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분이 이단에 대해서 물어 본 적이 있습니다. “목사님, 어떤 교회가 이단 교회입니까? 바르고 바르지 못한 교회는 어떻게 구별할 수 있습니까?” 우리가 이단을 분별해야 되는 이유는 우리가 바른 신앙생활을 하지 못하면 신앙생활을 열심히 해도 우매자와 같이 헛된 수고를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아마 그 질문을 하신 성도님도 이단을 바르게 분별해서 잘못 실수로 헛된 수고를 하지 않기 위한 것이라 생각이 되었습니다.

전도서 10장에서는 우매자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많은 교훈이 있지만, 한 마디로 우매자의 수고는 헛되다는 것입니다. 전도서 10장 15절을 보니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매자들의 수고는 제각기 곤하게 할 뿐이라 저희는 성읍에 들어갈 줄도 알지 못함이니라” 우매자들의 수고는 제각기 곤하게 할 뿐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성읍에 들어갈 줄도 알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지혜가 없고 우둔하고 악하기 때문에 수고를 해도 성읍에 어떻게 들어가는 지를 모른다는 말입니다. 자기 생각과 자기 능력을 믿고 교만하기 때문에 더욱 더 그 삶이 피곤해 지는 것입니다.

요즘 한국이나 미국에 사는 사람들이야 인터넷이나 navigation 이 잘 되어 있어서 미국 어디에 가도 길을 찾는 것은 큰 문제가 없습니다. 그러나 옛날에는 어디 그렇습니까? 집을 찾으려면 지도를 보고 찾아야 하는 것이고, 괜히 아는 척하다가 오히려 헤매게 되지요. 그래서 저도 처음에 미국에 왔을 때가 1983년인데 차를 사고 잘난척하고 길을 가다가 결국 길을 잃어버렸지요. 맞겠지 생각하고 갔는데, 나중에 아무리 가도 길이 안 나오고 나중에는 시골 농촌 마을 같은 데가 나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시 돌려서 결국 주유소에서 일하는 사람에게 물어서 찾은 적이 있습니다 .결국 헛수고를 한 것입니다.

우매자라는 말은 어리석은 자, 즉 지혜롭지 못한 자를 말합니다. 어리석은 자는 수고는 나름대로 열심히 하지만, 결실이 없으니 그 모든 것이 헛되다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의 신앙생활도 마찬가지 입니다. 결실이 없다면 헛될 수가 있습니다.

어느 도시에서 나무를 자르는 대회가 열렸습니다. 그 중에 최종 결승에서 두 사람이 대결을 하게 되었습니다. 둘 중에 토마스라고 하는 사람은 점심 시간 만 잠깐 빼고는 계속해서 나무를 자르기 위해 일했습니다. 또 다른 한 사람 바울이라고 하는 사람은 점심시간은 물론, 그 외에도 네 번이나 휴식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런데 오히려 휴식 시간을 더 많이 가졌던 바울의 승리로 끝이 났습니다. 그래서 토마스가 바울에게 물었습니다. “아니 난 점심 시간 한번만 쉬고 계속해서 일했는데 어떻게 당신은 네 번이나 휴식하면서 날 이길 수가 있었오?” 그러자 바울이 말합니다. “그런데 당신이 모르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난 휴식하면서도 계속해서 도끼의 날을 갈고 있었습니다.” 지혜로운 자와 우매자의 차이가 여기 있습니다. 그래서 전도서 10장 10절에서 말합니다:“ 무딘 철 연장 날을 갈지 아니하면 힘이 더 드느니라 오직 지혜는 성공하기에 유익하니라” 우매자는 연장의 날을 갈지 못하는 것입니다. 무언가 열심히 하는 것 같은데, 그 수고가 별 결실이 없다는 말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연장의 날을 갈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 믿는 사람 모두는 영적인 도구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런데 말은 도구인데 왜 제대로 일 하지도 못하고, 일해도 결실이 없습니까? 도구가 도구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기 때문인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제대로 된 도구가 되기 위해서는 잘 갈아진 도구가 되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성경 공부를 통해서, 기도와 예배를 통해서, 기타 영적 훈련을 통해서 신앙의 날을 갈아야 합니다. 날을 갈지 않고 습관적으로 교회를 나오면서 결코 결실할 수가 없습니다. 열심히 한다고 했지만, 바른 영적 훈련을 받지 못한 자는 날을 갈지 않고 일하는 자와 같습니다. 헌신도 수고도 중요하지만, 먼저 영적 훈련을 바르게 받아야 할 것입니다. 자신이 섬기는 교회에서, 자신의 섬기는 목사님을 통해서 바른 말씀의 훈련 신앙의 훈련을 받고, 영적인 날을 갈게 될 때 수고와 헌신이 헛되지 않고 많은 영적 결실을 이루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