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의 왕국(El imperio del Sol)’ 잉카는 콜롬버스 이전의 라틴아메리카의 가장 거대한 제국이었다. 안데스 산맥을 중심으로 페루의 뿌냐(puna)지역에서 B.C 1.000년경 크게 번성했던 잉카는 왕을 ‘태양의 아들’로 불렀다.

주변국가들의 이방신 ‘빠차맘마(pachamamma)’ 같은 신은 탄압하고 잉카의 위대한 태양신을 숭상하도록 했다. 잉카의 수도 꾸스꼬를 중심으로 해발 4000m를 넘나드는 고산준령 안데스 산맥 일대를 두루 지배한 잉카는 페루, 볼리비아, 에쿠아돌, 콜롬비아, 아르헨티나 북서부지역까지 광할한 영토를 차지했다.

12세기엔 안데스산맥 원주민들의 나라로 성장했다. 15세기말에는 지금의 페루 전지역과 칠레, 에콰돌에 걸치는 인구 1200만명의 대제국을 이뤘다. 해안을 따라 3,600Km 의 도로를 개척하고 안데스산맥과 나란히 도로를 낼 정도의 파워를 갖고 있었다. 잉카에는 말이나 바퀴달린 운송수단이 없었다. ‘퀴푸’라는 파발꾼이 릴레이식으로 매일 240Km 거리를 달려 황제의 지엄한 명령을 전달하고, 수행여부를 보고하였다.

그런 잉카제국 전사들의 평균키는 불과 157cm 에 불과하고, 여자의 평균키는 145cm 였다고 한다. 스페인 정복자들에 비해 왜소하기 그지없는 그들이 거대제국을 이끌었다는 것이 경의롭다. 해발 수천메타 에서도 거뜬하게 생활할 수 있는 특이한 신체조건을 가진 잉카 인디오는, 다른 종족들보다 3배이상 뛰어난 폐활량, 심장박동이 유난히 느릴뿐만아니라 혈액도 2리터 이상 많았다. 핏속엔 산소를 나르는 헤모글로빈 수치 또한 다른 종족보다 두배이상 높게 측정되었다.

페루 중앙고원 꾸스꼬에서 출발한 거대제국의 기운은 태평양 연안쪽으로 점점 확장해 나아갔고, 고산지대와 기후의 악조건이 도리어 오랫동안 외부세력의 침략을 저지하는 요소가 되어 찬란한 문화유산을 남길 수 있었다. 잉카제국의 공용어는 께추아(Quechua)다. 버금으로 널리 사용되고 있는 언어가 아이마라(Aymara)이고, 100여가지 넘는 인디오 방언들도 있다.

스페인의 정복자들에 의해 제국이 멸망되기 전까지 유구한 역사의 잉카를 제국을 유지시켰던 중심되는 4가지 계율이 있다. 골간을 이루는 주요 계명 중 첫째는, ‘아마 쑤아’(Ama Sua)다. ‘no robar, 도둑질하지 말라’는 뜻이다. 둘째는, ‘아마 유야’(Ama Llulla)다. ‘no mentir, 거짓말하지 말라’는 뜻이다. 셋째는, ‘아마 께야’(Ama Quella)이고, ‘no holgazan, 게으르지 말라’는 뜻을 갖는다. 넷째는 ‘아마 융까’(Ama Llunk’a)로 그 뜻은 ‘no chistar, 타인을 비난하지 말라’이다.

건강한 제국을 유지하고 계승발전시키기 위하여 누구든지 자기 맡은 일을 최선을 다해 감당해야 했다. 왕족과 귀족들은 백성들의 존경과 신망을 받기위해 솔선수범해야 했다. 지도층 인사들의 범법시에는 일반 백성에게 시행되었던 것 보다 훨씬 더 무겁게 형벌이 내려졌다. 존경과 신망을 저버린 인사들의 죄를 엄격히 다스렸다.

신분의 고하, 쩐의 유무로 법이 줏대없이 함부로 널뛰듯 춤추지 않았다. 법 앞에서 모든 잉카의 신민들은 평등했고, 엄정무사한 법집행을 받아야 했다. 계율을 어긴자는 공개 태형, 공개 처형 받을 것을 당연시 했다.

(도시빈민을 위한 구제, 선교, 물품기증 703-622-25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