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기독교 역사상 유래없는 부흥을 일군 한국 교회. 부흥의 가장 강력한 원동력의 하나로 ‘새벽기도’를 꼽는다. 본지는 미주한인교회의 부흥을 염원하며 부흥의 바람을 일으킬 새벽 기도회 현장을 찾고, 은혜의 말씀을 전하고자 한다.
세번째로 찾은 교회는 뉴욕효신장로교회(월~토 오전 5시 50분)다. 문석호 목사가 시무하는 이 교회는 ‘세상을 밝히며 사람을 위로하는 교회’를 표어로 하며, ‘인재 양성’과 ‘복음전파’가 문 목사의 목회 비전이다. 10월 26일 새벽 기도회는 원로목사인 방지각 목사가 창세기 22장 1절부터 7절까지를 본문으로 ‘아브라함이 받은 시련’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전했다.
2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지시하는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
3 아브라함이 아침에 일찌기 일어나 나귀에 안장을 지우고 두 사환(使喚)과 그 아들 이삭을 데리고 번제에 쓸 나무를 쪼개어 가지고 떠나 하나님의 자기에게 지시하시는 곳으로 가더니
4 제삼일에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 그곳을 멀리 바라본지라
5 이에 아브라함이 사환에게 이르되 너희는 나귀와 함께 여기서 기다리라 내가 아이와 함께 저기가서 경배하고 너희에게로 돌아오리라 하고
6 아브라함이 이에 번제 나무를 취하여 그 아들 이삭에게 지우고 자기는 불과 칼을 손에 들고 두 사람이 동행하더니
7 이삭이 그 아비 아브라함에게 말하여 가로되 내 아버지여 하니 그가 가로되 내 아들아 내가 여기 있노라 이삭이 가로되 불과 나무는 있거니와 번제(燔祭)할 어린 양은 어디 있나이까
다음은 새벽 기도회 말씀이다.
어느 젊은 사형수가 있었습니다. 그에게 사형 집행하는 날이 왔습니다. 교도소에서는 그에게 “마지막 5분을 줄테니 5분 후에는 죽을 준비를 하라”고 했습니다. 사형수는 28살 밖에 되지 않는 청년이었습니다. 그 청년은 5분을 어떻게 보낼까 하다가 1분은 자신를 아는 이들을 위한 작별 기도를 위해 썼고, 1분은 지금까지 살게 해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감사의 기도를 하는데 썼습니다. 나머지 1분은 좌우의 사형수들에게 마지막 작별 인사를 하는데 썼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1분은 눈에 보이는 자연을 바라보면서 자연의 아름다움을 찬양하며 ‘다시 한번 인생을 살 수 있다면...’ 하며 회안의 눈물을 흘리는데 사용했습니다. 그 순간 기적과도 같이 사형 집행 정지 명령이 떨어졌습니다. 사형집행 1분 전에 살게된 것입니다. 그 청년 사형수는 바로 카라마쵸프, 영원한 만남 등을 저술한 도스도예프스키였습니다. 그는 5분의 감동으로 나머지 일생을 살았습니다.
우리에게도 5분은 옵니다. 사람은 하나님이 주는 영감을 고독 가운데 배웁니다. 사람은 고독이 없으면 하나님을 만날 수 없습니다. 하나님과 나의 독대의 순간, 거기서 영감을 얻을 수 있고 창조적인 삶을 살 수 있습니다.
본문을 보십시오. 인류 역사상 이런 일은 없습니다. 백세에 얻은 자식입니다. 로마서 4장을 보니, 99세에 아들을 얻은 것은 기적적입니다. 이것은 약속의 아들인데, 하나님은 이 아들과 후손들이 창대해질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이런 자식을 하나님께서 번제하라고 하셨습니다.
