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경제를 송두리째 흔들었던 미국발 금융위기의 진앙지였던 월가 역시 금융계 판도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베어스턴스, 리먼브러더스 등, 위세를 떨치던 대형 금융회사들이 간판을 내리고 유수한 금융회사들이 줄줄이 정부의 구제 금융에 손을 내밀었습니다. 그 소용돌이 속에 1988년 뉴욕 맨하탄의 작은 사무실에서 출발한 블랙락은 엄청난 진가를 발휘하여 세계1위의 자산운용사로 등장했습니다. 2009년 말 현재 세계 금융시장에서 블랙락이 굴리는 운용자산(Asset Under Management)은 무려 3조 3,460억 달러(3,800조원)로서 대한민국 전체 경제규모(2008년 GDP 9291억 달러)의 3.5배가 넘는 어마어마한 돈입니다.

어떤 ‘형님 금융회사’도 등에 업지 않은 독립 자산운용사가 불과 20년 만에 세계3위 (2008년 기준)까지 발돋움한 것만 해도 놀라운 성공이었는데 지난해 또다시 기록을 경신했습니다. 자신보다 덩치가 큰 업계1위의 ‘바클레이즈 글로벌 인베스터스’를 인수하여 운용자산이 3조 달러도 넘는 초대형 자산운용사가 되면서 2위와의 간격을 엄청나게 벌려 놓은 것입니다. 또한 블랙락이 직접 굴리는 돈 말고도 이 회사와 인연있는 돈이 세계 금융시장에 더 있습니다. 전 세계 10개도 넘는 기업, 보험사, 연금 등, 기관 투자가들이 이 회사가 개발한 이른바 ‘블랙락 솔루션’이라는 투자 위험관리 시스템을 구입해 이 방식대로 돈을 굴리는데, 그것까지 따지면 9조 달러(1경(京)원)에 달합니다.

게다가 미국발 금융위기는 핑크회장을 월가에서 핵심중의 핵심인물로 만들어 놓았습니다. 미국 언론 등은 그를 ‘커튼 뒤의 금융제왕’, ‘가장 영향력 있는 금융인’이라고 평가합니다. 전임 헨리 폴슨 재무장관, 현재의 가이트너 재무장관은 물론 유수의 금융회사CEO들까지 수시로 핑크회장에게 전화를 걸어 조언을 구하고 도움을 청합니다. 블랙락은 구제 금융을 받은 미국 양대 모기지기관 패니메이와 프레디멕의 모기지 관련 분석에도 관여하고 미국 연금과 재무부가 사들인 1300억 달러 상당의 베어스턴스와 AIG부실자산을 관리하는 등 미국발 금융위기의 수습과정에 깊숙이 관여하고 있습니다.

다른 금융회사들이 휘청대는 와중에도 블랙락은 타격을 덜 입고 오히려 커진 비결에 대하여 핑크회장은 “무엇보다 우리의 비즈니스 모델 덕분입니다. 우리는 다른 금융회사들처럼 자기 돈에 차입금까지 끌어들여 자기 계정으로 투자하는 것을 하지 않겠습니다. 철저히 고객돈만 굴려주고 그 대가를 받는 업무만 해왔기 때문에 고객입장에서서 시장을 좀 더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었습니다.” 블랙락은 월가의 다른 금융회사들과는 태생부터가 달랐습니다. 원래 핑크회장은 채권트레이더 출신이었습니다. 오늘의 블랙락은 그가 젊은 시절 겪었던 ‘뼈아픈 실패’에서 탄생했습니다. 위기 속에서 빛나는 오늘의 성공은 바로 그 ‘과거의 실패’에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습니다. 핑크회장은 30년 전 MBS(주택담보부 증권)시장을 개척한 선구자입니다. 30년 후 금융위기가 불거지고 패자가 속출한 이 시장에서 그가 승자의 스토리를 쓰고 있는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24년 전, 호되게 매를 먼저 맞은 덕분입니다. 첫 직장인 퍼스트 보스턴에서 채권 트레이더로 일할 당시 솔로몬 브러더스의 루이스 레이니어리와 경쟁을 벌이며 MBS시장을 키워갔습니다. 만28세에 최연소 임원이 되는 등, 승승장구했습니다. 그러다 1986년 2분기에 그의 팀이 1억 달러의 손실을 냈습니다. 돈을 잃고 나서 왜 돈을 잃었는지는 말할 것도 없고, 그 전에 왜 그렇게 큰돈을 벌었는지도 역시 모르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큰 손실을 보고 나니 그를 보는 사람들의 눈이 차갑게 달라진 것을 느꼈습니다. 회사를 그만두고 18개월 동안 방황하다가 다시 투자 업을 하기로 결정하고 무엇보다 ‘리스크 관리’에 역점을 두어야겠다고 그때 결심했습니다.

1988년(22년 전)회사 문을 열 때부터 직원의 25%가 리스크관리와 관련된 일을 했습니다. 다른 회사와 특이하게 다른 점입니다. 그리하여 ‘리스크 관리’와 관련하여 전 세계에 하나로 통합된 시스템을 구축함으로써 리스크가 어디에 얼마나 있는지 보다 정확히 분석할 수 있고 문제를 최소화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리스크 관리는 위험을 피하거나 무위험(risk free)를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가지고 있는 위험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어야 하고 적절히 비용을 치를 각오가 되어 있을 때 위험은 그에 상응하는 수익을 올려 주는 것입니다. 리스크 관리는 위기 때는 물론이지만 모든 것이 잘 될 때 더더욱 중요합니다. 금융회사뿐 아니라 모든 기업, 모든 분야가 해당되는 것입니다. 리스크 관리에는 중요한 두 가지가 있는데 첫째는 좋은 시절이든, 나쁜 시절이든 항상 지속적이고, 일관된 리스크를 분석하고 이해하는 Tool(수단)이 있어야 하고, 둘째는 그 수단을 사용하는 문화가 갖춰져 있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블랙락의 성장 사를 보면 전문점으로 실력을 쌓은 뒤 모자란 부분을 보완하여 마침내 대형백화점이 됐습니다.

22년 전에 겪은 뼈저린 실패가 세계1위 기업을 이루는 밑거름이 되고, 가장 높은 빌딩을 받혀주는 기초가 된 것입니다. 큰 실패가 큰 성공의 디딤돌이 되느냐, 또다시 실패하는 걸림돌이 되느냐는 각자의 판단과 결단에 달려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