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신학의 보수와 진보’는 각 진영에 속한 신학자들에게 그 신학의 정체성을 묻는 기획 인터뷰다. 각 인터뷰는 서로에게 ‘지피’(知彼)이자 진보·자유주의 신학은 진보신학으로 통칭했다.
서울성경신학대학원대학교 총장 박형용 박사에 이어 총신대학교 총장 정일웅 박사를 만났다. 총신대는 보수신학을 지향하는 예장 합동 교단의 신학교로 한국 보수신학을 대표하고 있다. 인터뷰가 진행됐던 17일 오전 총신대 총장실은 분주했다. 정 총장을 만나려는 사람들이 1시간 단위로 그를 찾았다. 결국 핵심만 묻고 답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 긴박함이 오히려 그의 학자적 본성을 자극한 듯했다. 거침이 없었다. 그는 “할 말을 하고 싶었다”고 했다.
축자영감, 말씀 지키려는 진심 먼저 헤아려야
불의와 해악 두고 기도하는 것 역시 사회참여
-박사님께 보수신학이란 무엇인가.
“내게 보수신학은 곧 개혁신학이다. 내가 속한 교단도 마찬가지고 대부분의 장로교회는 이 개혁신학의 전통을 따른다. 그리고 이것은 종교개혁자들 중 하나인 칼빈의 사상을 지지한다.
보수, 즉 진리를 지키자는 의미에서 개혁신학은 분명 보수신학이다. 그러나 보수신학의 하나인 근본주의와는 뚜렷이 선을 긋는다. 현실과 상황을 고려하고 이와 소통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개혁신학에 진보적인 성격이 전혀 없다고 할 수 없다. 개혁이라는 단어 자체가 이미 진보적이지 않은가.”
-보수와 진보를 나누는 기준은 무엇인가.
“우선 성경의 무오설과 유오설의 대립이다. 보수신학이 전자를 따른다면 진보신학은 후자에 가깝다. 보수신학은 성경의 말씀을 그대로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인다. 하지만 진보신학은 성경의 기록자 역시 인간이기에 거기엔 오류가 있을 수 있다는 입장이다. 다음은 교리적 차원에서의 대립이다. 동정녀 마리아에 대한 해석이 대표적이다. 진보신학자들은 이걸 하나의 신화적인 것으로 이해한다.”
-성경 기록 그대로를 믿어야 한다는, 이른바 ‘축자영감’(逐字靈感)에 대해 거부감을 갖는 이들도 있다.
“축자영감은 하나님의 말씀이 단 하나의 오류도 없는, 불변의 진리임을 전제하는 하나의 정신이다. 만약 성경이 유오하다면, 제각각의 해석들이 난무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말씀의 본질을 놓치기 쉽다. 우리는 축자영감이라는 단어의 표면적 의미보다 그 안에 깃든, 성경을 지키고 말씀의 본질을 수호하려는 이들의 염려와 진심을 먼저 헤아려야 할 것이다.”
-사회참여 여부를 기준으로 보수와 진보를 나누기도 한다. 보수신학, 혹은 보수교회의 사회참여, 어떻게 보는가.
“흔히 보수적 교회는 사회참여를 하지 않는 것으로 비친다. 아마 보수교회의 활동이 그만큼의 사회적 파급력을 갖지 못해 듣게 된 말일 것이다. 그러나 신앙은 삶이다. 사회참여를 하느냐 하지 않느냐가 아니라 신앙인이라면 이미 사회에 참여하고 있다. 다만 그 방법에 다소 차이가 있을 뿐이다. 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치는 것만이 사회참여가 아니다. 불의와 해악을 두고 기도하는 것도 사회참여다.
그럼에도 과거 보수의 사회참여가 진보에 비해 소극적이었던 건 사실이다. 정치적 문제와 소외된 이웃들의 고난에 있어 보다 적극적인 행동을 보이지 못했다. 그러나 그것은 복음의 의미를 되새겨, 교회의 내실을 다져나간 과정에서 온 하나의 미숙함이었지 결코 사회를 외면했던 게 아니었다. 지금의 보수교회를 보라. 많은 이들이 사회 약자를 돌봄에 있어 보수교회의 부족함을 자주 진보교회의 그것과 비교하지만 실제 대부분의 구제는 보수교회가 하고 있다. 북한도 더 많이 돕는다. 기도와 성경에 천착하며 다져온 힘을 지금에서야 발휘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진보교회는 보수교회와 반대의 길을 걸었다. 최근 진보적 교회들이 교회성장에 관심을 가진다는 말을 들었다.”
