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증시를 비롯해서 약간의 회복기미를 보이는 둣하기는 하지만 아직도 1930년대 대공황이후 최악의 경제위기를 온 세계가 겪고 있으면서, 요즈음은 경제에 대한 위기뿐만 아니라 경제행위를 논리적으로 설명하는 이론인 경제학자체에 대한 위기가 대두되고 있습니다.

‘경제학’ (Economics)의 역사는 Adam Smith가 ‘The Wealth of Nations'을 저술한 1776년을 기준으로 230여년이나 되었고, 경제정책과 관련된 ‘거시경제학’ (Macroeconomics)의 역사는 John Maynard Keynes가 ’The General Theory of Employment, Interest and Money'를 출간한 1936년으로 거슬러 올라가 70여년이나 되었습니다. 특히 30년전부터 국민경제가 Globalization에 힘입어 인류역사상 전대미문의 성장을 이루어 오면서 함께 현대거시경제학도 장족의 발전을 해 왔습니다.

그런대 그렇게 장족의 발전을 한 현대거시경제학이 2007년 후반부터 나타나기 시작한 지금의 악성 경제위기/금융위기에 대하여 예견도 제대로 하지 못했고, 오히려 잘못 진단했으며, 그에 대한 적절한 해결책도 마련하지 못하고, 어쩌면 잘못된 구제책을 시도하고 있는 것이 아닌지 하는 의구심이 요즈음 활발하게 논의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경제계와 경제학계에서는 거시경제학의 위기, 특히 금융경제학의 위기를 논의하고 있습니다.

작년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Paul Krugman은 지난 30년동안 발전해 온 거시경제학은 ‘놀랍게도 아무 쓸모가 없는 학문이며 나쁘게는 매우 해로움을 주는 학문’이라고 악평할 정도로 그 위기가 고조해 달해 있습니다.

거시경제학과 금융경제학의 위기란 바로 그들이 주창하는 모델과 가설, 즉 시장이 가장 균형적이라는 ‘역동적변동일반균형’(Dynamic Stochastic General Equilibrium)모델과 시장이 가장 효율적이라는 ‘효율적시장’(Efficient-Markets)가설이 틀렸다는 것입니다.

시장이 균형적이고 효율적일 수 있는 것은 시장에 참여하여 경제행위를 활발하게 수행하는 인간의 합리성(Rationality)을 대전제로 합니다. 누구나 공급행위로 소득을 얻으면 소비하고 저축하며, 저축한 것을 투자하여 모든 것이 시장에서 균형있게 해결되게 되는 것은 인간이 시장에서 합리적인 경제행위를 하기 때문입니다. 시장에서 값이 싸면 구매를 늘리고 비싸면 팔아 버리는 시장의 효율성도 인간의 합리적인 경제행위를 바탕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대전제로 삼고 있는 인간의 합리성이 과연 인강경제행위에 대한 올바른 가정인가하는 것이 경재학위기논난의 핵심입니다.

시장경제에서 전경제규모를 수요측면에서 보면 소비, 투자, 정부지출, 수출입 등 4분야로 나눕니다. 소비도 정부지출도 수출입도 주요한 국민경제의 분야이지만 투자가 기업투자거나 금융투자이든지 자본주의시장경제구조에 있어서 국민경제을 이끌고 나아가는데 있어서는 가장 핵심적인 견인차의 역할을 합니다.

20세기의 유명한 경제학자중의 한 사람인 Joseph Schumpeter는 자본주의시장경제에 있어서 지금까지 인류의 경제성장을 이끌어 오고 주도한 것은 투자에 있어서 ‘기업가정신’(Entrepreneurship)이라고 역설한 바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업투자가나 금융투자가가 시장경제의 움직임에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차지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중요한 역할을 하는 기업투자가들이나 금융투자가들이 시장에서 투자행위를 감행할 때에 합리성에 근거하게 되면 창조성, 즉 기업가정신을 발휘하여 가치를 창출/증가시키는 결과를 낳게 됩니다. 그러나 투자가들이 합리성을 잃어 버리면 ‘비이성적인 흥분’(Irrational Exuberance)으로 빠지게 되고 자기의 이득팽창만이 최고 라고 하는 ‘짐승의 영’(Animal Spirits)을 나타내게 된다는 것입니다.

지금 경제위기/금융위기의 직접원인이라고 제창되는 주택시장의 거품이나 금융파생상품의 과잉 등이 바로 투자가들의 비이성적인 흥분과 짐승의 영이 발로된 것이라는 주장입니다. 1930년대의 Keynes도 최근에 ‘행동주의자들’(Behavioralists)도 인간의 시장경제행위에는 짐승의 영이 두드러지게 표출된다고 주장한 바 있고, 지금도 역설하고 있습니다.

짐승의 영이란 무엇입니까? 짐승의 영은 바로 ‘육신의 생각’. ‘육체의 소욕’임을 성경은 말해 줍니다. 육체의 소욕은 자기이득만을 최대한으로 확대하기 위하여 모든 것은 희생시키는 투자행위를 의미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여야 육체의 소욕을 억제하고 짐승의 영을 다스릴 수 있겠습니까? 이는 인간이 갖고 있는 힘으로만은 불가능합니다. 위로부터 오는 하나님의 영을 받아 하나님의 영으로부터 오는 힘으로 짐승의 영을 통제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는 바로 성경이 가르켜 주는 성령의 열매를 맺는 행위/삶을 의미합니다.

시장경제행위의 가장 중추적인 행위인 투자와 관련해서 성령의 열매인 사랑을 맺는 행위로서 ‘희락’과 ‘절제’가 중요한 의미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첫째, 투자는 희락을 나타내는 행위이어야 합니다. 희락은 창조와 연관되어 있음을 성경은 말해 줍니다.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면서 창조하실 때마다 “좋았더라”라고 기쁨/희락을 나타내시었으며, 새로운 창조인 구원사역을 담당하실 예수님의 탄생을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이라고 천사가 목자들에게 전해 주었습니다. 태초의 창조이든 구원의 새로운 창조이든 창조는 희락을 동반합니다. 희락인 성령의 열매를 맺는 투자행위가 바로 창조성/기업가정신을 발휘하는 투자행위입니다.

둘째, 투자는 절제를 동반해야 합니다. 절제는 자기이익만을 추구하지 아니하고 다른 사람들의 이익, 더 나아가 모든 경제주체의 이익을 함께 추구하는 사랑의 열매를 맺는 행위입니다. 투자행위가 그러해야 한다는 내용입니다.

자본주의시장경제체제에서 가장 중요하고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기업투자가들/금융투자가들이 창조성/기업가정신을 발휘함으로서 희락을 창출해 내고, 모든 경제주체에게 이익이 되는 절제를 보여 주는 사랑의 열메를 맺게 되게 될 때에 지금의 경제위기/금융위기는 곧 회복될 것이고, 앞으로의 재발도 방지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인간의 죄성으로 간직하고 있는 짐승의 영을 이기고, 이러한 사랑의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영, 즉 성령을 받는 수밖에 없는 것이 하나님의 진리입니다.

그래서 성령의 충만은 가정생활과 교회생활을 뛰어 넘어 모든 인간의 삶, 즉 경제행위의 핵심인 투자행위에도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성령충만한 투자행위를 의미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