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사는 가정이나 사회에서 건강한 공동체를 이루기 위한 필요한 요소 가운데 다양성 인정과 존중의 원칙이 있습니다. 이것이 연합감리교회가 한동안 많이 강조하던 '다양함 가운데 일치함'(Unity in Diversity)입니다. 부모의 교육방법이 엄마와 아빠가 다르지만 자녀를 사랑하는 원칙은 분명해야 하는 것입니다. 부모가 서로 의견이 다르다고 싸우느라 자녀 사랑하는 일을 포기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더불어 살아가기 위해 개인의 이기적인 이익보다 공동체의 필요를 존중하는 것입니다. 이를 공공성이라 합니다. 또한 정당성(fairness)이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사회를 건강하게 만드는 원칙일 것입니다.

그런데 제가 한주간 한국에 있으면서 극과 극의 언어와 생각들을 만나면서 당황스러웠던 일이 너무 많았습니다. 가장 적나라하게 나타나는 것이 택시운전사들의 정치사회분석입니다. 얼마나 언어가 강하고 극단적인 확신으로 충만한지 모릅니다. 그런데 이에 못지 않은 사람들을 교회에서도 많이 만났습니다. 생각이 다른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 하는 것을 보면 완전히 지구상에서 없애버려야 할 원수들에게나 사용하는 단어들로 비난합니다. 사회는 물론이요 교계를 보아도 왠지 극과 극을 선택하는 모습들이 제 마음을 참으로 불편하게 했습니다.

요한 웨슬레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본질에는 일치, 비본질에는 자유, 모든 것에 사랑을"(In essentials unity, non-essentials liberty, all things in charity.)" 웨슬리의 입장에서 보면 예수가 그리스도이심, 십자가 구원, 부활과 같은 본질적인 것에 대해서는 의견의 일치를 하고, 그 외 다른 내용에 있어서는 서로 자유를 인정해 주고, 모든 것에는 서로 사랑을 원칙으로 하는 것입니다. 웨슬리의 가르침이 너무도 우리 사회와 교계에 중요한 것 같습니다. 양극의 극단 이외에는 아무 것도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생각하는 것은 사실 자기 자신을 하나님의 절대적인 위치에 놓으려는 위험한 생각입니다. 내 생각이 잘못될 수도 있다는 겸허한 마음, 다른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도 그렇게 보면 그럴 수 있겠구나 생각할 수 있는 성숙한 생각을 가져야 합니다.

오래전 시카고에서 목회를 할 때 지방 목사자격심사위원회에서 위원장직을 맡고 있을 때 동성애자 후보가 인터뷰에 들어온 일이 있습니다. 너무도 똑똑하고 유능한 젊은이인데 동성애자였습니다. 위원들의 의견이 충돌하고 그 후보자에 대한 여러 신상문제들이 공개화되고 그러는 가운데 결국 탈락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 사람이 탈락하게 된 배경에는 위원장인 나의 선택이 관계되었습니다. 아무리 내가 진보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하지만 동성애자가 목사안수를 받는 것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이 젊은이가 그 인터뷰 이후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너무도 비극적인 상황이었습니다. 벌써 20여년전의 일인데 그 해 연회에서 설교자를 정하면서 그 문제로 어려운 상황인지라 저를 설교자로 결정했습니다. 그런데 내가 설교해 본 가운데 그렇게 어려웠던 설교는 없습니다. 상황이 워낙 심각하기도 하고 개인적으로 책임감을 느껴서 사양하지를 못하고 설교를 하면서 그런 말을 했습니다. "나는 동성애자가 목사안수를 받는 것에 대해 아직도 반대이다. 그러나 왜 우리는 그 젊은이에게 예수님 사랑과 소망을 주지 못했는지 지금도 가슴 아프다. 그도 예수 그리스도가 찾으시는 잃은 양 한마리이다. 아직도 우리의 교회들은 교회이기를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 교회가 세상의 소망이기 때문이다. 그 소망은 예수님이 찾으시는 우리와 같은 모든 죄인들을 위한 것이 아닌가?"이런 내용이었습니다.

요즘 그런 생각을 합니다. 사람은 그저 사람일 뿐인데… 하나님의 사랑을 예수님의 은혜를 필요로 하는 연약한 존재일 뿐인데…그런데 왜 우리는 스스로 하나님의 자리에 서려고 하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