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존경하고 배우는 신학자요 목회자이신 아쳐 토저의 글을 실어봅니다. 은혜함께누리시길 바랍니다."

영성의 개념은 기독교 집단 가운데 다양합니다. 어떤 집단에서는 끊임없이 종교를 논(論)하는 말 많은 사람을 매우 영적인 사람으로 생각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요란한 것을 영성의 표(標)로 인정합니다. 또 어떤 교회에서는 가장 먼저, 가장 길게, 가장 큰 소리로 기도하는 사람을 가장 영적인 사람이라고 평합니다. 활발하게 증거하고, 자주 기도하며, 큰 소리로 찬양하는 것이 영성과 완전히 일치하는 것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것들은 본질적으로 영성을 구성하거나 영성이 존재한다는 것을 입증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 중요합니다.

참된 영성은 이루고자하는 소망들 가운데 드러납니다. 이러한 소망은 삶에 동기를 부여하고 통제하기에 충분한 강력한 것들로, 삶 가운데 항상 존재하며 깊이 자리 잡고 있는 필요들입니다. 다음은 이러한 소망에 관해 기술한 것으로서, 중요성에 따라 순서를 정한 것은 아니며, 편의상 번호를 부여한 것입니다.

1. 첫째는 행복해지기보다는 거룩해지고자 하는 소망입니다. 스스로 높이 성화되었다고 고백하는 기독교인들 가운데 흔히 보는 행복해지기를 열망하는 모습은 실제로 그러한 성화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증거하는 충분한 증거가 됩니다.

진정으로 영적인 사람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기쁨을 주실 때, 그 기쁨이 우리 영혼에 해가 되지 않을 정도가 된 후에야 풍성한 기쁨을 주신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즉시 그것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죤 웨슬레는 초기 감리교 집단 중 한 집단의 회원들에 대해, 그들이 거룩해지는 법을 배우려는 대신에 종교를 즐기려고 교회에 왔기 때문에 그들이 과연 사랑 안에서 완전해졌는지 의심스러웠다고 말했습니다.

2. 진정으로 영적인 사람은 일시적으로 수치를 당하거나 해를 입더라도 자신의 삶을 통해서 하나님의 영예가 더욱 드러나는 것을 보기 원하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한 사람은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옵소서"라고 기도하면서, 조용히 "주님, 이를 위해 어떠한 대가라도 치르겠나이다"라고 덧붙입니다. 그는 일종의 영적인 행동 양식으로 하나님의 영예를 위하여 삽니다. 그의 선택은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입니다. 그는 혼자 심사숙고할 필요가 없습니다. 심사숙고할 일이 전혀 없습니다. 그는 오직 하나님의 영광이 필요할 뿐입니다. 그는 마치 숨이 막힌 사람이 헐떡이며 공기를 마시려고 하듯이 하나님의 영광을 갈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