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봉수 씨 부부가 10대 아이들 셋과 함께 세계일주 여행에 나선 건 작년 9월이었다. 지금까지 방문한 나라는 모두 27개국. 현재 잠시 미국에 들러 쉼을 얻으며 유럽으로 떠날 준비를 하고 있다.

정상적이라면 대학 입시를 올해 치러야 할 큰 딸 윤영이, 고등학교에 진학해 있을 둘째 은택이, 중학교를 일년 다니다 중단한 막내 은찬이... 옥 씨가 이 아이들을 데리고 제 정신을 가진 부모라면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모험을 일년 간 감행하기로 결심한 데는 중요한 동기가 있다. 사실 그 이유는 뿌리를 캐면 매우 깊다.

“저와 아내는 부산에서 중학교 교사를 22년씩 한 사람들입니다. 한국 교육이 심각한 위기에 있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사춘기에 접어드는 저희 아이들을 보며 문제의식이 더욱 커졌습니다. 어떻게 이 아이들을 키워야 할지 3년 간 고민했습니다.”

모든 것이 성적으로 평가되고 부모가 교사를 상대로 소송하고 경찰이 학교 내에 출동해 있어야 하는 한국의 교육 현장은 이미 정도를 한참 벗어나 있었다. 방과 후 학원으로 몰려가는 아이들을 교사가 전혀 접촉할 수 없는 현실 속에서 인격적 ‘터치’를 기대한다는 건 불가능했다. 아니 부모들도 입시 준비에 방해가 된다며 원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크리스천인 옥 씨는 아내와 2년 간 기도하며 해답을 구했다. 그리고 자식 교육도 내려 놓아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아이들에게 넓은 세상을 보여주고 스스로 삶을 개척하도록 해줘야 한다는 생각에 세계 여행을 계획했다. 맞벌이 교사라면 한국에서 우스개 소리로 신흥재벌로 통한다는데 은퇴를 결정했다. 처음에 아이들은 부모의 생각을 싫어했다. 인터넷, 휴대폰, 아이팟에 젖어버린 아이들에게 당연한 반응이었다. 6개월을 설득했다. 그리고 난 후 다섯 식구가 배낭을 메고 나선 발걸음은 아프리카와 남미를 거쳐 현재 워싱턴에 이르렀다.

안데스 산맥을 오르며 발꿈치에 피가 나고, 때론 3일 간이나 비를 피할 곳을 찾지 못해 온가족이 물에 젖은 생쥐 꼴이 되고, 한 푼이라도 아끼느라 갖은 불편을 감내하며 10개월을 보냈다. 그 사이에 아이들은 심성과 영성이 몰라 보게 자라 있었다. 고생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여행 비자 수속이나 세관 문제, 스케줄 조정을 아이들이 스스로 해냈다. 부모 몰래 게임을 하던 아이들은 아침에 일어나 자연을 보며 “아빠 일어나 보세요. 정말 멋있어요”하고 감탄할 줄 아는 사람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수동적으로 받기만 하고 지시를 따르던 아이들이 자신의 진로와 삶의 목적을 스스로 고민했다.

어머니 박임순 씨는 그러나 “여행 중에 나이에 상관 없이 방황하는 한인들을 많이 만났다”고 말했다. 그저 일류대학, 좋은 직장을 최고의 목표로 여겼던 한인들은 마음의 빈 공간을 그렇게 채우고 있었다. 이들이 박 씨에게는 진정한 목적을 잃어버린 한국 교육의 희생자들처럼 보였다.

유럽 여행 후 미국에서 영어 연수를 받고 내년 4월 한국으로 돌아가면 옥 씨 부부는 홈스쿨 같은 대안 교육 시스템 개발을 꿈을 키우고 있다. 한국 청소년들을 넓은 세상으로 이끌어줄 ‘세계일주학교’ 프로그램도 구상중이다. 세계일주학교는 당장 생업을 포기하고 여행을 떠나는 게 아니라 지역별, 연령별로 아이들이 직접 치밀한 계획을 세워 일관성 있게 진행되도록 하기 위해 다른 교육 관계자들과의 협력도 중요하다고 보고 있다.

옥 씨는 “세상을 돌아보니 어느 나라 건 한인 이민자들은 다문화에 익숙해져 있고 다중언어가 가능해 글로벌 시대의 주역이 될 수 있는 조건이 갖춰져 있음을 발견했다”며 “이들에게 한국인의 정체성을 바로 심어주고 네트워킹한다면 세계에 큰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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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 한국일보 이병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