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인 도매상의 발달 (1)에 이어서)

그러나 갑자기 급증한 한인 도매업체들은 공급 과잉에 따른 출혈 경쟁과 전문 경영 능력 부족 문제에 부딪혔다. 1995년 이후 대부분의 가방 도매업체가 문을 닫았으며 여성 의류 전문 도매업체도 ‘킹스 트레이딩’을 제외하고는 전업을 하거나 폐업하였다.

주로 지나친 경쟁에 따른 가격 인하로 피해를 보았는데 여성의류 도매점 ‘차밍 패션’이나 가방 도매점 ‘렘포스터’가 이 같은 경쟁으로 문을 닫았고 액세서리 도매점도 한인 경쟁 업소와의 경쟁에서 져서 문을 닫았다. 1988년 문을 연 잡화 도매의 원로격인 ‘JK 트레이딩’도 신규 개업한 동종 도매점과의 무리한 가격 인하 경쟁으로 몰락했다.

이 시절 한인들과의 감정적 싸움으로까지 확장되기도 했던 경쟁 행태에 대해 당시 ‘헤브론’ 사장이던 이홍식 씨는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주간 동남부 1997년 10월 17일 자 인용).

“대개 후발 도매업소가 라이벌 도매점의 가장 잘 나가는 품목을 우선적으로 파악합니다. 다음에는 품목별로 상대방의 가격표를 직접 갖다가 놓고 손님이 오면 그 가격표를 보여주며 그보다 싼 가격을 제시해 손님이 확신을 갖고 그 도매점과 거래하도록 유도합니다. 이러한 사실을 상대 도매점에서 알게 되면 감정이 상하여 손해를 감수하고서라도 같은 품목의 가격을 더 낮추어 출혈 경쟁이 시작됩니다.”

그러나 이러한 출혈 경쟁으로 인한 폐해가 문제점으로 드러나자 가장 두드러지게 문제가 나타난 업종인 뷰티서플라이협회를 중심으로 자체 정화 운동이 전개되어 가격보다는 서비스와 경영 노하우를 키워 건전한 경쟁을 유도하게 되었다.

다음은 2001년 초 한인 뷰티서플라이업체 두 집이 출혈 경쟁을 벌이다 뷰티서플라이협회가 중재하여 바람직한 방향으로 마무리를 지어 모범이 되었던 케이스를 뷰티서플라이협회 김영수 회장의 증언으로 소개해 본다.

“애틀랜타 인근에 뷰티서플라이 업체가 하나도 없던 소규모 쇼핑 센터 내에 한인 할머니, 할아버지 부부가 뷰티서플라이 가게를 개업하여 정착시켰습니다. 힘들게 노력하여 제법 장사가 잘 되어가니까 소문을 듣고 한인 젊은이가 바로 옆자리에 가게를 세 내어 같은 종류의 물건으로 뷰티서플라이 가게를 개업하여 가격을 대폭 할인함으로써 출혈 경쟁을 시작했습니다. 두 가게의 주인은 서로 감정적으로까지 대립되어 주변의 사람들까지 난처한 입장이 되었습니다. 결국 협회의 간곡한 중재로 험한 싸움으로까지 발전하지 않고, 젊은이가 가게를 정리하기로 하고 그 가게를 할머니, 할아버지가 인수하여 좋은 결과로 끝나게 되었습니다.”(애틀랜타 한인이민사 170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