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과 영혼의 상처는 크기나 기간의 차이가 있을지는 몰라도 누구에게나 삶을 살아 가는 데에 발생하는 것이고 어떤 경우에는 가정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커다란 문제를 일으키기도 합니다. 상처에 대한 신앙적인 답은 교회안팍으로 많이 논의되어 오고 앞으로도 끊임없이 논난될 것입니다.

캐나다의 한 목회자인 Paul Young이 자기 자녀들에게 상처에 대한 영적 진리를 소설의 형식을 빌어 알려주기 위하여 육필기록한 책이 여러 출판사의 거절을 거처 친구들의 도움으로 출판한 것이 뉴욕타임스의 베스트셀러로 700만부이상 팔린 ‘오두막’(The Shack, Windblown Media, 2007)이라는 소설을 근래 읽었습니다.

소설의 주인공인 Mackengie는 2가지의 상처를 안고 있는 5자녀의 아버지입니다. 교회장로이면서 술주정뱅이로 아내를 구타하는 아버지로부터 첫 번째 상처를 받습니다. 13세때에 교회청소년부흥회에서 어머니를 구타하는 아버지에 대한 미움과 분노를 회개하는 기도를 한 후 귀가하니 아버지가 창고에 메어 달고 성경구절로 교훈하며 구타하는 것을 이틀동안 당하는 상처입니다.

Mack은 출가하여 오랫동안 해외로 방황하다가 Australia에서 신학공부를 하고 Oregon주로 돌아와 가정을 꾸밉니다. 어느 아름다운 가을 주말 5자녀중 집에 남아 있는 한 아들과 두 딸을 데리고 Camping을 갑니다. 반가와 아버지를 부르다가 Canue에서 물에 빠진 두 딸중 큰 딸을 구하고 돌아와 보니 귀염둥이 망내딸 Missy가 실종되었습니다. 구조대원의 도움으로 산골속 오두막에서 연쇄살해범에 의하여 성폭행 당하고 살해된 Missy의 피흔적을 발견하게 되는 상처가 두 번째 상처인 ‘거대한 슬픔’(The Great Sadness)입니다.

The Great Sadness를 겪은지 3년쯤 지난 어느날 Mack은 Papa라는 사람으로부터 Missy가 살해되었던 오두막에서 만나자고 하는 반송주소가 없는 우편엽서를 받습니다. 망설이다가 초청된 주말 가족을 친적집으로 보내고 친구의 차를 빌려 타고 눈쌓인 산길을 운전하여 오두막으로 갑니다. 오두막에 남아 있는 Missy의 피흔적을 만지고 상처를 되새기며 돌아 가려는 순간 환상적인 듯 별안간 따뜻한 기운이 감돌고 온 세상은 아름다운 여름으로 변합니다.

주인공 Mack은 그 오두막에서 Papa라고 하는 African American 중년여인과 Jesus라고 하는 중동출신 청년, 그리고 Sarayu라고 하는 동양계통의 여자정원사를 만납니다.

주말내내 이들과의 대화를 통하여 상처란 무엇인가(상처의 정체성), 상처는 왜 존재하는가(상처의 존재성), 그리고 상처를 어떻게 치료하는가(상처의 치료제) 등 심각한 질문에 대한 답을 Mack은 터득하게 됩니다.

‘오두막’의 3분의 2이상을 차지하는 오랜 대화속에서 주인공 Mack에게 가르켜 준 상처에 관한 하나님의 진리는 우리가 상처에 대하여 너무나 잘 알고 있는 것같지만 누구나 인생을 살아가노라면 겪는 것이고 단순히 하나님의 위로를 갈구하는 것으로 던져 버리는 것 이상의 놀라운 상처의 본질을 묵상하게 합니다.

어찌 보면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우리를 구원하신 참된 목적이 무엇인지, 구원을 받은 우리들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믿음의 생활을 어떻게 꾸려 나아가야 하는지, 상처의 본질에 관한 하나님의 진리를 터득하면 도움을 얻을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Papa와 Jesus와 Sarayu가 Mack에게 대화를 통해서 가르켜 준 상처의 본질, 즉 그의 정체성, 존재성, 치료제 등을 재조명하면서 신앙생활에 도움을 얻고자 합니다.

첫째, 상처란 무엇입니까?
상처란 제한(Limitation)안에 구속하는 것이고, 권력과 조직을 선호하는 자주(Independence)를 선택하는 것이라고 가르쳐 줍니다. 제한은 자유(Freedom)의 반대 개념이고, 자주는 관계(Relationship)의 반대개념이기 때문에 상처란 바로 자유를 포기하는 것이며 동시에 관계를 끊어 버리는 것이라는 주장입니다.

