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바드 대학의 교수였던 헨리 나우웬은 어느 날 친구의 사무실에서 포스터를 보게 됩니다. <탕자의 귀향>이었습니다. 그림을 보는 순간 전기에 감전된 듯 놀랍니다.

“아름답다는 말로는 부족할 만큼 울면서 웃고, 웃으면서 울고 싶게 만들어요. 마음 깊은 곳을 건드린다고 해야 할까.” 그는 끝내 그림의 원화가 있는 러시아의 에르미타주 미술관을 찾습니다. 하루 종일 그림을 들여다 본 그는 사흘 뒤 또 그림을 찾아갑니다. 그렇게 해서 한 장의 그림이 한 권의 책으로 탄생됩니다. ‘이미지’가 영성(靈性)으로 피어난 순간이었습니다.

“자주색 망토를 걸친 남자가 남루한 차림으로 무릎을 꿇은 소년의 어깨를 부드럽게 어루만지는 그림이었습니다. 두 사람 사이에 흐르는 뜨거운 친밀감, 붉은 망토의 온화한 톤, 소년의 겉옷에서 반사되는 황금빛, 그리고 양쪽을 한꺼번에 휘감고 있는 신비로운 광채에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었습니다. 하지만 일찍이 느낀 적이 없는 감동을 주었던 건 무엇보다도 소년의 어깨를 감싸 쥔 노인의 두 손이었습니다.”

한 손은 거칠고 투박합니다. 한 손은 여성의 손처럼 그렇게 고울 수 없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자애로움과 공의, 곧 아버지의 공의와 어머님의 자애로움을 동시에 가지고 계심을 봅니다. 렘브란트는 탕자를 포근하게 받아들이는 아버지를 거의 시각장애자로 그려 놓았습니다. 주변인의 멀뚱거리는 눈과 비교됩니다. 탕자의 귀환의 진정성을 의심의 눈초리로 쳐다보는 그들과 달리 아버지는 그리움이 쌓인 눈길로 아들을 내려다봅니다. 나 자신의 시각으로는 아들의 뒷통수가 왜 그리 미운지요(나 역시 아버지 뒤에 있는 불만 많은 형(?)의 모습과 똑같습니다. 다 해어진 샌들이 보기도 싫습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돌아온 아들이 고맙고 사랑스러워 보이질 않습니다. 얼마나 애타게, 얼마나 사랑했으면 시각장애자처럼 그림을 그렸을까요?

무엇보다 우리가 간과할 수 없는 한 가지가 있습니다. 그림 속에 녹아 있는 렘브란트의 63년의 세월의 깊이 말입니다.

“렘브란트는 63년을 살면서 젊은 날의 허랑방탕한 생활을 회개하며, 그리고 사랑하는 아내 사스키아가 세상을 떠나는 걸 목격했을 뿐 아니라 세 아들과 두 딸, 그리고 함께 살았던 두 여인의 죽음까지 지켜보았습니다. 그 뼈아픈 슬픔을 한 번도 드러낸 적이 없지만 <탕자의 귀향>을 보면 그가 얼마나 눈물을 쏟았을지 짐작하고도 남습니다.”

우리가 삶의 감사가 어디에서 발출될 수 있을까요? 그것은 하나님 아버지의 말할 수 없는 아픔에서 부화되었다는 것을 깊이 알아야 합니다.

돌아온 탕자처럼 아버지 곁에 왔을 때, 아니 사실은 아버지는 늘 집나간 아들을 한시도 잊지 않고 찾아다닌 것입니다. 아들이 찾아온 것이 아니라, 아버지가 찾은 것이지요. 남들은 정죄의 시선으로, 고소하다는 눈으로, 그리고 아버지의 시선과 손길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눈으로 쳐다보았습니다. 그것에 개의치 않고 아버지는 돌아온 아들을 위해 잔치를 배설합니다.

눅15장의 이 내용을 렘브란트는 자신의 삶의 경험에서 우러 나왔기에 헨리 나우웬에게 놀라운 영감을 불어 넣어 준 것입니다.

나에게도 아픔들이 있습니다. 스스로 택해서 고통받았던 일들, 속았던 일들, 삶의 소소한 아픔들, 비난들. 그러나 그러한 것들이 나를 겸손케 하고 하나님에 대한 감사를 깨닫게 합니다. 돌아온 탕자처럼 나를 자애로운 가슴과 손으로 안아 주시는 아버지, 어떤 말로 그 사랑을 표현할 수 있을까요?

그러고 보니 우리의 '아픔'과 '죄'라는 몹쓸 알을 하나님께서는 십자가로 덮고 따스하게 품으시더니 '감사'로 부화시키셨습니다.

"아버지, 감사해요, 감사드려요, 사랑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