제사에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그 중에서도 번제는 몽땅 다 드리는 것입니다. 성경에 나오지는 않지만 아브라함은 고민에 빠집니다. ‘자식을 통해 창대케 된다고 했는데, 장가도 안간 약속의 아들을 통해 수많은 자손이 나오리라고 하셨는데 어떻게 이를 번제하라고 하십니까?’ 하고 고민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동물의 제사를 받으시지만 사람의 피도 받으십니까’하고 물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도 아닐 것이고 비도적이고 비종교적인 명령을 왜 하시는 겁니까’ 하면서 고민을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을 볼 것 같으면 3절 아브라함이 아침에 일찍 일어나 나귀에 안장을 지우고 두 사환과 그의 아들 이삭을 데리고 번제에 쓰일 나무를 쏘개어 가지고 떠나 하나님이 자기에게 지시하시는 곳으로 가더니.
하나님의 명령에는 지체하지 아니하고 아브라함이 일찍이 떠나는 모습이 얼마나 위대한지요. 여러분, 시험의 성격을 보면, 하나님의 시험이 있고, 세상에는 마귀의 시험도 있고 내 욕심에 당하는 시험도 있는데 본문에서는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하십니다. 그 아들은 하나님이 기적적으로 특별히 준 아들인데 그 아들을 내어놓으라고 하십니다.
그러나 욥기의 욥은 참으로 위대한 자입니다. 욥은 주신자도 하나님이라고 합니다.
여러분, 위대한 믿음은 단순한 믿음입니다. 단순하게 믿는 것이 참으로 귀합니다. 변명이 필요없다는 것입니다. 내 아들 독자 이삭을 드리는데 보상이 없습니다. 우리 예수님께서도 게세마네에서 기도하실 때에 “이 잔을 옮기옵소서” 하지만 “내 뜻대로 하지 말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십시오”라고 했습니다.
십자가에 보상이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십자가 그 다음에 어떻게 된다는 것이 없었습니다. 설명도 없습니다.
우리는 주의 일을 조금 해놓고 보상을 기대합니다. 순종하는 것이 다이아몬드 보다 귀한 것입니다. 이삭을 번제하기 위해 새벽에 일찍 일어난 이것이 아브라함의 믿음입니다. 하나님을 택하느냐, 아들을 택하느냐. 백세에 얻은 아들이 너무 소중해서 매일 봤을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내가 하나님보다 아들을 더 사랑해서 이런 일을 당하는게 아닌가’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여러분 우상을 만드는게 특별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면 우상이 됩니다. 본문의 클라이막스는 하나님이 준비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자녀를 위해서 준비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8·15해방 이전 일제시대 때 신사참배를 어찌나 강요했는지 모릅니다. 교단 총회할 때 신사참배는 하나의 국민의례라고 강조한 목회자들도 있었습니다. 그 때 일본 동경까지 관광을 다녀온 목사님들도 있었습니다. 그런가 하면 ‘신사참배 못합니다’하고 도망다니던 목회자들도 있었습니다.
일본인들이 행한 고문 중에 가장 심한 고문이 뭔지 아십니까? 독립군과 그 아들을 잡아들여 그 아버지를 고문하듯이 아들도 고문하겠다고 협박하며 취조하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에게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을 주셨습니다.
8·15 해방 후 갇혔던 주의 종들은 교회에서 간증대회, 부흥회를 했지만 신사참배한 이들은 머리를 둘 수 없어 사라졌습니다. 그리고 사라진 이들은 소록도에서 목회했습니다. 이삭을 단번에 죽이려고 할 때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이삭에게 손대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여러분 생명보다 귀한 것이 어디 있습니까. 하나님의 사람에게 아픔이 있었습니다. 우리를 사랑할 때는 독생자를 내어주면서 우리를 구원하신 희생적인 아픔이 있었습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히브리서 11장을 통해 아브라함의 믿음을 이야기합니다. 우리 믿는 자에게는 고린도전서 10장 13절 이 말씀이 너무 귀한 말씀입니다. 13절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우리가 당할 것이 없나니 너희가 감당하지 못할 시험을 허락하지 아니 하실려고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에게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
여러분들이 여호와 이레의 하나님께 철저하게 준비하고 여호와를 믿고 찬양하는 이들이 되길 바랍니다. 믿는자에게는 하나님이 감당할 시험만 주십니다. 강하고 담대한 성도들이 되길 기도합니다.
