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서 미국으로 날아와 보험 에이전트로 성공적인 삶을 개척한 박화실 집사는 또 다시 아시아권으로 날아가 후진을 양성하는 교수로 활동하고 싶다는 소망을 내비쳤다.
개인 보험회사를 차린 지 2년 만에 1만 7천 보험 에이전트 중에서 최고실적 5%에게 부여되는 ‘체어맨스 서클’ 회원가입, 2008 탑 100 에이전트에 선정된 박화실 집사(스테이트 팜 박화실 보험 대표, 애틀랜타한인교회)를 [믿음으로 일구는 삶의 터전]에서 찾았다. 이른 아침, 밝고 활기찬 웃음으로 기자를 맞이한 박 집사와의 인터뷰는 향긋한 커피 향과 함께 시작됐다.

조선족 출신인 박화실 집사의 스토리는 생각했던 것 보다 훨씬 흥미진진했다. 잘 알려진 보험인을 생각하고 만났지만 인터뷰가 진행되면서, 교육자라는 이미지가 굳어졌다. 미국 교육 시스템을 배우기 위해 미국 유학을 왔고, 실질적인 미국의 자본주의를 알기 위해 보험을 시작했다. 더 가르치기 위해 교수를 꿈꾼다는 박화실 집사의 인생 그리고 신앙 이야기를 들어봤다.

‘미국이 왜 선진국인지 알려면 교회 가라’ 교수님 첫 마디에…

독립투사였던 아버지로 인해 중국 남부 대련에서 자란 박 집사는 중국 내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했다. 석사과정을 마치고 대학 부교수로 7년 간 재직하다 ‘미국은 교육시스템이 어떻길래 선진국이 됐나’는 의문을 가지고 미국 유학을 결심, 미조리 주립대학 교육학 석사과정에 입학했다.

“독립투사이자 교육자이시던 아버지의 영향이 컸어요. 조선족 소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를 최초로 세우시고 30년 간 교장생활을 하셨던 아버지는 늘 “교육은 신성한 것”이라는 말로 자녀를 가르치셨죠. 그래서 미국은 당연히 교육수준이 앞서기 때문에 선진국이 됐다는 제 논리가 맞아떨어진 거에요. 당시 사회주의 체제였던 중국에서 대학 부교수를 지내면서도 ‘미국 교육에 뭔가 다른 게 있을 거다’라는 생각에 미국 행을 결심했어요. 미국이 어떤지 배우고 난 다음에 중국에 돌아와 교육사업을 할 생각이었죠.”

1992년이었다. 개강일 하루 전날 미국 공항에 도착한 그는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하고 첫 수업에 참석했다. 그것도 맨 앞자리에…. 당시 학장이었던 교수님의 첫 수업, 맨 앞자리에 앉은 동양인이 낯설 만큼 당시엔 아시아 유학생이 적었다.

“당시에 교수님이 ‘왜 여기에 오게 됐냐’고 물었어요. 그래서 서툰 영어지만 당당한 어조로 대답했죠. “미국을 알고 싶고, 미국을 선진국으로 만든 ‘교육’을 알고 싶어 왔다”고요. 수업이 끝난 뒤 교수님께서 방으로 따로 부르시더니 저한테 그러시더군요. 진짜 미국을 알려면 교회로 가라고.”

지금은 “하나님이 늘 나와 함께하신다”는 말이 입에 붙어있을 만큼 신실한 신앙인이 된 그녀의 신앙은 미국의 선진화 비결을 알고 싶어 온 한 유학생에게 교회를 소개한 교수님으로 인해서 시작됐다.

▲광명정대를 좌우명으로 삼아서인지 박화실 집사는 짧은 기간 동안 큰상을 받는 상복도 누렸다.
“삶의 교육” 알려준 보험업

교육학 공부를 위해 미국에 온 그가 어떻게 보험업을 시작하게 됐을까? 그 이유가 궁금했다. 돌아오는 대답은 역시 “교육을 위해서”였다.

“교육학을 배우면 미국이라는 나라를 좀 알 수 있겠다 싶었죠. 그런데 막상 졸업을 하고 나니 ‘책만 뒤적이며 ‘교육’을 공부했지만 진짜 미국을 알려면 ‘자본주의 사회구조’를 모르고는 안되겠다’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자본주의 하면 떠오르는 재정사업 중에 보험을 생각하게 된 거죠.”

8년 뒤에는 한국, 중국, 북한, 일본 중 한 나라에서 교육자(교수)로 활동할 계획이라는 박 집사는 “이제는 조금 미국을 알 것 같다”며 “아마 8년이 지나면 더 이야기 해 줄 것이 많지 않을까”하고 말했다.

그는 운동하라는 한마디보다 먼저 운동복을 차려입고 조깅을 하는 것을 시작해“직원들과의 생활 속에서, 가족과의 삶 속에서, 늘 삶으로 교육하고 또 배우려 한다”고 했다. 또 “단지 지식이 아니라 인간답게 사는 법을 가르치는 것이 진짜 교육인 것 같다”고 했다.

인생이란 평생 하나님께 받은 것, 감사하다 가는 것 아닐까

박 집사는 현재까지 보험, 재정 관련 8개의 자격증을 땄고, 그 중에는 미국사람도 따기 어렵다는 증권거래 자격증도 포함돼 있다. 그는 “자격증 따고 난 후 기쁠 것만 생각하고 공부했더니 한번 만에 합격했다”고 말했다. 긍정의 힘이 그를 지금에 이르게 한 것일까.

늘 긍정적이고, 적극적으로 또 열정적으로 살고자 노력하는 박 집사의 좌우명은 “광명정대(光明正大).” 밝고, 깨끗하고, 바르고, 크게 살자는 뜻이 담겨져 있다.

“얼굴에는 미소를, 마음에는 평화를…”이라는 말도 늘 되새긴다.

박 집사는 “마음의 평화는 늘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것을 믿을 때 가능하다. 미래를 걱정하기보다 ‘하나님께서 지금까지 내게 해 주신 것이 얼마나 많은가’ 생각하고 현재 상황에서 최대한 감사할 것을 생각하면 된다”고 말했다.

보험회사가 으레 그렇듯 밤 12시에 사고가 났다고 전화 오는 고객에게 화를 낸 에이전트에게 박화실 집사가 해 준 조언은 그의 긍정적이고 매사에 감사하는 태도를 잘 대변한다. “밤 늦게 사고가 났는데 가장 먼저 내게 전화했다는 것은 그만큼 내가 그에게 중요한 사람이라는 것이니 얼마나 고마운가”라고.

“인생이란 평생 하나님께 받은 것, 감사하며 살다가는 게 아닐까요? 소망이 있다면 살면서, 나로 인해 (다른 이들이) 행복이라는 물을 마실 수 있으면 좋겠어요.”

현재에 대한 ‘감사’와 미래의 ‘뚜렷한 꿈’, 사람을 소중히 여기는 ‘배려’에서 한 성공한 사업가의 경영 철학을 넘어 신앙인의 향내가 물씬 풍겨났다.

박화실 보험은 존스크릭 메드락 브리지 로드에 있다.

문의) 678-770-767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