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가대가 오랜만에 도란도란 모여 앉아 식사를 같이 나눈 후 2부 순서로 윷놀이를 하게 되었다. K 집사님과 한 편이 돼서 첫판을 다른 팀과 겨뤄 가볍게 이겼다. 이기고 나니 기쁘고 자랑스러우면서도 승부욕이 더욱 활활 타기 시작함을 느꼈다. 나름대로는 나의 윷놀이 실력에 상당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던 터라 어느 팀과 겨루게 돼도 이길 것 같은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두 번째 경기가 시작되자 어쩐지 불안해졌다. 앉았다 일어섰다 다른 팀들까지도 정신 없이 만드는 우리 팀과는 달리 우리와 맞붙은 저쪽 팀은 전세가 그리 좋아 보이지 않는데도 차분 차분 말을 옮기고 그리 욕심도 내지 않는 듯 보였다. 그것이 나를 더 불안하게 했다. 더구나 모험을 무릎쓰고 굵고 짧게 경기를 치르는 내 스타일과는 달리 K 집사님은 약간의 방어적 전술을 쓰고 있었다.

서너명의 요한 전도회원들이 우리 팀쪽에 접근을 해서 훈수를 놓을 의사를 비추자 손을 내저으며 사양했다. 그리고 우리 ‘적’에게도 절대 훈수를 주지 않기를 부탁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사적으로 훈수를 주는 그들의 심보는 또 뭔가. 이 전 게임에서 우리에게 패한 어느 집사님은 자꾸 우리 판에 끼어 들어 ‘이번에는 이길 것 같지가 않죠?” 하며 야비하게 불안감을 더 심어주었다. 윷놀이에도 이렇게 심리전이 많이 적용됨을 그때야 알았다.

그래도 우리 팀이 이기고 있었기에 여전히 소리를 지르며 ‘기’로 상대를 전압하고 있는데 갑자기 저 쪽 팀에서 두세번의 모와 윷이 연거푸 터지며 순식간에 우리를 앞서 버렸다. 아, 인생이여. 누가 알았는가? 내가 가는 길이 더 빠른 길인 줄 알았다. 나한테는 언제나 좋은 일만 생기고 상대편한테는 늘 그저 그런 인생이 따르기를 원했다. 지름길이 툭툭 열린다고 자만할 것도 아니었다. 어느 한 순간의 불행으로 전세는 순간 뒤바뀔 수도 있다. 옆에서 이것저것 인생의 훈수를 주는 그네들한테도 뭘 알아서 내 인생을 간섭하느냐고 잘난체 할 일도 아니었다. 그들의 충고도 귀 기울일 필요가 때로는 있는데. 왜 그들을 매몰차게 쫓아 버렸던가. 혹 그러는 사이 그들의 마음을 상하게라도 했다면 어떻게 하나.

겨우 길어야 20분 밖에 걸리지 않는 짧은 윷놀이에서 왜 그리 승부욕에 눈이 가려 사람 고마운 것을 몰랐단 말인가. 20분이면 끝나는 것을 그냥 게임이려니 하고 즐기면 되는 것을. 진 사람에게도 이긴 사람에게도 그 윷놀이는 그냥 게임이었다. 게임이 끝나고 우린 다 우리가 왔던 집으로 돌아갔다.

허 참, 그 게임 속에서 영원히 살 것도 아니지 않았는가? 생각해보니 짧은 윷놀이에서 인생이 배워진다. 우리가 사는 인생도 뭐 그리 긴 것도 아니다. 어느 순간에 돌아보면 게임의 종말에 와 있는 우리를 볼 수 있겠지? 그리고 혹 후회할지도 모른다. 뭐 영원히 이 땅에서 살 것처럼 왜 우린 그렇게 욕심에 가득차서 내 배만 불릴려고 하고 다른 사람들을 이겨 볼려고 하며 이기적으로 살았나 할지도 모른다. 이렇게 사나 저렇게 사나 이 인생은 우리가 영원히 있을 곳이 아닌 것이다. 우린 다 언젠가는 우리의 진짜 집으로 돌아간다.

/김성희(볼티모어 한인장로교회의 집사이자 요한전도회 문서부장. 경영학 석사과정을 마치고 메릴랜드 주립대학 의과대학에서 연구 행정원으로 근무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