세번째로 찾은 교회는 뉴욕효신장로교회(월~토 오전 5시 50분)다. 문석호 목사가 시무하는 이 교회는 ‘세상을 밝히며 사람을 위로하는 교회’를 표어로 하며, ‘인재 양성’과 ‘복음전파’가 문 목사의 목회 비전이다. 10월 26일 새벽 기도회는 원로목사인 방지각 목사가 창세기 22장 1절부터 7절까지를 본문으로 ‘아브라함이 받은 시련’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전했다.
2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지시하는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
3 아브라함이 아침에 일찌기 일어나 나귀에 안장을 지우고 두 사환(使喚)과 그 아들 이삭을 데리고 번제에 쓸 나무를 쪼개어 가지고 떠나 하나님의 자기에게 지시하시는 곳으로 가더니
4 제삼일에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 그곳을 멀리 바라본지라
5 이에 아브라함이 사환에게 이르되 너희는 나귀와 함께 여기서 기다리라 내가 아이와 함께 저기가서 경배하고 너희에게로 돌아오리라 하고
6 아브라함이 이에 번제 나무를 취하여 그 아들 이삭에게 지우고 자기는 불과 칼을 손에 들고 두 사람이 동행하더니
7 이삭이 그 아비 아브라함에게 말하여 가로되 내 아버지여 하니 그가 가로되 내 아들아 내가 여기 있노라 이삭이 가로되 불과 나무는 있거니와 번제(燔祭)할 어린 양은 어디 있나이까
다음은 새벽 기도회 말씀이다.
어느 젊은 사형수가 있었습니다. 그에게 사형 집행하는 날이 왔습니다. 교도소에서는 그에게 “마지막 5분을 줄테니 5분 후에는 죽을 준비를 하라”고 했습니다. 사형수는 28살 밖에 되지 않는 청년이었습니다. 그 청년은 5분을 어떻게 보낼까 하다가 1분은 자신를 아는 이들을 위한 작별 기도를 위해 썼고, 1분은 지금까지 살게 해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감사의 기도를 하는데 썼습니다. 나머지 1분은 좌우의 사형수들에게 마지막 작별 인사를 하는데 썼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1분은 눈에 보이는 자연을 바라보면서 자연의 아름다움을 찬양하며 ‘다시 한번 인생을 살 수 있다면...’ 하며 회안의 눈물을 흘리는데 사용했습니다. 그 순간 기적과도 같이 사형 집행 정지 명령이 떨어졌습니다. 사형집행 1분 전에 살게된 것입니다. 그 청년 사형수는 바로 카라마쵸프, 영원한 만남 등을 저술한 도스도예프스키였습니다. 그는 5분의 감동으로 나머지 일생을 살았습니다.
우리에게도 5분은 옵니다. 사람은 하나님이 주는 영감을 고독 가운데 배웁니다. 사람은 고독이 없으면 하나님을 만날 수 없습니다. 하나님과 나의 독대의 순간, 거기서 영감을 얻을 수 있고 창조적인 삶을 살 수 있습니다.
본문을 보십시오. 인류 역사상 이런 일은 없습니다. 백세에 얻은 자식입니다. 로마서 4장을 보니, 99세에 아들을 얻은 것은 기적적입니다. 이것은 약속의 아들인데, 하나님은 이 아들과 후손들이 창대해질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이런 자식을 하나님께서 번제하라고 하셨습니다.
