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이 세계를 석권한 제품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십중팔구 자동차와 전자제품을 떠올릴것입니다. 도요타와 소니보다 더 유명한 제품이 있습니다. 보통 부사라고 부르는 정확하게는 '후지'라는 이름의 사과입니다. 일본 아오모리 후지사키 마을에서 육성된 이 사과는 1962년 품종 등록과 함께 단숨에 세계를 석권했습니다. 도요타가 '코롤라' 모델로 북미 시장을 개척하기 6년전 일입니다. 일본의 북단 아오모리현 중심에 있는 이와키산지역은 천지가 사과나무로 덮여있습니다. 이곳에서 생산되는 사과는 일본 전체 생산량의 절반을 차지 합니다. 도요타시가 일본제조업의 성지라면, 이와키산은 농업의 성지입니다. 1978년부터 31년동안 농약한방울, 비료한주먹, 뿌리지 않고 태고의 자연 생태계가 회복된 기무라 아키노리씨의 사과밭은 농약과 비료에 의존하고 있는 현대 농업 역사를 바꾸는 현장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일본의 사과 역사 120년 동안 무 농약 무 비료 재배에 도전한 사람이 기무라 아키노리 만이 아니었습니다. 수많은 사과농부들이 도전했지만 4-5년 만에 포기하고 말았습니다. 포기한 사람들은 4-5년을 했는데도 안됐으니 처음부터 불가능한 일이었던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기무라씨는 11년을 버텼습니다. 무 농약, 무 비료 농사법을 시작하면서 농약을 끊은 첫해에는 벌레들 얼마나 많이 몰렸는지 사과나무가지가 휠 정도였습니다. 하루도 거르지 않고 아침부터 밤까지 벌레잡기에 여념이 없었습니다. 하루에 나무 한 그루에서 잡은 벌레만도 비닐봉지 세 개 분량 이었습니다. 벌레뿐만 아니라 반점낙엽병으로 잎이 95%가 떨어지고 꽃은 피지도 않았습니다. 농약과 비료를 중단한 이듬해부터 수확량 제로, 돈벌이 제로, 꽃 한 송이, 열매 한 개 열리지 않은 밭에서 새벽부터 밤까지 벌레잡고, 식초뿌리고, 나무와 대화하고, 쌀이 모자라면 죽을 먹고, 돈이 떨어지면 양말을 기워 신고, 죽으려고 밧줄 들고 산에 올라가기까지 11년을 버텼습니다. 제정신으로는 불가능한 고난의 세월이었습니다.

모든 수단을 다 사용해도 나무는 죽어가고 도무지 탈출구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는 밧줄을 챙겨들고 산으로 올라갔습니다. 그런데 죽는다고 생각하고 마음을 비우니 전에 안 보이던 산이 보였습니다. 같은 벌레가 있고 같은 햇살을 받지만 다른 것은 흙이었습니다. 내려와서 사과밭에 산을 재현한 것입니다. 산에는 비료도 농약도 주지 않고, 잡초도 자르지 않지만 벌레는 적고 나무는 건강한 것을 발견한 것입니다. 나무만 보지 말고 흙을 보게 된 것입니다. 흙이 달라져야 나무가 달라지는 것입니다. 현대농업은 흙의 생명력을 무시하고 인위적으로 흙 위의 나무의 성장 방법만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화학적인 방법으로 비료를 주는 것이 아니라 박테리아가 활동 할 수 있도록 하여 흙이 만들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미생물이 죽은 땅은 차갑지만 미생물이 살아있는 땅은 따뜻함을 일정하게 유지합니다.

농약을 주고, 비료를 주면 멀쩡했을 나무들인데 기무라씨의 무 농약, 무 비료 고집 때문에 나무들이 죽어갈 때, 그때부터 그는 사과나무 한그루 한그루에게 사과하기 시작 했습니다. "고생을 시켜서 미안하다", "제발 죽지 말아 달라"고, 기무라씨가 모든 나무에게 말을 건네지는 못했습니다. 미친 사람처럼 나무에게 중얼거리는 모습이 이웃에게 보이는 것이 창피하여 도로변에 있는 나무에겐 말을 건네지 않았습니다. 기무라씨는 그것을 뼈아프게 후회합니다. 도로변의 나무는 한그루도 안 남고 다 죽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그를 천재라고 칭찬합니다. 천재라고 칭찬하면 그는 손을 저으면서 "아니, 아녜요, 난 그냥 바보에요!" 실제로 그는 동네 사람에게 바보취급도 정신병자취급도 받았습니다. 집을 말아먹을 사람이라고 동정 반 비난 반의 소리를 들었습니다.

돈을 벌기위해 사과나무를 키운 것이 아니라 사과나무를 가장 자연스런 원래의 사과나무로 존재 하도록 하기 위해 흙부터 태고의 흙으로 거듭나기를 기다리는 세월이 11년이었습니다. 천재라는 호칭을 극구 사양하는 것은 겸손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는 정말 바보였습니다. 세상 사람처럼 했으면 벌써 많은 돈을 벌었을지도 모를 일이었으나 사람이 만든 사과가 아니라 하나님이 만드신 사과를 위해 평생을 바쳤습니다. 무 농약, 무 비료를 시작하게 된 직접적 동기는 농약에 민감한 아내 때문이었습니다. 아내와 아이에게 줄 수 있는 사과를 만들기 위해 험난한 길을 갔던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