보수가 북한 더 많이 도와… 정치적 이슈화는 진보가 먼저
NCCK엔 진보교회 정통성 없어… 한기총과 단일화해야
“그건 진보교회 역시 마찬가지다. 한 예로 진보교회는 굉장히 반미적인 입장을 가진다. 물론 보수교회는 그 반대다. 이건 뚜렷하다고 본다. 그런데 이걸 단순히 정치적인 것으로만 볼 수 없다. 한국의 역사를 고려해야 한다. 솔직히 미국이 돕지 않았으면 지금 남한이 존재할 수 있었나. 이걸 묻고 싶다. 남한이 이만큼 살게 되고 이런 단계까지 온 것이 과연 미국의 도움 없이 가능했겠는가. 이 점을 깊이 생각해야 한다.”
-미국을 말하면서 북한을 빼놓을 수 없다. 보수는 반북, 진보는 친북. 이건 옳은 공식인가.
“진보교회는 북한에 대해 굉장히 개방적이고 그들을 옹호하려 한다. 그렇다고 보수교회가 북한을 무조건 배척하는 건 아니다. 그들은 우리가 짊어져야 할 십자가이다. 실제로 보수교회가 북한을 많이 돕고 있다. 한기총이 그 대표적 기관이다.
그런데 이 북한과의 문제를 진보교회가 먼저 이슈화시켰던 건 맞다. 지난 1988년 2월 당시 진보교회 측에서 통일선언문이라는 걸 발표했다. 그 선언문에는 1995년 남북통일이라는 비전이 담겨 있었다. 8·15 해방 후 50년이 지난 때가 1995년이니, ‘희년’의 상징적 의미를 담은 그 날을 통일의 날로 정한 것이었다. 그 때만해도 보수교회는 통일문제를 정치적으로 이슈화해 해결해야겠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진보교회가 먼저 문을 연 것이다. 그리고 그 중심엔 지금의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가 있었다.
하지만 알고 보면 그런 진보교회의 행동 이면에는 북한의 정치적 계획이 숨어있다. 일제 치하 때 북한은 일본에 기독교연맹을 만들었고 한국에도 조선기독교연맹을 만들었다. 정치적 기구였다. 이후 해방을 맞아 이 기구들이 남북으로 흩어졌는데, 북한에선 그대로 조선기독교연맹이 됐고 남한에선 한국기독교협의회가 됐다. 그리고 한국기독교협의회는 지난 1974년 그 이름에 교회를 넣어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로 거듭났다. 지금의 NCCK다.”
-보수와 진보의 미래를 어떻게 보는가.
“서로 연대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한때 독일교회가 독일의 통일에 무엇을 기여했는지 연구한 적이 있다. 결론은 당시 독일교회가 하나로 연대했었다는 것이다. 에카데(독일개신교협의회)라는 하나의 조직을 만들었다. 이것이 엄청난 일을 한 것이다.
한국교회가 연대해야 할 이유는 분명하다. 첫째는 기독교 최대의 과제인 복음 전도를 위해서다. 이것에 있어 교파 간 논쟁이 있어선 안 된다. 둘째는 사회봉사를 위해서다. 세상을 섬기는 일은 교회의 가장 큰 사명 중 하나다. 그런데 이 사회봉사에 있어 북한을 또 한 번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물론 지금까지처럼 북한을 계속 도와야 한다. 하지만 무조건 주기만 해선 안 된다. 우리가 주는 것으로 북한이 다른 일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부분에 있어선 정치적 줄다리기가 필요하다. 긴장감을 고조시키는 한이 있어도 정치권은 그래야 한다. 정부는 보수성을 가지고 공산주의를 경계하면서 문을 열어가야 한다. 보수와 진보의 연합도 이것이 전제돼야 할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 제안하자면, 한기총과 NCCK를 하나의 단일 기구로 만들었으면 한다. 그래서 대북, 대정부, 대사회, 대국제관계에 있어 한 목소리를 내야 한다. 그래야만 한국교회에 더 큰 역할을 기대할 수 있다.”
정일웅 박사는
총신대학교를 졸업하고 총신대학교 신학연구원에서 수학했다. 독일 본(Bonn)대학교 신학대학에서 신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지난 1984년 총신대 교수로 부임해 학생처장, 교무처장 및 기획실장, 부총장 등을 역임하다 지난해 총장에 취임했다. 2006년부터 2년간 한국개혁신학회 회장을 지내기도 했다.