제사에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그 중에서도 번제는 몽땅 다 드리는 것입니다. 성경에 나오지는 않지만 아브라함은 고민에 빠집니다. ‘자식을 통해 창대케 된다고 했는데, 장가도 안간 약속의 아들을 통해 수많은 자손이 나오리라고 하셨는데 어떻게 이를 번제하라고 하십니까?’ 하고 고민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동물의 제사를 받으시지만 사람의 피도 받으십니까’하고 물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도 아닐 것이고 비도적이고 비종교적인 명령을 왜 하시는 겁니까’ 하면서 고민을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을 볼 것 같으면 3절 아브라함이 아침에 일찍 일어나 나귀에 안장을 지우고 두 사환과 그의 아들 이삭을 데리고 번제에 쓰일 나무를 쏘개어 가지고 떠나 하나님이 자기에게 지시하시는 곳으로 가더니.
하나님의 명령에는 지체하지 아니하고 아브라함이 일찍이 떠나는 모습이 얼마나 위대한지요. 여러분, 시험의 성격을 보면, 하나님의 시험이 있고, 세상에는 마귀의 시험도 있고 내 욕심에 당하는 시험도 있는데 본문에서는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하십니다. 그 아들은 하나님이 기적적으로 특별히 준 아들인데 그 아들을 내어놓으라고 하십니다.
그러나 욥기의 욥은 참으로 위대한 자입니다. 욥은 주신자도 하나님이라고 합니다.
여러분, 위대한 믿음은 단순한 믿음입니다. 단순하게 믿는 것이 참으로 귀합니다. 변명이 필요없다는 것입니다. 내 아들 독자 이삭을 드리는데 보상이 없습니다. 우리 예수님께서도 게세마네에서 기도하실 때에 “이 잔을 옮기옵소서” 하지만 “내 뜻대로 하지 말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십시오”라고 했습니다.
십자가에 보상이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십자가 그 다음에 어떻게 된다는 것이 없었습니다. 설명도 없습니다.
우리는 주의 일을 조금 해놓고 보상을 기대합니다. 순종하는 것이 다이아몬드 보다 귀한 것입니다. 이삭을 번제하기 위해 새벽에 일찍 일어난 이것이 아브라함의 믿음입니다. 하나님을 택하느냐, 아들을 택하느냐. 백세에 얻은 아들이 너무 소중해서 매일 봤을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내가 하나님보다 아들을 더 사랑해서 이런 일을 당하는게 아닌가’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여러분 우상을 만드는게 특별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면 우상이 됩니다. 본문의 클라이막스는 하나님이 준비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자녀를 위해서 준비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8·15해방 이전 일제시대 때 신사참배를 어찌나 강요했는지 모릅니다. 교단 총회할 때 신사참배는 하나의 국민의례라고 강조한 목회자들도 있었습니다. 그 때 일본 동경까지 관광을 다녀온 목사님들도 있었습니다. 그런가 하면 ‘신사참배 못합니다’하고 도망다니던 목회자들도 있었습니다.
일본인들이 행한 고문 중에 가장 심한 고문이 뭔지 아십니까? 독립군과 그 아들을 잡아들여 그 아버지를 고문하듯이 아들도 고문하겠다고 협박하며 취조하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에게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을 주셨습니다.
8·15 해방 후 갇혔던 주의 종들은 교회에서 간증대회, 부흥회를 했지만 신사참배한 이들은 머리를 둘 수 없어 사라졌습니다. 그리고 사라진 이들은 소록도에서 목회했습니다. 이삭을 단번에 죽이려고 할 때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이삭에게 손대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여러분 생명보다 귀한 것이 어디 있습니까. 하나님의 사람에게 아픔이 있었습니다. 우리를 사랑할 때는 독생자를 내어주면서 우리를 구원하신 희생적인 아픔이 있었습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히브리서 11장을 통해 아브라함의 믿음을 이야기합니다. 우리 믿는 자에게는 고린도전서 10장 13절 이 말씀이 너무 귀한 말씀입니다. 13절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우리가 당할 것이 없나니 너희가 감당하지 못할 시험을 허락하지 아니 하실려고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에게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
여러분들이 여호와 이레의 하나님께 철저하게 준비하고 여호와를 믿고 찬양하는 이들이 되길 바랍니다. 믿는자에게는 하나님이 감당할 시험만 주십니다. 강하고 담대한 성도들이 되길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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