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인 사회의 장래를 염려하는 분들을 가끔 만납니다. 그 중에서 한인 사회의 중추 역할을 하는 시민 단체들을 이끌어 나갈 차세대 지도자들이 없다고 염려하는 분들을 종종 만납니다.

워싱턴 지역에서 교포 사회의 중심 역할을 했던 기관으로서 교회와 시민 단체들을 꼽게 됩니다. 그 중에서 자리가 잡히고 실질적인 기여를 하는 교회나 단체들은 대부분 30년이 넘은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70년대 후반에서 80년대 초에 세워진 기관들입니다. 당시에 세워진 교회나 단체들 중에서 성공적으로 리더십 계승을 이룬 경우가 그렇지 못한 경우에 비해서 더 적습니다. 특히 리더십 계승이 한 개인의 리더십 차원에서 그치지 않고 기관을 주도하는 리더십 집단 전체를 고려할 때 성공의 비율은 더 떨어집니다.

먼저 리더십 계승을 위한 시도를 어렵게 만드는 이유를 일 세대 리더십이 세워지는 독특한 상황에서 찾아 봐야 합니다. 일 세대 리더십이 효과적으로 봉사를 하고 기여를 했던 가장 큰 이유는 초기 한인 사회가 작았을 때 형성된 긴밀한 인간관계 때문입니다. 오랜 역사를 가진 단체의 행사에서 발표하는 연혁이나 약사를 보면 워싱턴에서 오래 살았던 사람들의 눈에 띄는 것이 있습니다. 거의 대부분의 기관에서 일 년에 한 번씩 바뀌는 회장, 대표, 이사장의 명단입니다. 20년 전에 한 교회를 다녔던 분들이거나, 같은 지역 출신이거나, 같은 동문회로 연결되는 등 상당히 오랜 세월 인간적인 관계를 형성해서 개인적인 친분과 신뢰가 쌓인 분들입니다. 30년이 흘렀지만 30년 전에 형성된 인간 관계의 틀 안에서 활동한 것입니다. 규모가 작고 주변 환경이 열악한 가운데서도 교회가 성장하고 단체들이 힘 있게 활동할 수 있었던 이유는 인간적인 신뢰를 구축하는 데 별도의 시간을 쓰지 않고 즉각 뜻을 모아서 목적 추구에 동참할 수 있었던 인간관계 때문입니다. 특히 워싱턴에서 형성된 인간관계는 혈연, 지연, 학연을 통해서 한국에 밀접하게 연결됩니다. 한국에서 네트워크를 만들고 학계에서 정부 권력기관에 이르기까지 촘촘하게 연결된 인간관계가 일을 쉽게 만들어 줍니다.

그에 비해서 미국에서 태어났거나 어려서 미국에 와서 자린 차세대는 부모 세대처럼 서로 인간관계를 맺을 기회를 누리지 못했습니다. 이민 초기에 서로 의지하는 공동체의 체험, 한국 사회의 격변기에 젊은 시절을 함께 보낸 동지 의식, 인구의 70%가 농촌 인구였던 시절의 동향이라는 끈끈한 의식과 같은 동질감을 만들 수 없었습니다.

한인 사회가 동질성을 유지하는 공동체로 세대를 이어가려면 새로운 세대에 맞는 단체와 조직이 등장해야 합니다. 이미 “우리”가 된 분들이 모여서 좋은 일을 하는 차원에서 아직 “남남”인 사람들이 모여서 공동의 목적와 미션에 대한 동의와 계약에 의해서 형성되는 새로운 네트워크가 나와야 합니다. 아직 개인적인 신뢰를 쌓을만한 십 수년에 걸친 관계 형성을 갖지 못했어도, 건강한 직업윤리, 책임 있는 시민정신, 믿을만한 프로 정신을 의지해서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새로운 네트워크가 등장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운영방식, 재무 관리 방식, 공중을 향한 투명성과 회계성 등에서 획기적인 변화가 있어야 합니다. 그 과정에서 기관의 숫자가 줄어드는 현상도 벌어질 것입니다.

교회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관계가 목적을 낳기보다 목적이 관계를 만들어 주는 시대가 왔습니다. 이미 형성된 인간관계에 따라 교회를 세우기보다 교회의 본질에서 시작해서 새롭게 인간관계를 만들어가는 시대가 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