서울성경신학대학원대학교 총장 박형용 박사에 이어 총신대학교 총장 정일웅 박사를 만났다. 총신대는 보수신학을 지향하는 예장 합동 교단의 신학교로 한국 보수신학을 대표하고 있다. 인터뷰가 진행됐던 17일 오전 총신대 총장실은 분주했다. 정 총장을 만나려는 사람들이 1시간 단위로 그를 찾았다. 결국 핵심만 묻고 답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 긴박함이 오히려 그의 학자적 본성을 자극한 듯했다. 거침이 없었다. 그는 “할 말을 하고 싶었다”고 했다.
축자영감, 말씀 지키려는 진심 먼저 헤아려야
불의와 해악 두고 기도하는 것 역시 사회참여
-박사님께 보수신학이란 무엇인가.
“내게 보수신학은 곧 개혁신학이다. 내가 속한 교단도 마찬가지고 대부분의 장로교회는 이 개혁신학의 전통을 따른다. 그리고 이것은 종교개혁자들 중 하나인 칼빈의 사상을 지지한다.
보수, 즉 진리를 지키자는 의미에서 개혁신학은 분명 보수신학이다. 그러나 보수신학의 하나인 근본주의와는 뚜렷이 선을 긋는다. 현실과 상황을 고려하고 이와 소통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개혁신학에 진보적인 성격이 전혀 없다고 할 수 없다. 개혁이라는 단어 자체가 이미 진보적이지 않은가.”
-보수와 진보를 나누는 기준은 무엇인가.
“우선 성경의 무오설과 유오설의 대립이다. 보수신학이 전자를 따른다면 진보신학은 후자에 가깝다. 보수신학은 성경의 말씀을 그대로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인다. 하지만 진보신학은 성경의 기록자 역시 인간이기에 거기엔 오류가 있을 수 있다는 입장이다. 다음은 교리적 차원에서의 대립이다. 동정녀 마리아에 대한 해석이 대표적이다. 진보신학자들은 이걸 하나의 신화적인 것으로 이해한다.”
-성경 기록 그대로를 믿어야 한다는, 이른바 ‘축자영감’(逐字靈感)에 대해 거부감을 갖는 이들도 있다.
“축자영감은 하나님의 말씀이 단 하나의 오류도 없는, 불변의 진리임을 전제하는 하나의 정신이다. 만약 성경이 유오하다면, 제각각의 해석들이 난무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말씀의 본질을 놓치기 쉽다. 우리는 축자영감이라는 단어의 표면적 의미보다 그 안에 깃든, 성경을 지키고 말씀의 본질을 수호하려는 이들의 염려와 진심을 먼저 헤아려야 할 것이다.”
-사회참여 여부를 기준으로 보수와 진보를 나누기도 한다. 보수신학, 혹은 보수교회의 사회참여, 어떻게 보는가.
“흔히 보수적 교회는 사회참여를 하지 않는 것으로 비친다. 아마 보수교회의 활동이 그만큼의 사회적 파급력을 갖지 못해 듣게 된 말일 것이다. 그러나 신앙은 삶이다. 사회참여를 하느냐 하지 않느냐가 아니라 신앙인이라면 이미 사회에 참여하고 있다. 다만 그 방법에 다소 차이가 있을 뿐이다. 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치는 것만이 사회참여가 아니다. 불의와 해악을 두고 기도하는 것도 사회참여다.
그럼에도 과거 보수의 사회참여가 진보에 비해 소극적이었던 건 사실이다. 정치적 문제와 소외된 이웃들의 고난에 있어 보다 적극적인 행동을 보이지 못했다. 그러나 그것은 복음의 의미를 되새겨, 교회의 내실을 다져나간 과정에서 온 하나의 미숙함이었지 결코 사회를 외면했던 게 아니었다. 지금의 보수교회를 보라. 많은 이들이 사회 약자를 돌봄에 있어 보수교회의 부족함을 자주 진보교회의 그것과 비교하지만 실제 대부분의 구제는 보수교회가 하고 있다. 북한도 더 많이 돕는다. 기도와 성경에 천착하며 다져온 힘을 지금에서야 발휘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진보교회는 보수교회와 반대의 길을 걸었다. 최근 진보적 교회들이 교회성장에 관심을 가진다는 말을 들었다.”
