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씨 100도가 넘는 찌는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아침 교회가 아닌 호텔 한구석에서 조용히 머리를 숙여 기도를 드리는 작은 무리에 동석을 했습니다. 매주 수요일 아침에 조찬기모임을 갖고 세상에 나아가 물질과 돈과 몸소 직접 씨름하기전 하나님앞에 영성을 다짐하는 기독실업인협회(버지니아지부 회장 박상근 장로)의 조찬기도모임이었습니다.

경제를 실질적으로 체험하는 기독실업인들에게 자원봉사로 성경과 경제에 관한 말씀을 함께 묵상하기위하여 이 조찬기도모임에 참여한 것이었습니다. 작은 무리이었지만 그래도 이곳 메트로폴리탄 워싱톤지역에서 어느정도 성공적인 사업을 하고 있는 기독인들이 일주일에 한번이라도 함께 모여 하나님앞에 기도하며 자신들의 경제적인 삶을 하나님께 맡기는 모습은 눈물날 정도로 감명시키기에 충분하였습니다.

7월 7월 수요일 아침 이들과 함께 묵상하며 성경적 경제학의 말씀을 나누었던 제목은 ‘사랑의 경제학’이었습니다. 기독교의 진리는 사랑일진데 사랑과 경제를 접목시켜 보고자 묵상과 고민까지 하자는 것이 과제이었습니다.

사랑과 경제라는 주제로 묵상을 하게 되면 일반적으로 하나님의 축복으로 사업에 성공해서 지극히 작은 자에게 사랑을 배푸는 자선을 생각합니다. 물론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라고 예수님이 말씀한 바와같이 자선은 기독실업인이면 반드시 실행해야할 사랑의 경제행위라고 여겨집니다.

경제행위에는 3가지의 기본질문에 답을 해야 합니다. 무엇을 생산할 것인가? 어떻게 생산할 것인가? 누구를 위하여 생산할 것인가? 즉 What, How, For Whom의 질문입니다. 지극히 작은자 하나에게 대한 사랑의 경제학은 세 번째 질문인 For Whom에 대한 대답입니다. 사랑의 경제학은 For Whom의 질문애 대하여서만 적용되는 것을 뛰어 넘어 What이나 How에 대한 질문에도 적용되는 진리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What과 How에 대한 성경적 진리를 터득하기 위해서는 먼저 What과 How를 움직이는 경제인에 대한 인식이 필요합니다. 경제인은 크게 나누어 기업인(Entrepreneurs)과 경영인(Managers)이 있습니다. 전자가 새로운 사업을 창출하는 경제인이라고 한다면 후자는 창출된 사업을 그 사업의 성공을 위하여 잘 관리하는 경제인이라고 정의할 수 있습니다.

20세기에 세계적인 경제학자인 Joseph Schumpeter는 창조적인 파괴를 감행하는 기업가정신이 근세이후 인류의 번영을 결과하게 한 시장자본주의의 근간이라고 역설한 바 있습니다.

기업가의 기능은 3가지입니다. 새로운 사업을 창조해야 하고, 사업의 불확실성에 대한 위험을 부담해야 하며, 그리고 그 사업의 성공을 위하여 전략기획을 수립해야하는 등 3가지 기능입니다. 기업가가 이 3가지의 기본기능을 성공적으로, 그리고 올바르게 수행하기 위해서 요청되는 근본적인 기업가의 자세는 무엇일까요?

바울은 “우리가 빚진 자로되 ....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라고 기업인의 기도교적 근본자세를 가르켜 주고 있습니다. 기업가는 새로운 사업을 창출하기 위해서는 벤쳐자본이 필요하기 때문에 빚을 지게 되어 있습니다. 기업가는 빚진 자입니다.

기업가가 빚진 벤쳐자본을 갖고 세상적인 욕심에 따라 육신대로 기업을 수행하면 반드시 스스로 망하거나 국민경제 전체가 침체에 빠지는 어려움을 겪게 되는 것입니다. 지난 2년동안 세계경제에 어려움을 가져다 준 대침체가 바로 기업가들의 육신적인 기능수행에 기인했다고 하여도 그리 지난친 주장은 아닐 것입니다.

사는 길은 기업가들의 영적인 기능수행일 것입니다. 기업가들의 영적 기능수행은 무엇입니까? 그 것은 바로 성령의 충만으로 이루어 지는 성령의 열매를 맺는 기능수행일 것입니다. 바로 성령의 열매인 사랑으로 기업의 3가지 기본기능을 수행해야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성령의 열매는 9가지라고 바울은 설명합니다. 성령의 열매가 단수인 것을 감안하면 성령의 열매는 사랑이고 나머지 8가지는 사랑의 특성을 설명해 주는 요소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8가지 사랑의 요소중 특히 3가지가 기업가의 3가지기능수행에 필수부가결의 중요성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기업가의 첫째기능은 창조입니다. 이 창조를 성경적으로 옳게 수행할려고 한다면 남을 해치거나 자기이익만을 십분 추구하는 ‘악한 것을 생각지 아니하고’,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실 때마다 ‘좋았더라’ 하신 것과 같은 전우주의 질서를 염두에 둔 창조의 순수한 ‘희락’을 갖고 창조해야하는 것입니다.

기업가의 둘째기능은 위험부담입니다. 성경은 가르쳐 줍니다. 사업의 미래가 불확실하기 때문에 위험이 따르게 마련인데, 모든 것이 자신만만하다고 ‘자랑하지아니 하’고 먼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에 대한 과신을 ‘절재’하는 자세가 요청됩니다.

기업가의 셋째기늠은 전략기회입니다. 전략기회을 수립하고 수행해 나아 갈 때에는 무엇보다 금해야 할 자세는 독단입니다. 기업가가 독단에 빠지지 않는 근본자세는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아니 하’고 공동으로 하나의 선한 목표를 행하여 상호협력하여 추구해 나아가는 ‘양선’이 필요한 것입니다.

기업가가 창조에 회락을, 위험부담에 절재를, 전략기획에 양선을, 각각 적응/수행해 나아 갈 때에 기업도 성공하고 그 기업이 참여하고 있는 국민경제도 번성하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사랑의 경제학’입니다.

여기에서 유의해야 할 것은 기업가가 기업가의 정신을 십분 발휘하기 위하여 ‘희락’과 ‘절제’와 ‘양선’등 사랑의 기업기능을 열심히 수행하는 것이 매우 중차대하겠지만, 자칫 잘못하면 ‘악을 생각하며’, ‘자랑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하며’ 하는 타락의 구렁에 빠지기 쉽다는 경계사항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사랑’의 속성을 열거하면서 사랑의 부정적인 측면에 대한 경계를 그렇게 열심히 강조하였는지 모르겠습니다.

이 것이 바로 기업인은 하나님이 주신 무한한 잠재성을 갖추고 있는 동시에 사망의 구렁텅이로 타락해 빠져 버릴 수 있는 죄성을 최소한도 영화의 단계에 이를 때까지 공유하고 있다는 성경의 진리입니다. 그래서 기업인은 누구를 막론하고 사랑의 기업기능수행을 충실히 하기 위하여 성령충만의 삶을 계속 유지하도록 힘써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