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들이 부러워 하는 직장을 박차고 부모 형제 친구들과도 석별하고 미국에 온 정 선생의 첫째 목적은 자녀 교육이었다. 그 전에 몇 번 방문한 적이 있어 한국과는 비교가 안 되는 좋은 환경에서 공부하고 구김살 없이 자라는 아이들을 보고는 이민 올 결단내린 것이다.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정씨는 많은 대가를 지불했다. 한국에서는 상상도 못할 고되고 힘든 일을 했고 지금도 진행중이다. 처음에는 후배를 따라 청소하는 일을 했다. 회사 직원들이 퇴근 한 후 그 사무실에 들어가 지저분 한 책상과 의자 바닥을 쓸고 닦고 정리하는 일을 아침 2~3시 까지 하다 보면 허리가 휘고 손과 다리의 힘이 다 빠져 겨우 집에 돌아온다. 목욕하고 좀 먹고 자는 올빼미 생활을 오래 동안 죽지 않을 정도로 했다.
너무도 힘들어 사업을 시작한 것이 한국 사람들이 많이 하는 세탹소다. 밤일이 아니기에 덜 힘들고 살만 했으나 그 일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더욱이 외국인이라는 핸디캡과 서툰 영어를 커버하기 위해서라도 남보다 일찍 문 열고 늦게 닫고 주말도 휴일도 휴가도 없이 일하다 보니 아까운 청춘이 일에 묻혀서 30년 가까히 흘렀다. 이제는 미국 생활에 적응이 되어 오히려 한국에 가서는 못 살 것 같은 착각을 하기도 한다.
그런데 여기에 문제가 있다. 처음 미국에 올 때 품었던 꿈이 이루어졌느냐 하는 것이다. 자녀 교육 때문에 미국에 와서 30년을 뼈를 갂는 고생을 했고 지금도 하고 있는데 정말 잘 한일이냐 하는 것이다. "한국에 계속 살았으면 직장에서 또한 가정에서 대접받으며 자녀들도 그 나름대로 공부시키고 지금은 연금 받으며 친구들과 어울려 골프 치고 여행이나 하면서 살텐데......" 하며 남 몰래 혼자 한숨도 쉰다. 더욱 후회스러운 일은 기대했던 자녀들에 대한 실망이다.
즉 애들이 부모에게 대하는 태도가 우선 마음에 안든다. 한 마디로 자기가 하고 싶어야 하고 싫으면 안 하는 태도다. 선생님께 대한 태도도 지식을 전달하는 사람으로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친구도 필요하면 친하게 지내고 마음이 안 들면 언제든 헤어진다. 애인도 자주 바뀐다. 살고 있는 도시에 세계적인 대학이 있고 입학이 되어도 다른 주로 간다. 그러면 우선 등록금이 비싸고 기숙사비를 추가로 내고 용돈까지 줘야한다. 부모의 잔 소리를 벗어나 자유롭게 살겠다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새도 어느정도 자라서 스스로 살만 하면 그 둥지를 떠나듯 자립하려는 마음을 이해는 하지만 막노동을 하며 뒷바라지 하는 부모를 조금이라도 생각한다면 그렇게 해서는 안 되는 것이 아닌가. 더 큰 문제는 결혼이다. 본인들이 좋으면 누가 뭐라고 해도 소용이 없다. 오랜 삶의 경험이 있기에 조언을 해도 마이동풍이다. 직장 선택이나 집을 사는 것도 부모와 의논하는 것보다는 통고하는 식이다.
가정이라는 든든한 울타리가 무너지고 학교나 국가도 자신을 위해 있다는 극단의 개인주의는 정씨가 미국에 올 때 자녀들에게 기대했던 것과 너무도 어긋난 것이었다. 물론 좋은 환경에서 자유롭게 공부하고 자기 전문직에서 일하며 시집 장가 가서 잘 사는 것은 다행한 일이지만 부모나 형제를 위한 희생이라든가 사회나 국가를 위한 헌신, 남을 위해 봉사한다는 생각을 한다는 데서 실망 하는 것이다. 정 선생의 긴 하소연을 듣고 나 나름의 대답을 쓴다.
