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미 대륙에서 브라질 다음으로 큰 아르헨티나는 세계에서 8번째, 한반도의 13배 넒은 영토를 갖고 있다. 아르헨티나라는 뜻은 ‘은’을 뜻하는 라틴어 Argentum 에서왔다. 북쪽으로 볼리비아, 동쪽으로 파라과이, 브라질과 국경을 이룬다. 남쪽으로는 우루과이와 국경을 이루고, 서쪽으론 칠레와 안데스 산맥을 사이에 두고 인접하고 있다.

세계의 지붕 히말라야 못지않은 안데스의 고봉들이 즐비한 아르헨티나에는 아꽁까구아(aconcagua, 6,959m), 삐시스 6,882m, 오호스 델 살라도 6,879m, 보네떼 치꼬 6,759m, 줄라이자꼬 llullaillaco 6,739m 들이 병풍처럼 둘러서있고, 중부와 동부에는 대평원 빰빠스가 끝도없이 펼쳐져 있다. 전체 인구중 95%가 백인, 메스티조 4.5%, 마뿌체스, 꼬야스, 또바스, 마따꼬스, 치리과누스 등 인디오들이 있다.

비옥한 빰빠의 땅 아르헨티나는 2250만 헥타르 농지에서 매년 6200만톤의 콩, 밀, 옥수수, 사탕수수가 출하된다. 4850만두의 소, 1350만 양 축산, 육류, 모피가공, 석유와 개스등이 풍성하여 한때 세계 10대 강국중 하나였다. 아르헨티나의 대표적인 음식은 송아지 갈빗살에 암염을 발라 참나무 숯불에 기름기를 쏙빼고 구운 ‘아사도’ 바베큐다. 실컷먹어 속이 더부룩하면, 대초원에서 자란 신토불이 약초를 으깨어 물에타서 마시는 ‘마떼’를 선호한다. 브라질과 함께 세계 축구를 쥐락펴락하는 스포츠 강국으로 마라도나, 메시, 떼베스같은 걸출한 슈퍼스타들을 배출했다.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좋은 공기들)에 뿌에르또 마데로 노르떼(Puerto madero norte) 항구가 생기기전엔 ‘라 보까’(la boca, 입술)항이 유일했다. 라 보까에서 ‘땅고’ 춤이 시작됐다. 한국의 인사동 골목처럼 다양한 골동품과 토산품이 판매되는 까미니또(작은 골목)는 파스텔풍의 알록달록한 채색으로 집과 거리를 아름답게 수 놓았다. 까미니또에 남국의 폭염이 한풀꺽이고, 선선한 저녁바람이 불때면, 애수 짙은 음악에 맞춰 멋진 남녀 무희들의 환상적인 땅고의 몸짓을 볼 수 있다.

본래 ‘라 보까’는 값싼 노동력을 필요로하는 조선소를 비롯한 여러가지 형태의 공장이 밀집해 있었던 곳이다. ‘까미니또’엔 깐띠나(선술집)가 곳곳에 있었고, 육모초보다 쓴 인생의 슬픔을 맛본 거친 선원들이 모여들었다. 살아갈 용기를 잃고 방황하던 바가분도(방랑자)들의 안식처였고, 에스뻬란사(소망)를 회복하는 피난처였다. 그곳엔 이민자들의 향수, 낭만, 정열, 사랑, 애수, 설움과 외로움, 희망과 절망이란 다양한감정들을 담아, 남녀가 종이한장 들어갈틈도 없을 정도로 몸을 밀착시킨채 아슬아슬하게 춤추던 땅고(tango)춤이 있었다.

땅고는 아르헨티나와 우루과이 사이를 흐르는 라플라타강 유역, 몬테비데오, 부에노스아이레스 두 도시의 주변에서 싹이트고 자란 독특한 음악이다. 외로운 선원들이 라 보까 선착장에 19세기 쿠바에서 유행하던 2/4박자의 가요조의 하바네라를 전하였고, 여기에 라 보까와 몬테비데오 거리에서 연주되고 춤추던 칸돔베(candombe)가 섞여서 밀롱가가 파생됐다. 밀롱가(milonga)의 변형이 땅고 음악이 되었다.

피아노, 더블베이스, 바이올린, 독일의 하인리히 반드가 만든 손풍금 반도네온(bandoneon)에 의해 땅고가 연주되면, 무표정한 남녀무희의 쓸쓸하게 절제된 관능미와 애수 깊게 서린 땅고의 멋진 춤사위가 펼쳐진다.

땅고에 가장 잘 어울리는 가수는 스페인 출신의 ‘훌리오 이글레시아스’고, 슈크림처럼 달콤한 그의 노래 ‘에레스 또도 엔 미’(Eres todo en mi, 너는나의 모든 것)에 맞춰 가장 멋지게 스테이지를 누빌 무희는 관능미의 화신 ‘안또니오 반데라스’ 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