ‘가장 먼저 기사를 써볼까’라는 욕심도 났다. 하지만 이번에는 멀리서 박수 치며 보내드릴 생각이다. ‘바보’ 목사가 가는 길이니 이번만큼은 ‘기자’가 아닌 ‘크리스천’으로 설교하던 대로 ‘내려 놓고’ 부르심을 따라 가는 한 목자의 길을 축복할 것이다. 그래도 아브라함보다는 젊은 나이에 떠나게 됐으니 행운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