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怒)는 종 노(奴)에 마음 심(心)으로 되어 있으니 아마 마음의 노예된 상태가 노가 아닐까 한다. 노(怒)의 또 다른 명사형으로 노여움을 의미하는 노혐(怒嫌)이 있으나 자주 사용되는 단어는 아니다. 노함의 동사 노하다는 성내다 라는 뜻이며, 노(怒)에는 여러 종류의 노(怒)가 있으니, 우선 분노(忿怒)이다. 한자로는 憤怒로도 표기한다. 분노는 노가 폭발하는 상태를 말하는바 예를 들면 목소리는 분노에 차 있다 하여 어떤 사건에 대하여 노가 끓어 오르는 것을 두고 말한다. 노가 격발(激發)한다라는 표현이 대체로 분노의 극점을 묘사하는 말이다.

성경에서 분노는 죄로 정의하며 천주교의 교리로는 칠죄중의 하나로 취급한다. 그러나 분노가 다 죄는 아닌 것이 분노에는 공분(公憤)있으니 공적인 일을 위한 분개를 죄로 취급할 수는 없을 터이다.

천안함사건으로 국민들의 분노가 끓어 오르다라고 할때의 분노는 사사로운 분노 곧 사분(私憤)이 아니라 감정이 북받쳐 올라 끓어오르는 공분(公憤)일시 분명하다. 문제는 이 공분을 어떻게 승화시키는가이다. 만약 북한 잠수정의 어뢰에 의한 격침이라 결정이 날 때 한국민의 발노(發怒)가 어떻게 나타날지에 대하여 온 국제사회는 초미의 관심을 가지고 예의 주시하고 있다.

그러므로 자칫하면 소잃고 외양간 고치는 것이 아니라 외양간마저 주저앉아 버리지나 않을지 노심초사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한국민이 격노(激怒)한 가운데 응징을 주장한다 하여도 십분 이해가는 일이 아닐 수 없으나 아직 침몰의 원인 규명이 안된 이 시점에서부터 냉정해지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공분을 승화시키는 방법은 성도들이 먼저 거룩한 분노로 하나님께 부르짖어 아뢰는 일이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진노(震怒)하심에 맡기는 것이다. 하나님의 진노는 신노(神怒)인 까닭에 그의 주권으로 반드시 견노(譴怒)하시고 성노(盛怒)하실 것이 분명하다.

윌로크릭교회의 빌 하이벨스 목사가 ‘다윗의 장막’의 저자인 토미 테니 목사가 말한바 거룩한 불만족’(Holy discontent)이란 용어를 차용해서 사용하자 모든 설교자들이 즐겨 사용하는 관용어구가 되었다. ‘거룩한 불만족’이란 쉽게 말하면 ‘거룩한 분노’란 뜻이다. 이 세상에는 끊임없는 불의 부정 부패 죽음과 테러, 전쟁. 인간 가치관의 하락 등으로 거룩하게 살려는 사람들에게는 공분(公憤)에 쌓이지 않을 수 없다. 전쟁의 포성이 멎은지 반세기가 훨씬 넘었음에도 불구하고 젊은이들의 피를 요구하는 한반도의 이 불합리한 현실앞에서 우리는 대주재(大主宰)이신 하나님께 우리의 억울함을 우리의 연약함을 우리의 난처함을 아뢸 수 밖에 없다. 이것만이 그분의 진노를 촉노(觸怒)하는 것이며 노매(怒罵)케 하시는 일인 까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