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아랍에미리트의 원자력발전소 건설 공사를 수주한 일은 크게 축하할 일이었습니다. 미국과 프랑스, 그 뒤를 멀리 떨어져서 러시아와 캐나다 만이 원자력발전소 수출을 할 수 있는 나라였습니다. 그 중에서도 역사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무척 가까웠던 프랑스를 선택하지 않고 한국을 선택한 것은 아주 특별한 사건이었습니다.

사실 한국에서 나라 전체가 축하 분위기에 싸인 것에 비하면 미국에서는 별로 관심이 없습니다. 미국 자체 시장도 이제 커지는 상황이기 때문에 수출 한 건 못한 것이 미국 전체 경제에서 눈에 띄는 일이 아닙니다. 지난 반세기 동안 공장, 발전소, 철도, 도시 건설 등 거대한 공사 수출을 수없이 해 봤던 미국이기 때문에 이번 일도 별로 큰 관심을 두는 것 같지 않습니다.

오히려 50년 동안 원전 건설을 주도하고 수많은 원전 건설을 이루었던 나라들에 비해서 한국이 결정적인 경쟁력이 가지게 된 이유가 있습니다. 후발주자이며 규모가 작았기 때문입니다.

선발주자들은 한 세대 전에 개발했던 방식과 기술에 의존해서 건설을 했습니다. 경쟁이 없는 독과점적인 시장이기 때문에 새로운 기술 개발이나 효율적인 건설 방식 개발 등에 자원을 쓸 필요가 없었습니다. 4-50년 된 방식을 가지고도 충분히 사업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한국은 이미 수십 년에 누적된 기술이나 건설 방식이 없었습니다. 수십년에 걸쳐서 누적된 산업이라면 그것으로 먹고 사는 사람들이 많아집니다. 수십년에 걸쳐서 쌓인 노우하우는 소수 집단에 고여 있는 것이 아니라 수십만명에게 담겨 있습니다. 미국이나 프랑스가 쉽게 혁신적인 방법을 찾게 되지 않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한국은 단기간에 기술을 얻어야 했습니다. 한국이 원하는 기술은 미국이나 프랑스에서 배울 수 없었습니다. 거의 독자적으로 새로 개발해야만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60년대의 틀 안에서 개발한 선진국의 기술에 비해서 2000년대의 틀 안에서 개발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한국이 독자적으로 개발한 디지털 제어 체계 같은 것은 미국이나 프랑스 같은 산업 구조에서는 쉽게 성취할 수 없는 것입니다.

비록 새로운 기술을 적용한 원전이 한 두 개 뿐일지라도 한국은 현대화 된 기술을 적용하여 성공했습니다. 새로 개발한 기술이 쓸 만한 것임을 입증하는 데는 수십개, 수백개의 원전이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교회도 비슷한 면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목회의 방향, 목회 방식의 개혁, 시대에 맞는 목회 방식 등 새로운 혁신은 새로운 틀에서 만들어 집니다. 수십년 전에 개발되어 지난 한 세대에 걸쳐서 작동했던 방식을 통해서 큰 교회들이 생기고 성장과 성숙을 이루었습니다.

그러나 새로운 방식의 개발은 기존의 체제에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그것은 꼭 거대한 틀에서만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후발주자가 아니면 불가능한 것이고 작은 규모에서도 입증이 가능한 것입니다. 한번 입증이 되면 즉각 거대한 규모의 적용도 가능합니다.

새로운 모델을 제시하는 교회, 새 시대에 맞는 새로운 도구들을 제공하는 교회, 교회를 섬기는 사역자들과 성도들에게 새로운 세계를 열어 줄 수 있는 후발 주자 같은 교회가 되기를 소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