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병이어의 기적을 베푸신 후 예수께서 홀로 산에서 기도하셨다. 바다를 건너가던 제자들이 한밤중에 큰 풍랑을 만나게 되어 두려움에 떨고 있는데 어느새 예수께서 산에서 내려오사 물위를 걸어 제자들에게 오셨다. 풍랑으로 요동하는 바다 위에 일엽편주를 타고 두려움에 떨고 있는 그때 예수님께서 '내니 두려워 말라'고 말씀 하셨던 것이다.

몇 년 전에 작고한 유명 칼럼니스트 이규태 선생의 한국학에세이에 한국인이 얼마나 많은 두려움을 가지고 사는가 하는 글이 실려 있다. “한국인의 토속신앙은 다신교로 어느 한 신에게만 기원할 겨를이 없다. 심청전에 곽씨 부인이 아들을 낳기 위하여 기도하는 대목을 보면 삼십 삼천(三十三千) 천왕 님들을 비롯 이십팔숙(二十八宿) 성주님들을 위시하여 신불재석(神佛宰釋)의 이름을 낱낱이 부르는 것으로 그치질 않는다. 가택의 안녕을 보살펴 주는 성주대감(城主大監) 집터를 지켜주는 토주대감(土主大監) 부엌을 지켜주는 조왕대감(竈王大監) 창고의 신인 업위(業位) 마굿간 신인 구신(廐神) 문을 지켜주는 문신(門神) 아이를 낳게 해주는 三神할매 그리고 원한 품고 죽은 원귀(寃鬼)까지 불러대야 하기 때문에 신들을 부르는데만 해도 숨이 가쁘다. 또 이를 평상인들은 다 외워 부를 수도 없기 때문에 무당이나 박수란 직업이 생겨난 원인 중에 하나였다.”

그러나 이는 한국인의 문제만이 아닌 전 세계인의 문제이다. 두려움의 진짜 원인이 무엇인지도 모른 체 정신적인 메커니즘(mental mechanism)에 사로잡힌 사람들로 세계는 만원이다. 현대를 ‘염려의 시대’라고 부르는 것은 현대인들이 많은 두려움을 가지고 살아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인간의 두려움을 연구한 미씰딘 (Hugh Missildine) 은 인간의 두려움은 영아기에서부터 시작된다고 한다. 그래서 인간의 모든 두려움은 영아기의 3대 기초 두려움의 연장이라고 한다. 첫째 떨어지는 두려움(Fear of Falling) 둘째 큰 소리에 대한 두려움(Fear of Loud noise) 셋째 버려지는 두려움(Fear of being abandoned)인데 영아기의 떨어지는 두려움은 성인이 되면서 실패의 두려움이나 뜻하지 않게 갑자기 찾아오는 사고와 사건에 대한 두려움과 동일 한 것이라 한다. 그리고 큰 소리에 대한 두려움은 어른이 되어도 남의 비판에 대한 두려움, 폭력이나 나의 영역에 대한 타인의 침범의 두려움으로 이어지는 것이라고 하며, 버려지는 두려움은 인간 최대의 내적 두려움으로 고독과 불안이 주는 두려움, 헤어지는 두려움, 미지의 미래에 대한 두려움 등으로 연결된다는 것이다. 결국 아기때부터의 기본적인 두려움이 평생 계속된다는 말이다.

성경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신구약 성경에 “두려워하지 말라” “염려하지 말라”는 말이 366회 사용되었다고 한다. 이것은 인간들이 일년 내내 하루 빠짐없이 두려워하고 염려하면서 사는 모습을 보여 주는 것이다. 인생의 두려움에서 해방되는 것은 “내니 두려워 말라”는 주의 음성을 듣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