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선친께서는 일찍 깨이시고 부자셨던 조부님덕에 초등(당시 小학교)학교부터 일본 유학을 하셔서 대학까지 마치셨으니 당시에는 보기드문 행운아라 하실 수 있다. 선친의 유품으로 내가 아직도 간직하고 있는 것은 아키다 공대 광산전문학부의 빛바랜 졸업앨범이다 비록 조선인 유학생이었지만 축구부 매니져로 승마부와 스키부원으로 유도와 검도의 유단자로 팔방미인이셨으니 화려한 학창시절을 보내신 분이다.

특히 마지막 유학생 시절을 보낸 아키타(秋田)현은 일본 동북지방으로, 서측은 한국의 동해를 면한 곳인데 겨울이 길고 여름이 짧은 기후이기는 하지만, 계절 구분이 분명하여 사계절 변화를 잘 느낄 수 있는 곳이라 한다. 추위가 심한 이 지방 여성들은 얼굴이 하얗고 미인이 많아 ‘아키타 미인’이라는 말이 널리 알려져 있으니 내 선친에게 그 어떤 로맨스가 있었는지 궁금하기도 하다.

일본 제일의 쌀로 쳐주는 아키다米로 빚은 사케를 고급 술로 쳐주기도 한다. 그밖에 이 고장의 아키다 犬은 우리나라의 진돗개처럼 일본의 國犬대접을 받는 유명한 개라 한다. 오늘 소개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한 아키다 견인 하치(ハチ)가 주인이었던 대학교수 우에노박사에 대한 충성된 실화를 영화화 한 이야기이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1923년 12월, 아키다현 오오다테. 흰눈이 소담스레 내리는 어느 겨울날, 흰눈처럼 하얀 하치가 태어난다. 주인은 하치를 자신의 은사인 동경제대 농학부 교수 우에노 교수에게 보낸다. 동경 시부야의 우에노 교수에게 보내진 하치는 단번에 식구들의 귀여움을 독차지한다. 우에노 교수의 사랑을 받으며 무럭무럭 자라고, 보답이라도 하듯 매일 시부야 역으로 출근하는 그를 배웅하며, 저녁에는 마중 나가는 행복한 일상을 보낸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에노 교수는 수업 도중 쓰러져 다시 일어나지 못하고, 이를 모르는 하치는 매일같이 시부야 역에서 그를 기다린다. 한해, 두 해가 지나도록 돌아오지 않는 우에노 교수를 기다리는 하치는 어느덧 늙어 1935년 3월 8일, 눈내리는 시부야 역에서 죽는다. 갸륵한 하치를 기리기 위해 일본 동물 애호회, 일본견 보존회 등이 동상을 만들어 그 미담을 영원히 남기고자했다.’

나는 정작 일본영화로는 보지 못하고 미국영화로 리메이크한 ‘ Hachiko. A. Dogs. Story’로 보았는데 名優 ‘리차드 기어’가 주연해서인지 깊은 감명을 받았다. 하치의 고향인 아키다현은 지금 한국인 관광객들로 특수를 누리고 있는데 ‘아이리스’라는 드라마중 일부를 백설의 고장인 이곳에서 가장 아름답게 찍었기 때문이라 한다. 나는 드라마와 상관없이 선친 청춘의 고향인 이 아키타를 한번 방문하여 그 분의 모교에 닳고 낡아버린 昭和 18년도 졸업앨범을 기증하고 싶다. 세상에는 이런 아름다운 전설의 고향들이 있기 마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