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전에 Blood Diamond라는 영화를 청년들과 함께 보았다. 부족간의 내전으로 고통 받고 있는 아프리카 시에라리온의 참상과 열악하다 못해 비참한 다이아몬드 광산의 채굴 현장과 원주민의 생명을 담보로 하여 추출된 다이아몬드가 서구로 팔리는 과정, 그 과정 속에서 독점을 위해 온갖 사기와 로비와 부정한 방법들이 동원되는 장면들을 생동감 있는 화면으로 보여준다.

마침 Interculture studies 수업 시간에 영화를 통해 문화현상을 프리젠테이션하는 시간이 있었다. 나는 블러드 다이아몬드를 소개했고, 결론 부분에서 서구의 세속적 자본주의를 지적하면서 Biblical capitalism으로 회복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서, 교수님의 날카로운 질문공세가 이어졌고, 일주일 후에 추가로 설명하기로 하였다. 자료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미국의 헌법의 기초가 성경에 근거한다는 것을 재삼차 확인하게 되었고, 더욱이 반독점법과 같은 경제관련 법률들이 성경의 정신에 기반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발견한 글을 우리말로 옮겨본다.

“미국의 경제관련 법률은 다원적 자본주의가 아니라 성경적 자본주의에 기초해 있다. 독점과 지나친 경쟁이 아니라 섬김과 공정한 룰에 의한 경쟁을 지지한다. 반독점법도 성경적 자본주의의 일환이다”

우리도 자본주의 사회에 살고 있지만, 세속적 자본주의가 아닌 성경적 가치관으로 회복된 거듭난 자본주의가 되도록, 우리가 선 곳이 바로 하나님의 나라가 되도록 이 땅을 그렇게 변화시켜 나가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아야 하는 사명을 부여받은 것이다.

자본주의는 사적 재산을 인정하며, 개인의 경제활동을 통한 이익의 창출을 인정하고 보장하는 제도이다. 이러한 자본주의의 공기 속을 살아가는 크리스천으로서 성경적 자본주의를 실천하는 방법을 몇가지 생각해 보고자 한다.

첫째, 나누는 것이다. 강제가 아닌 자발적 나눔이다. 공산주의는 강제로 나눠 버리기 때문에 의욕도, 보람도 없는 사회가 되고 말았다. 땀 흘려 일하고, 그 땀의 열매를 함께 나눌 때, 그 기쁨은 내게로 돌아온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베풀면 기쁨과 보람을 얻는다. 반대로, 남의 것을 빼앗거나 불로소득을 얻으면 웬지 모를 찜찜함과 도덕적 손해를 입게 된다.

나눔은 상대방의 실제적인 도움으로 연결되어야 한다. 자신을 드러내기 위한 나눔은 가식이요, 위선이다. 바리새적이다. 베다니의 마리아를 비난했던 제자들도 정말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긍휼한 마음이 아니라, 자신들의 베풂을 과시하기 위해서였던 것을 기억해야 한다. 예수님은 아무도 인정하지 않고, 비난만 쏟았던 이 여인의 헌신을 받으심으로써 "나눔"을 실천하셨다.

둘째, 바른 방법으로 버는 것이다. 베풀기 위해 옳지 않은 방법으로 돈을 끌어모은 것이 용인되는가? 돈을 벌기만 하면 축복인가? 바르지 않은 방법으로 번 돈을 헌금하는 것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가? 땅을 통해 폭리를 취하는 것이 하나님의 방법인가? 남을 죽이는 방식으로 일하는 것이 올바른 게임의 룰인가? 미국 피겨스케이팅에서 일어난 과도한 승부욕이 부른 참사를 우리 모두 알고 있지 않은가? 베푸는 방식 뿐 아니라, 버는 방식도, 이기는 방식도 바른 것이어야 한다.

복음을 전하여 영혼을 얻는 방법도 바른 방법을 통해서여야 한다. 한국의 일부 대형교회들의 전도대회 방식처럼, “전도상 승용차, 경품 냉장고”, 이런 식이면 곤란할 것이다. 교회가 사람을 돈을 주고 사도록 조장하고, 사람을 돈으로 가치 환산하는 세속적인 경영을 하고 마는 것이기 때문이다. "성경적"이라는 말은 방법 또한 "성경적"이어야함을 담보하는 말이다.

셋째, 흐르게 하는 것이다. 흐르는 것은 하나님의 자연법칙이다. 물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른다. 위치 에너지가 높으면 높을수록 심히 불안정한 상태에 놓인다. 물은 자연스럽게 아래로 흐르면서 살리고, 돕고, 세우는 역사를 일으킨다. 돈도 그렇게 흘러야 한다. 고인 물이 썩는 것처럼, 고인 돈은 썩게 마련이다. 흘러야 새로운 것으로 채워진다. 흘려 보내지 않으면 남도 죽고, 나도 썩는다. 흘려 보내면 남도 살리고, 나도 새로움으로 채워진다. 그런 역할을 연습하고, 훈련하여 지속적으로 개발하면 하나님께서 그 은사를 계속하여 계발시켜 주실 것이라 믿는다. 그런 면에서 돈은 축복이라기보다는 은사에 더 가까울 것이다.

물질 "축복"을 받고서 나누고, 섬기고, 흐르게 하지 않으면 더 이상 그 축복은 축복이 아니다. 받지 않으니만 못한 것이 되고 만다. 물질의 "은사"를 사용할 줄 아는 사람은 하나님 나라를 위해 물질을 나누고, 베풀고, 흐르게 하는 법을 아는 사람이다. 소통하고, 유통할 줄을 아는 사람이다. 그런 은사는 교회의 유익과 건강을 위해 지속적으로 발휘되어야만 한다. 그런 사람에게로 돈이 흘러가야 다시 돈이 자연스럽게 흘러 나오는 것이다. 그의 인격을 타고 자발적으로 돈이 흘러 사람들의 필요를 채울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자본주의 시대에 살고 있으며, 세속적 자본주의가 판을 치는 시대에 살고 있다. 교회조차 세속적 자본주의에 영향을 받고, 휘둘리기도 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크리스천은 우리 삶의 모든 영역을 "신학화"할 줄 알아야 한다. 자본주의를 "성경적"으로 만들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의 손이 닿으면 모두 "성경적"인 것으로 변모하는, 그런 영적인 "마이다스의 손"을 가진 크리스천으로 이 시대를 살아가면 좋겠다.

건강한 자본주의, 성경적 자본주의를 소망하며....

김인집 목사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