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버지니아 남침례회 총회에서 눈에 띄는 강단을 사용했습니다. 마지막 날에 폐회 예배 설교를 맡으면서 직접 사용을 해 보니 무척 편리했습니다.

우선 디자인이 무척 현대적이었습니다. 깨끗한 투명 원탁이 크롬 도금이 된 격자 형태의 기둥 위에 놓인 것이었습니다. 총회에서는 총회의 주제를 상징하는 상징물을 원탁 아래 부착을 해서 더 잘 어울렸습니다.

흔히 사용하는 강단과는 달리 투명 원탁이 기울어져 있지 않고 평평하게 놓여 있었습니다. 오히려 원고나 성경책을 놓기가 더 편했습니다. 물론 물 잔이나 다른 비품을 올려두기에 더 편할 것입니다. 원탁이 기울어져 있지 않고 평평하게 놓여 있기 때문에 아래 앉아서 단 위를 볼 때도 더 작게 보이고 눈에 덜 띄었습니다.

나중에 총회가 개최된 컨벤션 센터 측에 물어보니 총회 본부 측에서 가져온 것이라고 해서 계속 찾아 물어 보았습니다. 알고 보니 그것은 회의 장소나 교회에서 사용하는 강단용으로 만든 것이 아니었습니다. 미국에서 흔히 보는 리셉션이나 파티에서 사용하는 탁자였습니다. 일반적으로 바 테이블이라고 부르는 것이었습니다. 파티에 가서 서서 손으로 음식을 집어 먹고 음료를 마시는 자리에 음식을 차리거나 또는 잔이나 접시들을 두는 용도로 사용하는 탁자였습니다. 선채로 사용하는 것이기 때문에 강단의 표준 높이와 거의 같은 높이로 되어 있었습니다.

찾아보다가 발견한 또 한 가지 사실은 이미 미국 교회들이 바 테이블이라고 불리는 이 탁자를 교회의 강단으로 사용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특히 전통적인 형태로 설교를 하는 교회뿐 아니라 캐주얼하게 바 의자에 앉아서 설교를 하거나 또는 소파를 둔 응접실 형태의 단을 사용하는 교회에 이르기까지 무척 폭 넓게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가격을 알아보았습니다. 교회에서 설교단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제작된 강단들에 비해서 가격이 1/3이나 1/4 정도 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교회 강단의 수요보다 바 테이블의 수요가 훨씬 더 크니까 가격이 훨씬 더 싼 것입니다. 대 예배실과 소 예배실 용으로 두 개를 구입했습니다.

변화와 혁신이 일어나는 가장 흔한 방법을 새로운 것이나 다른 것을 보고 모방하는 것입니다. 앉아서 머리를 짜내어 변화와 혁신을 이룰 수도 있지만 그것은 천재적인 창의력과 번득이는 착상을 가진 사람이 아니면 쉽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변화와 진보는 종종 한 분야에서 사용되는 방법이나 도구를 전혀 다른 분야에서 전혀 다른 용도로 사용할 때 생기곤 합니다. 토마스 쿤스가 “과학 혁명의 구조”라는 책에서 처음으로 제시한 패러다임이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과학의 영역에서 혁명적인 혁신이 일어나는 방식 중에 하나가 전혀 다른 분야에서 개념이나 방법을 도입하는 것입니다.

변화와 진보는 종종 작은 것에서 시작해서 모르는 사이에 전체적인 문화를 바꾸는 방식으로 일어납니다. 오늘의 문화에 뒤떨어지지 않으면서 복음의 능동적인 능력을 발휘하려면 새로운 문화에 적응해야 합니다. 문화 충격을 통해서 적응하는 것이 아니라 작은 변화를 통해서 가랑비에 옷 젖듯이 적응해 갑니다.

강대상으로 활용되는 바 테이블을 통해서 또 한번 문화의 학습을 하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