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남산 자락에서 교육전도사로 사역을 시작한 첫 해 크리스마스 이브였다.
그 날 밤에 나는 마피아 게임이란 걸 아이들에게 처음으로 배웠다.
모두가 눈을 감고 고개를 숙인 틈에 사회자에 의해 여러 시민들 중에 마피아가 몇 명 지목된다.
마피아들은 서로가 마피아인 줄을 확인하지만, 시민들은 누가 마피아인 줄 알지 못한다.
눈을 뜨고 고개를 들면 모두가 시민이 되어 버린다.
분명히 마피아가 무리 중에 있는데 아무도 자신을 마피아라고 하는 사람은 없다.
모두가 선량한 시민이라고 한다. 도무지 믿을 수 없는 세상이 되어 버린다.

마피아는 자기가 시민이라고 주장하며 시민들을 마피아로 몰아세운다.
공격당하는 시민은 자기가 아무리 선량한 시민이라고 주장해도 잘 믿어주지 않는다.
선량한 시민의 죽음을 본 다른 시민들은 급기야 자신 외에는 아무도 믿을 자가 없다는 것을 알게된다.
자기가 살기 위해서라도 아무나 의심하고, 말로 상처주고, 결국에는 죽이는데에 협력하고 만다.
그 현장에서는 온갖 맹세가 난무한다. 온갖 눈치와 작전이 벌어진다. 헐리우드 배우들도 울고 갈 명연기가 펼쳐진다.
그 와중에 섭섭한 사람, 억울한 사람, 분한 사람들이 속출한다.
감수성이 예민한 여학생들은 눈물을 쏟아버리기도 한다.
어떤 경우에도 기분 좋게 게임이 끝난 경우는 없었다.
음모와 거짓말의 향연에 무슨 기쁨이 있으랴?
나의 첫 마피아 게임의 현장에서도 결국은 아이들을 부둥켜 안고 눈물의 통성기도로 마무리해야만했다.

마피아 게임은 교회공동체가 즐겨할 게임은 아닌 듯하다.
마피아 게임은 서로를 이간질한다. 서로를 불신하게 한다. 거짓말을 잘 하는 것이 최고의 미덕으로 추앙받는다.
그 곳에는 사랑도, 은혜도, 축복도 없다. 오직 죽느냐, 죽이느냐의 생명을 건 혈투가 벌어지는 것이다.
다만, 말과 눈치와 연기가 늘기는 하는 것 같다.
하지만, 오늘날 교회공동체가 때로 세상으로부터 비난 받는 것이 있다면,
우리의 말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우리의 행동이 진실하지 못해서일 것이다.
마피아 게임이 우리의 약점을 더욱 약하게 하고, 우리의 강점을 너무 강하게 하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본다.

말을 능수능란하게 잘하여 절대 책임지지 않고 요리조리 잘 빠져나가는 것이 능사는 아닐 것이다.
때로는 말을 좀 못하는 것이, 우직하게 당하는 것이 나을지도 모른다.
보복과 응징의 법칙이 난무하는 시대 속에서, 한 뺨을 맞은 채로 다른 뺨을 돌려댈 수 있는 여유가 있으면 좋겠다.
진실은 나도, 하나님도 알고 계시니 결국은 알아주지 않을까 하는 소망으로.....

마피아 게임을 어쩌다가 한번 하고 나면, 현실 속에서 나도 모르게 말이 많아지는 것을 느낀다.
비난은 남에게로 돌리고, 자신은 안전성을 보장받고 싶은 게임의 법칙같은 것이 나를 지배하려 한다.
아무리 좋게 봐줄려고 해도 마피아 게임은 성경적 세계관으로 볼 때 건전한 게임은 아니다.
서로의 상처를 보듬어주고, 서로를 믿어주고, 격려하고 축복하는 소그룹이 필요하다.
"게임은 게임일 뿐 상처받지 말자"라는 구호를 외칠 수도 있겠다.
하지만, 크리스천으로서 "상처받고 상처주는 것"은 장난으로라도 경건을 위해서 삼가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어짜피 혼자 살 수 없는 존재로 창조되었다.
부모와 배우자와 자식들과 친구들 속에서 살아가도록 지음받았다.
가정에서부터, 벗들의 모임으로부터, 여러 은사과 직능에 따른 모임에 이르기까지
천국을 경험하고 실천하는 건강한 소그룹이 세워지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건강한 소그룹이 희망임을 믿으며.....

김인집 목사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