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의 찬양이 1620년 12월 26일 플리머스(Plymouth)해변에 울려 퍼졌습니다. 메이플라워(Mayflower)호를 타고 아메리카 신대륙에 도착한 102명(남자78명 여자24명)의 청교도들의 외치는 소리였습니다. 모래를 날리며 찬송하고, 바위를 끌어안고 시편100편의 감사의 기도를 올렸습니다.

그들은 평탄한 중에 감사드린 것이 아닙니다. 180톤 밖에 안 되는 작은 배였지만 그 배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렸습니다. 평균시속2마일(걷는 속도 보다 느림)이었으나 117일 동안 계속 전진할 수 있었던 것을 감사드렸습니다. 항해 중 죽은 사람도 많았으나 다 죽지 않았음을 감사드렸습니다. 폭풍을 만나 큰 돛대가 부러졌으나 배가 파선되지 않았음을 감사드렸습니다. 산더미 같은 파도에 휩쓸려 바다 속에 빠졌던 여자들이 모두 구출되었음을 감사드렸습니다.

사실 아메리카에 도착한 것은 한 달 전(11월21일, 케이프코드)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인디언의 방해로 상륙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다시 바다로 나가 상륙지점을 찾아 헤매다 한 달 후 플리머스에 상륙할 수 있었음을 감사 드렸습니다. 무엇보다도 그들의 최고의 감사는 고통스러운 3개월에 걸친 항해 중 단 한 명도 돌아가자는 사람이 없이 전원이 죽더라도 전진하자고 주장한 그 믿음과 용기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렸습니다.

영국으로부터 신앙의 자유를 찾아 신대륙으로 떠난 사람은 당초에는 150명이 넘었으나 대서양 횡단 중1/3의 사람이 죽고, 신대륙에 도착한 102명은 그해 겨울을 지나면서 반가량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도시 생활을 해온 지식층이었던 그들에게 온갖 농사일과 나무를 베고 땅을 파고 집짓는 일들이 보통 힘든 일이 아니었습니다. 굶주림과 추위와 질병으로 많은 사람이 희생되었습니다.

그들을 싣고 온 메이플라워호는 바로 떠난 것이 아니라 그 이듬해 4월까지 플리머스 항구에 머물러 있었으나 혹독한 시련을 견디지 못해 돌아가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평생 겪어보지 못한 고통을 끝까지 감당한 그들의 믿음과 용기는 훗날 미국을 만세 반석위에 세우는 기초가 되었습니다.

플리머스에 청교도들이 도착한 후 3년을 지내고 매사추세스 주지사 윌리엄 브래포드(William Bradford)는 감사절을 지킬 것을 선포합니다.

“높으신 아버지 하나님께서 금년에 풍부한 수확을 주셨습니다. 인디언의 도움을 받아 옥수수와 밀, 콩과 호박, 여러 가지 채소를 심게 해주셨고 자라나게 하셨습니다. 숲에서는 사냥을 할 수 있도록 바다에서는 생선과 조개들을 넉넉히 거둘 수 있도록 축복해 주셨습니다. 야만인의 습격에서, 여러 질병에서 지켜주셨습니다. 그 무엇보다도 우리는 우리의 양심을 따라 자유롭게 하나님께 예배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나는 모든 순례자(Pilgrims)들에게 선포합니다. 주후 1623년 11월29일 목요일 오전9시부터 12까지 모두 모여 목사님의 말씀을 듣고 이 모든 축복을 주신 전능하신 하나님께 감사의 예배를 드리십시다.”

미국의 개척은 감사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이 건국의 조상들은 감사의 예배를 드릴 때 그들은 아직 황무지 벌판에 서 있었습니다. 풍부한 상황이 아닌 황무지에 씨를 심을 수 있었음을 감사했고, 겨울의 심한 추위와 싸우면서 오막살이집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했고, 괴롭히는 인디언도 많았으나 농사법을 가르쳐준 인디언으로 인하여 감사했습니다. 불평할 수밖에 없는 험한 환경에서 감사 한 것이 미국 추수감사의 시작이었습니다.

추수감사절이 정식 국경일로 1864년 링컨 대통령에 의해 11월 4째 목요일로 선포됩니다. 링컨 대통령은 “우리의 경건한 조상이 이 아메리카 땅에 감사의 씨를 뿌린 그 신앙을 만대에 계승하기 위해 이날을 국가 축제일로 정한다.”고 선포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