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겨울의 음악으로는 슈베르트의 ‘겨울 나그네’가 제격이라 하겠다. 음산한 북유럽의 겨울을 연상케하는 날들이 계속되고 폭설로 부러진 나뭇가지들이 동풍(凍風)에 흔들리는 애잔함이 창가에 펼쳐지고 있으니 말이다. 슈베르트는 '아름다운 물레방앗간 아가씨’라는 가곡집도 남겨 가곡의 왕이란 찬사를 받는다.

내게는 수십년전 구입한 바리톤 ‘헤르만 프라이’가 노래한 ‘슈베르트 가곡들’ 이란 테이프(RCA)가 있는데 아직도 듣을만하다. 그는 천성적으로 자연의 소리를 듣는 심청력(心聽力)이 타의 추종을 불허할 만큼의 천재였다. 그리하여 그는 자연의 미세한 흔들림을 하나도 남김없이 그의 악보에 담아낼수 있었던 것이다.

스물 네 곡으로 이루어진 연가곡집 '겨울 나그네'는 이러한 그의 천재성을 발휘한 최후의 작품이다. 세찬 바람에 펄럭이는 바람개비를, 두뺨에서 흘러내려 얼어붙은 눈물을, 사랑하는 여인의 편지를 싣고 달려올지도 모를 우편마차의 경쾌한 내달림을, 보리수 잔가지를 흔드는 미풍의 소리를 심청(心聽)으로 듣고 잡아내었다.

보리수의 경우는 원곡에 가깝게 노래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할 정도로 세밀한 아름다움으로 가득차 있다. 사실 클래씩을 좋아하는 사람들도 슈베르트의 연가곡을 좋아하려면 상당한 노력과 이해력을 동반해야 한다. 화려한 오페라의 아리아나 합창곡을 듣는 것보다는 철학적 접근이 필요한 까닭이다.

그자신이 철학적 인생을 살고 30대에 요절하였지만 그는 시공간을 초월해서 겨울 여행을 계속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생전에 뮐러의 작품에서 겨울 여행을 하는 그 자신을 발견했다. 눈으로 덮인 어두운 세상, 달만이 외롭게 그를 비춰주는 길을 따라 실연의 찢긴 마음을 가지고 여행을 시작한다. 심약한 그는 연인을 깨우지도 못하고 창문에 '잘 있어요(Gute Nacht)'라는 말을 써넣는다.

어떻게 보면 우리는 모두 슈베르트의 겨울 나그네와 같은 인생들이다. 폭설이 계속되던 날에 동문한분이 말 그대로 겨울 나그네의 삶을 끝내고 영면(永眠)하였다. 그리고 유족의 마음을 아프게도 고르지 않은 일기로 몇차례의 연기 끝에 언 땅을 파고야 겨우 묻을 수 있었다. 하기는 북한의 아낙들이 남편들을 ‘우리 집 나그네’라 한다하니 남자들이야 말로 겨울 나그네같은 인생을 살다가 가는 것이나 아닐까?

시인 조지훈이 그의 시우(詩友) 박목월에게 '완화삼'이란 한 편의 시를 써 보냈다. 일절을 소개하면 “차운산 바위 위에 하늘은 멀어 산새가 구슬피 울음 운다. 구름 흘러가는 물길은 칠백 리(七百里) 나그네 긴 소매 꽃잎에 젖어 술 익는 강마을의 저녁 노을이여. 이 밤 자면 저 마을에 꽃은 지리라. 다정하고 한 많음도 병인 양하여 달빛 아래 고요히 흔들리며 가노니 …….”

목월은 지체없이 화답시(和答詩)를 써보냈다. “강나루 건너서 밀밭 길을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길은 외줄기 남도 삼백 리, 술 익는 마을 마다 타는 저녁 놀.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이것이 그 유명한 국민애송시 목월의 ‘나그네’이다. 두 분 다 나라잃은 슬픔을 나그네에 빗대어 애잔하게 노래한 것이다. 그러나 내게는 물길 칠백리 나그네나, 구름에 달가는 나그네나 겨울 나그네의 심오함에는 못미친다. 왜냐 묻는다면 폭풍한설에 얼어붙은 눈물을 흘리다가 가는 겨울 나그네가 우리네 삶의 본질인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