보수가 북한 더 많이 도와… 정치적 이슈화는 진보가 먼저
NCCK엔 진보교회 정통성 없어… 한기총과 단일화해야
“그건 진보교회 역시 마찬가지다. 한 예로 진보교회는 굉장히 반미적인 입장을 가진다. 물론 보수교회는 그 반대다. 이건 뚜렷하다고 본다. 그런데 이걸 단순히 정치적인 것으로만 볼 수 없다. 한국의 역사를 고려해야 한다. 솔직히 미국이 돕지 않았으면 지금 남한이 존재할 수 있었나. 이걸 묻고 싶다. 남한이 이만큼 살게 되고 이런 단계까지 온 것이 과연 미국의 도움 없이 가능했겠는가. 이 점을 깊이 생각해야 한다.”
-미국을 말하면서 북한을 빼놓을 수 없다. 보수는 반북, 진보는 친북. 이건 옳은 공식인가.
“진보교회는 북한에 대해 굉장히 개방적이고 그들을 옹호하려 한다. 그렇다고 보수교회가 북한을 무조건 배척하는 건 아니다. 그들은 우리가 짊어져야 할 십자가이다. 실제로 보수교회가 북한을 많이 돕고 있다. 한기총이 그 대표적 기관이다.
그런데 이 북한과의 문제를 진보교회가 먼저 이슈화시켰던 건 맞다. 지난 1988년 2월 당시 진보교회 측에서 통일선언문이라는 걸 발표했다. 그 선언문에는 1995년 남북통일이라는 비전이 담겨 있었다. 8·15 해방 후 50년이 지난 때가 1995년이니, ‘희년’의 상징적 의미를 담은 그 날을 통일의 날로 정한 것이었다. 그 때만해도 보수교회는 통일문제를 정치적으로 이슈화해 해결해야겠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진보교회가 먼저 문을 연 것이다. 그리고 그 중심엔 지금의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가 있었다.
하지만 알고 보면 그런 진보교회의 행동 이면에는 북한의 정치적 계획이 숨어있다. 일제 치하 때 북한은 일본에 기독교연맹을 만들었고 한국에도 조선기독교연맹을 만들었다. 정치적 기구였다. 이후 해방을 맞아 이 기구들이 남북으로 흩어졌는데, 북한에선 그대로 조선기독교연맹이 됐고 남한에선 한국기독교협의회가 됐다. 그리고 한국기독교협의회는 지난 1974년 그 이름에 교회를 넣어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로 거듭났다. 지금의 NCCK다.”
-보수와 진보의 미래를 어떻게 보는가.
“서로 연대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한때 독일교회가 독일의 통일에 무엇을 기여했는지 연구한 적이 있다. 결론은 당시 독일교회가 하나로 연대했었다는 것이다. 에카데(독일개신교협의회)라는 하나의 조직을 만들었다. 이것이 엄청난 일을 한 것이다.
한국교회가 연대해야 할 이유는 분명하다. 첫째는 기독교 최대의 과제인 복음 전도를 위해서다. 이것에 있어 교파 간 논쟁이 있어선 안 된다. 둘째는 사회봉사를 위해서다. 세상을 섬기는 일은 교회의 가장 큰 사명 중 하나다. 그런데 이 사회봉사에 있어 북한을 또 한 번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물론 지금까지처럼 북한을 계속 도와야 한다. 하지만 무조건 주기만 해선 안 된다. 우리가 주는 것으로 북한이 다른 일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부분에 있어선 정치적 줄다리기가 필요하다. 긴장감을 고조시키는 한이 있어도 정치권은 그래야 한다. 정부는 보수성을 가지고 공산주의를 경계하면서 문을 열어가야 한다. 보수와 진보의 연합도 이것이 전제돼야 할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 제안하자면, 한기총과 NCCK를 하나의 단일 기구로 만들었으면 한다. 그래서 대북, 대정부, 대사회, 대국제관계에 있어 한 목소리를 내야 한다. 그래야만 한국교회에 더 큰 역할을 기대할 수 있다.”
정일웅 박사는
총신대학교를 졸업하고 총신대학교 신학연구원에서 수학했다. 독일 본(Bonn)대학교 신학대학에서 신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지난 1984년 총신대 교수로 부임해 학생처장, 교무처장 및 기획실장, 부총장 등을 역임하다 지난해 총장에 취임했다. 2006년부터 2년간 한국개혁신학회 회장을 지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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