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쓰 시즌에 클래씩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그 누구나 전설적 쓰리테너인 루치아노 파바로티, 호세 카레라스, 플라시도 도밍고의 명 성곡을 CD나 혹은 DVD를 통해서 감상할 것이다.

그들이 노래하는 Cantique De Noel, Adeste Fideles, Ave Maria, Oh Tannenbaum, White Christmas, The Little Drummer Boy, I'Ll Be Home For Christmas, Winter Wonderland 등은 언제 들어도 감동이지만 특히 시즌에 고즈넉이 듣고 있노라면 어느덧 동화의 세계의 빠져드는 느낌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쓰리테너가 연주한 장소에 따라 그들의 음악적 성가(聲價)를 달리하는바, 그 중에서도 1990년 주빈 메타 (Zubin Mehta)가 지휘한 로마 월드컵 기념 연주가 최고가 아닌가 한다.

물론 당시의 연주는 계절 탓에 크리스마쓰 송은 없었다. 그러나 내가 이들보다 더 사랑하는 크리스마쓰 음악은 캐슬린 배틀과 제시 놀만이 부르는 성탄곡이다. 내가 캐슬린 배틀과 제시놀만을 처음으로 대한 것은 20십년전 故 이수만 장로 자택의 음악실에서였다. 클래씩 광팬이었던 그가 수장한 수백장의 음반과 비데오테이프는 나를 늘 놀라게 하였는데 그 중에서도 배틀의 농염한 연주와 놀만의 풍만한 연주기량은 매혹에 빠져 들기에 충분하였다.

그 후 케네디센터에서 이들의 연주를 직접 대면하면서 흑인 여가수들의 풍성한 성량에 그들을 디바로 칭송하기에 부족함이 없어 나 역시 광팬이 되었던 것이다. 나는 이들을 크리스마쓰의 요정이라 부른다. 배틀의 경우는 그녀의 연주태도나 그녀의 작은 체구자체가 요정으로서 손색이 없을 만큼 앙증맞다. 이에 비해 놀만은 180cm의 키와 130kg의 몸무게, 깊이 있는 음색과 풍부한 성량으로 청중을 압도하므로 요정이란 표현이 적합치는 않지만 그녀들의 청아한 음색은 합하여 크리스마쓰의 요정으로 불리워 손색이 없다 할 것이다.

그런데 그녀들은 아주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나 비교적 늦게 데뷔하였다. 베틀은 1948년 8월 13일 미국 오하이오주 포츠머스에서 강철 노동자로 일하던 아버지의 일곱 번째 아이로 태어났던 만큼 음악과는 관계없는, 지극히 평범한 가정에서 성장했다. 그녀는 13살이 되어서야 비로소 피아노를 배울 수 있었고 1972년에 신시내티 오케스트라의 성악오디션에서 발탁된 것이 계기가 되어 이후 제임스 레바인이나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의 눈에 띄어 진정한 의미에 있어서의 ‘스타’가 되었다.

제시 놀만(Jessye Norman)은 1945년 미국 조지아주 오거스타에서 보험중개인인 아버지와 교사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어릴때부터 교회 성가대에서 노래를 부르며 성장했다. 이후 워싱턴 D.C. 의 하워드대에서 본격적인 음악수업을 받았고 68년 뮌헨 콩쿠르에서 우승을 차지하면서 성악가의 길을 걸었던 것이다.

알토 ‘마리안 앤더슨’이나 릴릭 소프라노 ‘레온타인 프라이스’가 흑인 여가수의 개척자들이었다면 케슬린 베틀이나 제시 놀만은 세계인에게 사랑받는 흑인 디바로서 그 칭송을 받고 있는 것이다. 나는 오늘도 크리스마쓰의 요정인 배틀과 놀만의 성탄곡을 들으면서 작은 호사를 누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