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전에 안과에 다녀온 적이 있다. 실은 지난 봄부터 눈이 자꾸 충혈이 심해지고, 침침하기에 안과를 방문해야지 하면서도 피일 차일 미루다가 <정태기교수 초청집회>를 마치고 나서야 결국 안과를 찾게 된 것이다.

병원을 처음 방문하면 늘 그렇듯이 그 날도 몇 가지 자신의 신병에 관하여 질문하고 답하는 일이 있었다. 나는 전반적으로 건강하지만 통풍이 있다. 그래서 그것을 표시하고 시간이 되어 전문의를 만나게 되었다.

안과 전문의는 차트를 이레저레 보시면서 의례적인 질문을 하는 것이다. "가우트가 있으시네요? 심한 편이세요?" "아니요, 그리 심하지는 않습니다." 실제 요즈음은 심각하게 통풍 증상을 느끼지도 않고 있다. "그러면 약은 계속 드세요?" "아니요? 요즈음은 안먹는데요...." "그런데 왜 약을 중단하셨어요?" 순간 머뭇거렸다. 그러고보니 내가 요즈음 왜 복용을 중단했는지 뚜렷한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의사가 계속 다구친다. "그럼, 주치의가 중단하라고 하셨어요?" "아니요, 그건 아닌데요...." "그럼 왜 중단하셨어요? 옆에서 누가 안먹어도 된데요?" 생각해보니 어느 날부터 내가 혼자 약복용을 그만 둔 것이다. 통풍 증상이 안보이고 차도가 좀 보이니 다 나은 것처럼 여기고 중단한 것이다.

그러자 안과의가 하는 말이 "약 계속 드세요. 병 더 키우지 마시고 주치의가 하란데로 하세요. 저는 그 분야의 의사가 아니니 다른 말은 못하겠지만 주치의가 하란데로 하세요." 그러면서 다른 질문으로 넘어갔다.

그 날 귀가하면서 나 혼자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내가 왜 약을 그만 두었을까? 분명 의사의 지시도 아니고, 의사와 이 문제로 상의하고 그만둔 것이 아니다. 주위 사람들로부터 영향을 받은 것이고, 내 자신이 좀 나아지고 통풍 증상이 보이지 아니하니 나은 것이라고 착각한 것이다. 그런데 알지 못한 사이에 안과의사의 말처럼 내적으로는 도리어 병을 더 키워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통풍이란 게 그렇다. 평상시에는 괜찮다가도 한번 요산의 칫수가 일정수위를 넘게 되면 순식간에 어택이 오게 된다. 그 때는 매우 통증이 심하여 견디기가 어렵다. 비상처방을 해야하고 진통제를 먹고 요란을 떨게 된다. 순간의 고통은 심하지만 처방을 하고 나면 통증이 가라앉기에 일상의 생활로 돌아오면 금방 잊어버린다.

그리고 병이란 게 잘 아는 병일수록 치료하는 방법도 가지가지다. 경험들도 수없이 많다. 동병상린이라고 전에는 몰랐지만 정작 내가 통풍이 있다고 하자 주변에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이 통풍을 갖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각자 자신들이 치료하는 방식이 달라서 어떤 사람은 식이요법만으로도 해결하고, 어떤 사람은 한의로 치료하고, 어떤 사람은 양약으로 다스리고, 어떤 사람은 운동으로 다스리고, 심지어 어떤 사람은 육각수라는 물로 해결하고, 어떤 사람은 먹을 것 다 먹으면서도 자신만의 해결하는 비법들이 있다. 그러다보니 주위로부터 그럴사한 소리를 듣게 되면 자신에게 맞지도 않는 방법을 그냥 따라하다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병을 키워가더라는 것이다. 그리고 약을 중단하다가 더 심하게 악화되고 나서야 후회하는 경우도 있게 된다.

신앙생활에도 그런 부분이 있다. 자신에게 영적인 어려움이 생기고 문제가 생기면 가장 먼저 상의하고 찾아가서 영적인 진단을 받고 처방전을 받아야 할 사람은 바로 자신의 담임목회자이다. 그 분이 자신의 영적 상태를 가장 잘 알고 있는 영적인 주치의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작 문제가 생기면 담임목사를 찾는 사람이 의외로 많지 않다. 마치 틴 에이저들이 어려움이 생기면 부모를 찾지 않고 또래의 친구나 주변의 어슬렁거리는 사람을 찾는 경우가 허다한 것처럼. 그리고 자신의 방식데로 해결하려하거나, 올바른 해결 방안을 무시하고 주위에서 주워들은 풍월데로 처방하다가 도리어 내적으로 더욱 마음의 병을 키워가는 사람들이 허다하다.

나도 알지 못한 사이에 그런 우를 범하고 있는 것이다. 그날 안과병원을 나서면서 정작 "눈에는 아무 이상 없습니다. 생각보다 훨씬 건강한 눈을 가지셨습니다." 이 말의 안도보다는 "병, 더 키우지 마시고 주치의가 하라는데로 약을 드세요. 꼭 주치의와 상의하시고 그 분이 하란데로 하세요"가 심각하게 가슴에 남게 되었다. 그 날 나는 양약보다 더 귀한 영적인 약을 먹은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