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교회협의회 증경총회장이자 현 서울기독대학의 전신인 대한기독교신학교를 설립했던 최윤권 목사가 최근 워싱턴을 방문했다.

지난 2월 27일에는 누님의 80회 생신을 맞아 뿔뿔이 흩어져 있던 형제들이 오랜만에 모였으며 28일에는 Journey at Central Christian Church<여정(중앙)크리스챤 교회>에서 말씀을 전했다.

최윤환 목사의 형인 최윤권 목사는 서울기독대학 설립과 사회복지법인 시온 어린이집 설립 등 한국에서의 활발한 선교활동 공적을 인정받아, 지난 2007년 한국인 최초로 북미 그리스도의교회로부터 ‘환원상’을 수상했다. 환원상은 미국 그리스도의교회 신학대학에서 매년 시상하는 최고의 권위를 가진 상으로서 목회, 신학, 사회사업 등 각 분야의 공로를 종합해 매년 3명을 선정하고 있다.

최 목사가 속한 그리스도의교회는 미국 내 5대 기독교파에 들며, 현재 미국 내 5만여 교회가 소속돼 있다. 한국에도 400여 교회가 있지만 미주내 소속 한인교회는 그리 많지 않다.

그리스도의교회의 가장 큰 특징은 "성서로 돌아가자"며 “초대교회로 환원하자”고 외치는 것이다. 이런 환원운동은 시대마다 있어왔지만 한국 그리스도의교회는 그 뿌리를 미국의 환원운동에 두고 있다.

최윤권 목사는 그의 글에서 “미국 환원운동의 주역은 역시 스코틀랜드에서 19세기 초에 건너온 토마스와 알렉산더 캠벨 부자(父子)을 아니 들 수 없다. 토마스 캠벨(Thomas Campbell)은 원래 장로교 목사로서 1803에 건강관계로 미국으로 건너와 침례교와 함께 일하였고 북미주 래드스톤 협회 규약과 헌장을 쓰는 중에 느끼는 바가 있어 "The Declaration and Address" 즉 "선언과 호소"(이후 "선언"으로 약칭함)를 썼는데 이 문서가 실로 미국의 환원운동에 불을 붙인 문서가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고 적었다.

한국 그리스도의교회의 초기 환원운동 지도자들로는 성낙소(成樂紹) 목사, 최상현(崔相鉉) 목사, 동석기 목사, 강명석 전도자 등을 말할 수 있다. 이 중 최상현 목사가 바로 최윤권 목사와 최윤환 목사의 아버지다.

최상현 목사는 연희 전문학교(지금의 연세대학교) 제1회 졸업생이며 교계로나 독립지사로나 특히 기독교 문학계에 잊을 수 없는 인물이다. 일찍이 삼숭학교, 숭실 중학교 및 연희 전문학교를 나와 조교수 및 동문회장을 하면서 그의 후배 조병옥 박사, 이윤영(대한민국 초대 사회부장관)등과 더불어 독립운동을 하였고 3.1운동 때에는 독립선언문을 번역하다가 발각되어 옥고를 치르기도 하였다.

그후 중국으로 망명 연경대학교에서 수학하였고 미국으로 가다가 다시 일본경찰에게 붙잡혀 귀국, 감리교 신학대학(단시 협성신학교)을 마치고 목사안수를 받아 체부동 교회, 동대문교회 등을 목회하면서 최남선, 방인근, 전영택, 이은상 제씨들과 더불어 문학활동을 계속하였다. 당시 집필한 서적으로는 "경험의 종교" "근대의 위인(전3권)" "조선청년의 활로"등이 있고, 주로 감리교기관지 "신학세계"의 주필을 오랫동안 맡았다.

일면 성서공회 총무일을 보면서 서적판매도 하였는데 1936년 서적관계로 당시 한국에 나와 있던 죤 체이스(John T.Chase) 선교사와 맞나 오랜 토론 후 뜻이 같음을 알고 환원운동에 함께 일하기로 결심하게 되었다.

1938년에 돈암동에 그리스도의 교회(삼선 그리스도의 교회로 개명)를 설립하였고 그후 왕십리, 산동암동 등에 개척하였으며 체이스 선교사와 더불어 신학교에서 가르치며 교역자 양성에 주력했다. 2차 세계대전이 폭발하자 친구들도 다 떨어지고 선교사도 축출되고 교회는 신사참배가 강요되고 이를 거절하여 지하로 들어갔고 집에는 "요시찰 인물"로 항시 일본형사들이 드나들었으며 4남5녀를 거느리고 그 생활이 말이 아니었으나 꾸준히 전도를 계속하였다.

1945년 조국이 광복이 되자 당시 미 군정청 초청으로 국무장관 고문을 하였고 얼마동안 공보과장 일도 맡아 보았다. 그러나 하나님께 부름 받은 그리스도의 교회 환원사상은 그로 하여금 다시 모든 관직을 버리고 목회와 신학교 교수일에 전념하게 하였다. 6.25사변이 나자 가족들 때문에 피난을 못 가고 드디어는 공산군에게 납치되어 9.28수복 때 북쪽으로 끌려 간 후 소식이 없다.

최윤권 목사는 “물론 그 때에 북한 괴뢰군이 남침하였던 속도도 속도이거니와 그가 많은 가족들을 버리고 홀로 피난가지 못하였다는 것이 아마 그가 너무나도 인간이기 때문이라고 할까. 하여간 그는 방안에서 성경 연구와 기도로 살고 있었다. 그러나 그 때 불행히도 그의 둘째 아들 곧 내가 먼저 공산당에게 잡혀갔다. 이것을 안 아버지는 위험을 무릅쓰고 직접 인민위원회에 찾아가 나를 위해 탄원하였다. 이것이 그들의 주목을 끌게 된 동기가 된 것이다. 내가 도망쳐 나왔을 때 아버지는 이미 갔었고 마지막에 그가 지냈던 20원이 봉투에 들어 돌아와 있었다.”고 회고했다.

최윤권 목사가 그의 저서 "깨어진 십자가"에서 주장한 "환원운동의 원칙"은 다음과 같다.

1. 모든 그리스도인의 표준은 그리스도에 대한 순종이다.
2. 그리스도밖에는 신조가 없다.
3. 성서만이 믿음과 행실의 유일의 율법이다.
4. 고로 믿음에 관한 모든 것은 "주께서 말씀하시기를..."로써 해결한다.
5. 개인적 의견에 관한 것은 자유이다.
6. 신약성서에 기초한 기독교의 단합이다.
7. 성서에 관한 것은 성서의 이름으로 부른다.
8. 일체의 인위적 명칭 및 신조를 배격한다.
9. 성서에 명령된 의식을 명령 그대로 실천한다.
10. 각개 교회는 독립적 존재이다.

한마디로 모든 그리스도인이 머리이신 그리스도 아래 신약성서에 계시된 그대로의 이름, 신조 및 조직만을 갖고 성서의 명령을 의식과 생활에 있어 순종함으로써 하나되기를 호소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최윤권 목사는 “때는 무르익었다. 많은 교회들이 성서로 돌아가자고 외치고 있다. 많은 교회들이 초대교회로 돌아가자고 외치고 있다. 오늘의 교회들은 이 운동을 갈망하고 있다. 세계는 이러한 교회를 요구하고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리스도는 "아버지와 내가 하나인 것같이 저들도 하나되게 하여주옵소서"하고 눈물로 호소하고 계시다.”고 전했다.

▲최윤권 목사

▲최윤권 목사가 백일을 맞은 최윤환 목사의 손녀딸을 위해 기도해주고 있다.

▲최윤환 목사 손녀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