"정 선생님, 실망하기는 너무 이르오. 부모의 희생과 사랑이 있었기에 오늘의 장한 자녀들이 되어 사희의 일원으로 자기의 전문직에서 열심히 일하며 가정을 잘 꾸려 나가고 있지 않소. 그간 뼈를 깎는 고생의 대가로 자녀들이 이 땅에서 꽃을 피우고 부모에게서 근면 성실 신앙심을 본받아 잘 살고 있지 않소. 앞으로는 정선생 자신이 남을 돕고 사랑하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자녀들을 그 일에 동참시키는 일이 남아 있소. 정 선생은 자녀들을 위해 미국에 너무도 잘 왔소. 앞으로 희망만이 있는 다복한 분이십니다. 하나님의 은총을 빕니다."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정씨는 많은 대가를 지불했다. 한국에서는 상상도 못할 고되고 힘든 일을 했고 지금도 진행중이다. 처음에는 후배를 따라 청소하는 일을 했다. 회사 직원들이 퇴근 한 후 그 사무실에 들어가 지저분 한 책상과 의자 바닥을 쓸고 닦고 정리하는 일을 아침 2~3시 까지 하다 보면 허리가 휘고 손과 다리의 힘이 다 빠져 겨우 집에 돌아온다. 목욕하고 좀 먹고 자는 올빼미 생활을 오래 동안 죽지 않을 정도로 했다.
너무도 힘들어 사업을 시작한 것이 한국 사람들이 많이 하는 세탹소다. 밤일이 아니기에 덜 힘들고 살만 했으나 그 일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더욱이 외국인이라는 핸디캡과 서툰 영어를 커버하기 위해서라도 남보다 일찍 문 열고 늦게 닫고 주말도 휴일도 휴가도 없이 일하다 보니 아까운 청춘이 일에 묻혀서 30년 가까히 흘렀다. 이제는 미국 생활에 적응이 되어 오히려 한국에 가서는 못 살 것 같은 착각을 하기도 한다.
그런데 여기에 문제가 있다. 처음 미국에 올 때 품었던 꿈이 이루어졌느냐 하는 것이다. 자녀 교육 때문에 미국에 와서 30년을 뼈를 갂는 고생을 했고 지금도 하고 있는데 정말 잘 한일이냐 하는 것이다. "한국에 계속 살았으면 직장에서 또한 가정에서 대접받으며 자녀들도 그 나름대로 공부시키고 지금은 연금 받으며 친구들과 어울려 골프 치고 여행이나 하면서 살텐데......" 하며 남 몰래 혼자 한숨도 쉰다. 더욱 후회스러운 일은 기대했던 자녀들에 대한 실망이다.
즉 애들이 부모에게 대하는 태도가 우선 마음에 안든다. 한 마디로 자기가 하고 싶어야 하고 싫으면 안 하는 태도다. 선생님께 대한 태도도 지식을 전달하는 사람으로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친구도 필요하면 친하게 지내고 마음이 안 들면 언제든 헤어진다. 애인도 자주 바뀐다. 살고 있는 도시에 세계적인 대학이 있고 입학이 되어도 다른 주로 간다. 그러면 우선 등록금이 비싸고 기숙사비를 추가로 내고 용돈까지 줘야한다. 부모의 잔 소리를 벗어나 자유롭게 살겠다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새도 어느정도 자라서 스스로 살만 하면 그 둥지를 떠나듯 자립하려는 마음을 이해는 하지만 막노동을 하며 뒷바라지 하는 부모를 조금이라도 생각한다면 그렇게 해서는 안 되는 것이 아닌가. 더 큰 문제는 결혼이다. 본인들이 좋으면 누가 뭐라고 해도 소용이 없다. 오랜 삶의 경험이 있기에 조언을 해도 마이동풍이다. 직장 선택이나 집을 사는 것도 부모와 의논하는 것보다는 통고하는 식이다.
가정이라는 든든한 울타리가 무너지고 학교나 국가도 자신을 위해 있다는 극단의 개인주의는 정씨가 미국에 올 때 자녀들에게 기대했던 것과 너무도 어긋난 것이었다. 물론 좋은 환경에서 자유롭게 공부하고 자기 전문직에서 일하며 시집 장가 가서 잘 사는 것은 다행한 일이지만 부모나 형제를 위한 희생이라든가 사회나 국가를 위한 헌신, 남을 위해 봉사한다는 생각을 한다는 데서 실망 하는 것이다. 정 선생의 긴 하소연을 듣고 나 나름의 대답을 쓴다.
"정 선생님, 실망하기는 너무 이르오. 부모의 희생과 사랑이 있었기에 오늘의 장한 자녀들이 되어 사희의 일원으로 자기의 전문직에서 열심히 일하며 가정을 잘 꾸려 나가고 있지 않소. 그간 뼈를 깎는 고생의 대가로 자녀들이 이 땅에서 꽃을 피우고 부모에게서 근면 성실 신앙심을 본받아 잘 살고 있지 않소. 앞으로는 정선생 자신이 남을 돕고 사랑하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자녀들을 그 일에 동참시키는 일이 남아 있소. 정 선생은 자녀들을 위해 미국에 너무도 잘 왔소. 앞으로 희망만이 있는 다복한 분이십니다. 하나님의 은총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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