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번 국도로 베다니 비치가는 길은 지루하기 그지없다. 밋밋한 능선이라도 찾을 수 없는 넓은 들판이 뭉게구름이 가득찬 하늘을 이고 끝없이 펼쳐져 있다. 때때로 나타나는 시골길 교차로만 없다면 졸음운전이 제격인 길이다.

콩밭 매는 아낙네 대신 거대한 수레차가 물포말을 이루며 천천히 움직이는 이 한적한 길을 한해 한번 쯤 가는 것은 그 끝에 오션시티가 있는 까닭이다. 올해는 딸 내외가 콘도를 빌려 오붓한 가족의 만남이 이루어졌다. 아들, 딸 가정이 멀리 떨어져 사는 것은 아니지만 출가한 이후로 하룻밤을 같이 지내는 일들이 없었던 터에 자못 흥분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게다가 오랫만에 아들이 운전하는 차에 이제 말이 늘어 재잘되는 손자의 재롱을 받는 즐거운 여행이니 금상첨화이다. 이제 청년기를 지나는 아들의 직장생활의 애환이나, 가부장적 남편의 시중에 고달픈 며느리의 밉지않는 고발을 듣는 둥 마는 둥 나는 상상의 나래를 펴고 내 청춘기를 더듬고 있다.

나는 어느덧 저 넘실대는 대서양을 넘고 유럽과 아시아를 지나 대천해수욕장에 있다. 천안에서 미끄러져 서해 내륙을 끼고 달리는 장항선의 끝자락에 쪽빛바다가 망망으로 펼쳐진 곳 당시론 나폴리가 부럽지 않은 로망의 세계였다. 파도에 실려 어디론가 미지의 세계로 흘러가고 싶던 그 젊은 날에 꿈대로 나는 계절을 타지 않는 해변의 길손이다.

「쟝콕토」가 일찍이 노래하지 않았던가! “ 나의 귀는 소라껍질 바다 물결소리를 그리워한다.“ 너무 간결한 그의 시 속으로 빠져들어 바다 소리를 듣는다. 해조음이 흐르는 달밤 백사장을 걸어 작은 바위에 올라 나팔 귀를 세우면 들리던 이야기 「최남선」의 ‘海에게서 少年에게’이다.

“텨……ㄹ썩, 텨……ㄹ썩, 텨ㄱ, 쏴……아. 때린다, 부순다, 무너버린다. 태산(泰山)같은 높은 뫼, 집채 같은 바윗돌이나, 요것이 무어야, 요게 무어야, 나의 큰 힘, 아느냐, 모르느냐, 호통까지 하면서, 때린다, 부순다, 무너 버린다. 텨……ㄹ썩, 텨……ㄹ썩, 텨ㄱ, 튜르릉, 콱.(초략)”

내게 서지(書誌)를 몸소 가르쳐 주신 하동호 선생님이 읽어 주시던 이 시로 잠자던 나의 육혼(肉魂)이 깨여 시습작(詩習作)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바다는 언제나 나에게 충만한 시혼(詩魂)을 주는 고마운 스승이다. 갑자기 래디오에서 돈 깁슨(Don Gibson)의 상념의 바닷가( Sea of Heartbreak) 가 흘러 나온다.

“ 항구의 불빛들이 내게 보이지 않아요 나는 바다를 표류하는 방향을 잃은 배 같아요 비탄의 바다 잃어버린 사랑 그리고 고독 당신에 대한 기억, 그래서 당신이 내게 다시 돌아오게할 방법을 강구합니다. 나는 눈물의 바다에 있어요 비탄의 바다 ”

내게는 로망의 바다이지만 돈 깁슨에게는 비탄의 바다이니 바다라고 다 같은 바다가 아니다. 어쨌든 비탄의 바다 때문에 대천의 꿈에서 깨니 베다니에 도착해 있다. 오밀 조밀한 수로(水路) 변에 세워진 콘도에 여장을 풀고 손자와 해변의 길벗이 되어 하룻밤을 지내니 생의 행복이 따로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