Papa는 Mack에게 상처란 훨훨 자유롭게 날 수 있는 우리의 날개를 절단하는 것이라고 설명해 주고, 또한 상처란 자기 스스로 판단하고 자기 원하는 대로 해결하고자 하는 권력구조에 탐닉하게 된것이라고 말 해 줍니다.

즉 자유와 관계는 바로 사랑(Love)이므로 상처란 곧 사랑을 포기하고 사랑을 끊어 버리는 것이라는 논거입니다.

그러면 상처가 곧 사랑을 포기하고 끊어 버리는 것이라고 한다면 왜 상처가 잠시 있다가 사라지지 않고 오래 지속되는 것인지, 아니 좀 성경적으로 질문한다고 하면, 왜 하나님은 상처가 발생하는 것을 막아 주지 않으시고 그대로 방관하고 계신지, 하는 상처의 존재성에 대한 둘째질문입니다.

Mack은 직접 Papa에게 주장을 불평스럽게 던집니다. “당신이 이러한 일들(상처나 전쟁이나 재난등)을 일으키지 않았을 것입니다 허나 당신은 분명 그 것들을 (막을 수 있는데) 막지 아니 하였습니다” 라고. 더 나아가 Mack은 Papa에게 도전합니다. “그래서 당신은 상처를 이용해 사람들이 당신에게 돌아 오도록 강요하는 것입니까”라고.

어찌보면 성경에서 욥기를 읽으면서 종종 품었던 질문의 내용입니다. 욥이 믿음을 지켜 후에 2배의 축복을 받았지만 욥에 대한 상처를 사단에게 허락하신 것은 욥의 믿음을 시험하시고 욥으로 하여금 그 믿음을 정금같이 굳건하게 지켜 하나님에게 붙어 있도록 (돌아 오도록) 하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섭리가 아닌가 하는 질문입니다.

그러나 Mack이나 우리의 의문은 상처에 대한 하나님이 진리를 온전히 깨닫지 못한 데에서 온 것입니다. ‘오두막’에서 Papa의 대답이 상처에 대한 참된 하나님의 진리를 말해 줍니다.

“모든 악(Evil)은 자주(Independence)에서 오고 자주는 당신의 선택입니다. 만일 내가 (자주가 악의 근원이라고 해서) 자주의 모든 선택을 단순히 무효화시킨다고 할 것같으면, 당신이 알고 있는 모든 세계는 존재하기를 끝일 것이며 사랑은 아무 의미를 상실할 것입니다.” “만일 내가 인간들이 선택한 결과들을 다 거두어 간다고 한다면 나는 (바로) 사랑의 가능성을 파괴하는 것입니다. 강요된 사랑은 전혀 사랑이 아닙니다.”

요약하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상처의 존재와 지속을 허락하시는 것은 비록 악의 근원인 자주를 선택했다고 할지라고 ‘선택’을 파괴하시지 아니 하시고 ‘자유’와 ‘관계’와 사랑‘으로 가는 유일한 길인 ’선택‘을 존중하시는 참 사랑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인 것입니다. 선택을 없이 하면 자유도 관계도 사랑도 없는 세상이 됩니다.

마지막으로 ‘오두막’은 상처를 어떻게 치료할 것이가라는 셋째질문에 대한 해답을 제시해 줍니다.

그 것은 용서하는 것입니다. 용서는 자유롭게 날아 다니게 하는 날개를 절단하는 제한에서 벗어나는 선택이며, 또한 자기 스스로 심판자가 되는 자주를 포기하는 선택입니다.

Paul Young은 여기에서 매우 중요한 진리를 Papa의 대화를 통해 들려 줍니다. “용서는 관계(사랑)를 창출하거나 형성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용서는 관계에 도달할 수 있는 길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참된 자유, 관계, 사랑은 용서로부터 시작합니다.

Mack은 오두막에서 내려오다 자동차 사고를 당하고 Papa가 안내해 준 곳에서 Missy의 시체를 찾는 것으로 소설은 끝을 맺습니다.

오두막은 상처가 존재하는 현장이면서, 바로 그 현장에서 삼위일체 하나님을 만나 상처가 제한과 자주에 속한다는 것, 상처가 자유/관계/사랑에 이르는 길인 선택을 공유하고 있다는 것, 상처는 관계를 가능케 해 주는 용서를 통해서 치료된다고 하는 것등 상처에 대한 하나님의 진리를 터득케 해주는 소설입니다. 일독을 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