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버드대학 교육학과 교수로 조승희 사건의 전문 자문위원을 맡은 바 있는 조세핀 김 교수가 지난 21일 안디옥교회(담임 허연행 목사) 강연에서 “본인도 큰 정체성 혼란을 겪으며 청소년기를 보냈기 때문에 1.5세의 정체성 문제를 심각하게 보고 있다.”고 밝혔다.

목회자였던 아버지를 따라 8살의 나이에 시카고로 이민 온 김 교수는 “처음 미국생활을 적응하는 데 꽤 많은 시간이 걸렸다.”고 했다. ESL프로그램이 제대로 정착되지 않은 이민 초기였기 때문에 체계적인 영어 교육의 부재 때문이기도 했지만, “학교에 가면 수업 시간 내내 그림만 그리다 올 정도였다.”고.

그러던 김 교수가 변화를 체험한 계기가 있었다. 84년 그가 4학년 때였다. 김 교수는 “버지니아 주로 이사하면서 새롭게 만난 선생님의 관심과 사랑으로 인생의 전환점을 맞게 됐다.”고 밝혔다. “학습이 부진하던 저를 데리고 수업 이후 1시간 동안 개인과외를 시켜주시던 선생님이 계셨어요. 그 후로 수업시간에 자신감이 붙었고 미국 생활에 적응하기 시작했죠.”

학창시절 선생님에 대한 감사함으로, 또 학생들에게 상담을 해 주는 선생님의 자리에서 어려움을 느끼던 김 교수가 작년, 다시 4학년 당시 선생님에게 전화를 하게 됐다.

김 교수는 “선생님 그 때 어떻게 저를 그렇게도 인내하며 가르쳐 주실 수 있었나요?”라고 물었다. 그랬더니 뜻밖의 대답이 돌아왔다. 교사 생활을 하던 내내 김 교수의 선생님은 매일 새벽 4시에 일어나 가르치는 아이들의 이름을 일일이 부르며 기도하셨다는 거였다. “얘야, 그 해 가장 많이 하나님께 기도했던 아이가 바로 너란다!”하시며 우시는 선생님을 다시 뵈며 “나를 만든 것은 부모님과 선생님의 기도였다.”고 김 교수는 고백했다.

김 교수는 중학교에 들어갈 무렵 아버지의 목회지 이동으로 한국으로 다시 가게 됐지만, 외국어 사립학교를 다녔다. 미국 생활에 적응이 된 김 교수가 다시 한국 중학교부터 적응을 해 간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기 때문이다. 목회자 가정이 그렇듯 넉넉지 않은 가정형편 때문에 자신이 직접 영어과외를 가르치며 등록금을 대야 했지만, 그 덕분에 한국어와 영어, 이중언어를 완벽하게 구사하게 됐다. 현재는 주류 대학 교수로서, 한국어를 완벽하게 하는 2세로서 한인사회와의 다리 역할을 톡톡히 감당하고 있다.

김 교수는 고등학교 졸업 후 미국에 있는 대학교에 입학했고 현재는 하버드 교육학과 교수로, 또 청소년 학생들의 상담가로 주류 사회에도 널리 정평이 나 있다.

이날 김 교수는 강연을 통해 “미주 이민 청소년들의 정체성 혼란은 당연한 것이지만, 그것을 대하는 부모님의 신앙과 대하는 태도가 자녀의 미래를 좌우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