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사 쿠테타가 반복되면서 불안한 우간다, 에이즈 병으로 많은 사람들이 계속 죽어나가고 폭력 약탈과 강간이 무성한 나라, 정치적 통제가 불가능한 나라라는 내 이미지를 싹 바꾸어 놓았다. 마치 6 25 사변 후에 영국의 한 신문기자가 한국을 다녀가서 '한국에서 민주주의를 찾는 것은 쓰레기통에서 장미를 찾는 것과 같다'고 한 글이 얼마나 잘못 되었는가를 알수 있듯이 나의 추상적인 우단다에 대한 잘못된 이미지를 바꾸었다. 지난주 토요일 저녁 Westminster Presbyterian Church (Evergreen 한국교회)에서 우간다의 고아 합창단의 공연을 보고 난 후다. 많은 단원들이 오려고 했으나 비자를 못 받아 10명만 오게 되었고 지도자 몇 분이 같이 왔다. 고아가 된 이유는 주로 내전과 에이즈 병이 주 요인이었다. 고아들이지만 모두가 밝고 명랑하고 구김살이 없었다. 1시간 이상의 연주는 다양했다. 전통적인 의상은 생각보다 훌륭했고 악기는 한국과 비슷하면서도 다른 점이 있었다. 격렬하게 온 몸을 좌우로, 위 아래로 흔들며 추는 춤은 생존의 몸부림이었다고 할까. 강팍한 땅에 오랜 식민지 생활, 가난과 무지 그리고 에이즈로 수없이 죽어가는 상황속에서 부패된 정치인과 기업가들의 사리사욕 그리고 종교적인 무능 등의 소용돌이속에서 누구를 기대하기 보다는 뜻이 있는 사람들이 일어나 미래를 개척하자는 일종의 몸부림이었다. 그들이 부르는 노래는 깊이 패인 상처들을 서로 싸매주며 위로하고 손에 손을 잡고 내일의 우간다를 건설하자는 멧시지였다.

그 날 공연 전에 교회에서는 식사를 제공하고 단원들에게 선물을 주고 헌금도 모아 주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대화를 하면서 그들의 꿈을 들을 수 있었다. 앞으로 열심히 공부해서 의사, 교사, 목사 등 우간다에 필요한 봉사자가 되겠다는 포부였다. 더욱 내 마음을 움직인 것은 공연 도중 우간다의 상황과 고아들을 돕자는 모금의 메시지를 전달한 젊은이는 한국의 고아 출신이었다. 어린 나이에 미국에 입양되어 잘 자라서 지금은 우간다의 고아들을 돕고 있는 것이다. 도움의 고마움을 알기에 남들을 돕고 있는 것이다.

합창을 들으면서 60년 전 한국의 6 25 전쟁이 오버랩되었다. 아름다웠던 3천리 금수강산이 김일성의 남침으로 시작된 전쟁으로 폐허가 되었다. 전쟁은 확전되어 한국을 비롯한 세계의 많은 젊은이들이 죽고 죽이고 팔 다리를 잃었고 공장은 다 부서지고 거리는 폐허되고 상이군인들이 지팡이에 의지하여 구걸을 하고 고아들은 깡통을 들고 이 집 저 집 문 밖에서"밥 좀 주세요"하고 애원을 했다. 백만명이 넘는 월남한 피난민들이 산 밑에 가마니를 치고 깔고 하루 하루를 연명하는 그 소용돌이 속에서도 정치인들은 해 지는줄 모르고 당파 싸움을 하고 사기꾼들은 혼란을 기회로 남의 등 치기에 여념이 없던 그 때 어디를 보나 희망이 보이지 않았던 그 시기에 희망의 횃불을 높이든 몇 사람이 있었다.

피얼스 박사의 후원으로 음악계의 거장인 장수철 박사가 전국에서 노래 잘 하는 고아들을 모아 강 훈련을 시켜 세계적인 선명회 합창단을 만들어 전 미국을 돌았다. 카네기 홀을 비롯해 가는곳마다 최고의 찬사를 받았다. 그 일은 한국에 대한 이미지를 바꾸어 놓았다. 동족끼리 싸우다 미국을 끌어들여 자국의 청년들이 그 곳에 가서 죽거나 병신이 되게한 한국으로만 알던 미국인들이 선명회 합창을 보고는 한국을 다른 각도에서 보게 되었다. 한국은 민주주의를 위해 공산주의를 대항해서 최전선에서 한국만 아니라 미국을 위해서도 용감하게 싸운 나라, 미국의 우방이요 끝까지 도와야 할 나라로 인식을 바꾸어 놓은 것이다. 당시에도 공연 중 약간의 시간을 얻어 미국의 후원을 감사하며 한국은 폐허에서 반드시 일어날 것을 약속했다. 미국인들은 한국을 돕는 일이 자국을 돕는 일이고 또 미국의 도움으로 한국은 곧 민주주의 국가가 될 것을 확신했다는 간증들이다. 미국의 민요를 기차게 부를 때 그들은 흥분했고 더욱 미국 국가를 부를 때에는 모두 일어나 박수를 치며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는 것이다. 폐허에서 희망의 불씨를 노래로 성화시킨 선명회 합창단, 5 16 후에는 우리도 "잘 살아보세" 라는 노래와 더불어 경부 고속도로를 만들고 포항 제철소를 세우고 새마을 운동을 하며 보리고개를 넘어서서 경제 대국으로 가는 길을 닦은 것이다.

국가가 어려울 때 새로운 생존의 횟불을 높이 들고 희망을 노래하는 우간다 고아들의 합창단은 우리의 선명회 합창단과 너무도 흡사했다. 마치 어느 그림에 소경의 손에 있는 비파의 줄은 다 끊어졌으나 한 줄이 남아 있는데 그 줄은 희망의 줄이고 그 줄로 희망의 노래를 부를 때 그 곳은 다시 새날을 맞이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