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교회는 6월을 국가와 민족을 위한 기도의 달로 지킨다. 6월 6일은 헌충일이며 6.25은 한국동란 기념일이다.

대부분 6.25동란 혹은 6.25사변이라 부르지만, 정식명칭은 한국동란이다. 현대 한국역사에 있어 6월은 민족적 비극의 달로서, 소위 同族相爭이 일어난 달이다. 이 전쟁의 결과 외세에 의해 우리가 원치않지만 나라가 두동강이 나서 반세기가 훌쩍넘어 60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그동안 우여곡절 끝에 한국의 대통령이 두 분이나 북한을 방문하고 남북이 화해구도속에 경협도 이루어지고 이산가족 상봉이나 금강산. 개성 심지어는 백두산관광까지 이루어져 남북이 통일되는가 싶었다. 그러나 서해에서 해군함정 무력충돌이 빈번하더니 드디어는 천안함 침몰사건으로 완전히 남북이 경색국면에 들어가게 되어 전쟁이 다시 일어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불안한 대치 속에서 다시 6월을 맞게 되었다.

세계대전후 두동강이 난 나라들이 몇몇이 있었으나 세월의 흐름에 따라 모두 통일이 되었다. 동독과 서독의 통일, 월맹과 월남의 통일이 그 예다. 그러나 한국은 여전히 통일이 요원한 가운데 있을 뿐 아니라 전쟁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으니 참으로 불행한 일이다. 이러한 때 대한민국안에서 조차 보수니 진보니 우파니 좌파니 해서 도무지 통일에 대한 진정성을 찾을 길이 없는 정치투쟁을 계속하고 있으니 해외에 있는 우리들은 참 답답한 노릇이다.

이에 질세라 한국의 교회와 그 지도자들은 파당이 되어 물고 찢기를 계속하고 강단이 정치강연장을 뜸뜨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어 하나님의 엄중한 심판이 곧 있을 것 같은 두려움도 없지 않다. 그러나 가장 큰 문제는 이러한 형편가운데서도 대부분의 한국인들이 태평성세를 구가하면서 아무렇지도 않게 생활하고 있다는 것이다. 불안을 조성하자는 이야기는 아니나 참으로 그렇게들 살아서 될까? 전쟁을 그 누구도 좋아할 사람은 없다.

한국동란때 3살이었던 나는 서울 북아현동집 방공호에서 이북으로 납치된 막내고모의 무릎에 앉아 비행기 폭격소리를 듣고 앙앙 울던 생각이 어렴프시난다. 당시 대한통운에 근무하던(그때는 마라보시라 했음) 작은 숙부덕에 화물열차를 얻어 타고 부산으로 피난가게 되었다.

몇날 몇일을 가는동안 피난 짐을 떨구어 잃어버린 일 하며, 아버지가 화물차에서 떨어졌으나 구사일생으로 살아 나신 일, 그리고 천안 언저리에서 사먹던 꿀맛같던 막김밥도 생각난다. 부산 초량역에서 내려 어디서 구했는지 리어카에 짐을 싣고 남부민동의 어느 이발소집 큰 다다미 방 한칸에 대가족이 몰려 살게 되었다. 부산으로 밀려든 피난민 덕에 부산의 산이란 산은 모두 판잣집으로 가득찼었다. 지금도 외국의 배들이 밤에 부산항에 입항할 때 부산의 산들에 파노라마처럼 펼쳐진 명멸하는 전등행렬에 나폴리같은 느낌을 받는다지만 사실 이 모든 광경은 한국동란의 결과물 중에 하나인 것이다.

피난 생활중에 크게 기억되는 것은 몇 번이나 일어났던 국제시장의 대화재사건이다. 삼촌들이 그때 시장에서 헐값으로 팔아 넘기는 설탕을 입힌 비스킷을 한 상자 사와서 실컷 먹던 일이며, 피난지에서 들어갔던 서울 재동국민학교를 다니려면 산비탈을 오르내려야 했는데 비오는 날이면 흙탕물이 도도하게 흘러 학교를 가지 못했던 기억도 생생하다.

9.28수복후 가장 먼저 서울에 올라온 사람들 중에 우리 가족이 끼었는데 북아현동 복주물근처의 집에서 충정로에 있는 미동 국민 학교 다니다 보면 그 산길에 시체가 여기 저기에 널려 있고 집들이 파괴되어 을씬년스러웠다. 이것이 나의 한국동란 경험이다.

사람들은 말한다. 이젠 그때와는 양상이 다르다고, 그러나 한번도 한국이 북한에 대해 우세에 있던 때가 없었던 것 같다. 겨우 연평해전인가 하는 것 하나 빼고는 판문점 도끼만행사건, 김신조 청와대 습격사건, 동해 울진사건 등등 모두다 한국이 일방적으로 당하고 그 후에는 그저 엄포만 노았지 별반 실효성있는 반격다운 반격을 하지 못하였다.

육군소장이 간첩에 군사기밀을 넘겨주는 나라, 주적은 북한이 아니라 미국이라고 생각하는 학생들, 친미는 결사반대하면서 친중은 침묵하는 사람들 이렇게 말하면서도 이런 말이 무슨 소용이 있나 좌괴감이 몰려온다. 나라가 약소해서 어쩔수 없어 이쪽 저쪽 외세에 눈치를 볼 수 밖에 없는 우리 신세가 처량할 뿐이다.

그러나 문제는 분명하다. 어쩔 수 없이 넘을 수 없는 외세라면 그 외세를 간섭하시고 주장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입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그것은 나라와 민족을 위해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는 것이다. 그것이 디아스포라 한인들의 책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