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에서 있었던 일이다.

한달에 한번 있는 매니저들의 회의에 도리스라는 여직원이 늦어지고 있었다. 그녀의 어머니는 지난주에 심장 마비로 응급실로 실려 간 후 여러 차례의 응급 수술을 거치면서 상태가 악화되어 가고 있는 중이라는 것을 회의에 온 모두는 알고 있었다. 도리스 없이 한 20분 정도 회의가 진행 중이었는데 누군가가 노크하는 소리를 들었다. 도리스였다. 그녀가 문을 살짝 열고는 자신이 오늘 회의에 참석할 수 없을 것 같다고 했다. 그녀의 마지막 단어는 울음에 묻혀 거의 들리지 않았다. 도대체 몇 시간을 울었는지 그녀의 얼굴은 발갛게 온통 부어 있었고 울먹이는 목소리 끝에 어머니에 대한 안타까움과 설움이 서글프게 묻어 나왔다. 회의를 진행 중이던 신디가 급히 뛰쳐 나가서 한참을 도리스와 이야기 한 후 되돌아 왔다. 도리스의 어머니가 아마도 오늘을 넘기지 못하실 것 같다는 소식을 받았다고 한다.

도리스는 나이가 50살 안팍인 중년여성이다. 그러나 어머니의 죽음을 앞두고 울먹이는 그녀의 목소리에서 나는 여덟살 난 어린 소녀를 보았다. 엄마의 손에 의지해서 길을 건너는 어린 소녀, 엄마에게 배고프다고 투정하는 어린 소녀, 엄마의 자장가를 들으며 이불 속에 푹 파묻혀 천진한 미소를 지으며 곤히 잠드는 어린아이의 모습이 내 눈에는 보이는 듯했다.

부모의 죽음 앞에서 우리는 모두 어린아이로 되돌아가는 것이 아닐까? 엄마아아~ 라고 부르며 왜 나를 여기 두고 가시냐고 서러이 울부짖는 어린아이가 되는 것 같다. 아직도 나는 엄마에게 의지해야 할 일이 너무나 많은 어린 아인데, 엄마가 없으면 길을 잃어 버릴 것 같은데….

인생은 참 아이러니하지 않은가? 부모가 살아 계실 때는 우리는 최대한 부모에게서 빨리 독립해 보려고 몸부림친다. 사춘기만 지나도 어릴때 가졌던 부모에게 의지하는 마음은 온데 간데 없고, 나도 혼자 할 수 있다고, 부모의 도움 따위(?)는 필요하지 않다고 자신만만해 한다. 그러나 부모의 죽음을 앞두고 어쩌면 일생에 처음으로 우리는 우리의 존재가 부모 없이는 아무 것도 아니었음을 깨닫게 되는 것이 아닐까? 우리가 알지 못하는 무수한 순간들이 부모님의 보호가 있었기에 안전하게 지나갈 수 있었음을 깨닫게 되는 것도 그때가 처음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조금만 더 내 곁에 있어 주었으면, 한 번만 더 엄마 라고 불러 볼 수 있었으면 하고 허망한 소원을 빌어보는 것이다.

한 사람의 인생이 참 허무할 뿐이다!

하나님 앞에서만은 우리는 언제나 어린아이처럼 그 분을 의지하고, 불평할 것이 있으면 그 분 앞에서 투정하고, 그 분의 보호 속에서 행복한 미소를 지을 수 있는 관계를 끝까지 유지해야 할텐데...

/김성희(볼티모어 한인장로교회의 집사이자 요한전도회 문서부장이고, 경영학 석사과정을 마치고 메릴랜드 주립대학 의과대학에서 연구 행정원으로 근무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