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후반기-35세 이후의 시기-에 나를 찾아온 모든 환자들 가운데 최후 수단으로 종교적인 인생관을 찾지 않은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그들은 모두 각 시대의 살아있는 종교가 신자들에게 제공했던 것을 상실함으로써 병들어 있었다. 그들 가운데 자신의 종교관을 회복하지 못한 채 치료된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었다.(C. G. 융)”

혹자는 기독교가 ‘심리학에 물들었다’고 비판했지만 분석심리학, 특히 ‘무의식’으로부터 기독교적인 치유를 위한 자원을 얻을 수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전직 대통령이 자살하는 등 극도로 혼란한 시대에 ‘영혼 돌봄’이라는 새로운 차원의 목회를 해야 햐고, 목회자들부터 자신의 내면을 돌봐야 한다는 것이다.

목회자들, 성장 추구하다 자신을 잃어버렸는지 돌아보자

▲이번 실천신학회 학술대회는 이날 열린 다양한 학술대회에도 불구하고 1백여명의 다양한 실천신학자들이 참석해 성황을 이뤘다. ⓒ이대웅 기자

지난 30일 경기도 광주시 경안동 서울장신대 강신명홀에서 열린 제32회 한국실천신학회(회장 위형윤 안양대 교수) 학술대회 목회상담분과 발표에 나선 심상영 박사(한국심층심리연구소장)는 “융은 종교를 심리치료적인 체계(psychotherapeutic systems)로 봤고, 이는 기독교에도 해당된다”며 “복음서에는 예수께서 병자를 치유하신 내용이 많이 나오는데, 고치신 후 ‘네가 구원받았으니 평안한 마음으로 돌아가라’는 말씀에서 ‘치유’와 ‘구원’은 같은 뜻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기독교 신자들은 기도와 묵상, 성경읽기, 공동 예배, 죄 고백, 성례전(특히 성찬식), 찬양, 심령부흥회, 퇴수회(피정) 등을 통해 치유를 경험한다는 것이다.

심 박사는 자신의 경험을 근거로 내세우기도 했다. 그는 “지난 1981년부터 융 학파의 분석을 받으면서 계속 치유를 경험했고, 영적인 삶에도 큰 도움을 얻었다”며 “이런 경험을 통해 무의식의 소리를 듣는 것이 곧 치유의 길이요, 온전해지고 영적으로 성숙해지는 길이라 생각하게 됐다”고 고백했다.

그는 이어 한국의 많은 목회자들이 방향 감각의 상실과 에너지 고갈 혹은 탈진상태에 빠져있다며 우려를 표시했다. “탈진은 심리학적으로 ‘영적 죽음’”이라는 그는 “많은 목회자들이 만연된 경쟁적 상황에서 눈에 보이는 가치를 추구하다 그들 자신을 잃어버렸다”고 말했다. 교회 성장 비결을 배우고, 더 많은 사람들을 교회에 모으기에 바쁜 목회자들이 먼저 자신의 마음(무의식)을 들여다보고 하나님 나라를 구하려 힘써야 한다(마 6:33)는 것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눅 17:21)’는 성경구절을 인용하면서 그는 “이제 한국교회 목회자들은 인간 내면을 돌봐야 할 시점에 와 있다”고 말하고, “예수님의 가르침은 내면 생활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보여주는데, 오늘날 한국교회는 이러한 가르침의 내적 차원을 간과할 뿐만 아니라 인간의 영혼을 어루만져주는 일에 우선적으로 관심을 제대로 기울이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영혼을 찾는 목회, 영혼 돌봄의 목회를 시작하라

▲심 박사는 융학파 정신분석가이며, 한국심층심리연구소를 운영하고 있다. ⓒ이대웅 기자
목회자는 ‘영혼을 사랑하는 사람’ 또는 ‘영혼의 의사’로 스스로를 새롭게 인식하고, 우선적인 관심을 영혼을 돌보는 일에 둬야 한다고 심상영 박사는 강조했다. “그동안 눈에 보이는 것을 얻으려고 애쓰다 깊은 좌절을 맛볼 수 밖에 없었던 한국교회는 이제 ‘인간은 영혼을 갖고 있고, 밭에는 보물이 숨겨져 있다’는 칼 융의 말에 도전을 받아 예수께서 강조하신 ‘영혼을 찾는 목회(soul-searching ministry)’, ‘영혼 돌봄의 목회(ministry of cura animarum)’를 새롭게 시작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며 “이것이 이 땅의 목회자들에게는 그리스도를 본받는 삶의 길일 것”이라고 발표를 마무리했다.

심 박사는 이같은 영혼 돌봄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그리스도를 본받는 것(Imitatio Christi)’에 대한 분석심리학적 의미를 세 가지로 제시했다. 모든 소유를 버리고 그리스도의 고통을 체현하는 삶을 살았던 성 프란체스코, 그리스도와 내·외적 일치를 성취해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는 성화를 추구했던 웨슬리 등 전통적인 기독교 입장과는 달리, 융은 외적인 예배 대상으로서의 그리스도는 거리감이 있고 이 세상에 사는 우리가 결코 도달할 수 없는 대상이므로 이같은 이해가 ‘피상적 모방’에 그칠 수 있다고 봤다. 그래서 융은 그리스도가 삶을 통해 상징적으로 보여준 자기됨(selfhood)과 전일성(wholeness)에 도달하는 것을 그리스도를 본받는 것으로 생각했다.

이러한 차원에서 융은 ‘그리스도를 본받는 것’이 분석심리학적으로 △사회의 기대에 맞추고 체면을 중시하는 페르소나(persona)에서 벗어나고 △마음 속에 억압됐던 요소들을 자신의 것으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그림자’를 통합하고 고통을 받아들이며 △남성적인 원리가 지배적인 기독교 전통에서 여성적인 원리를 통합하는 것 등의 의미였다고 그는 설명했다.

실천신학, 신학 없는 교회·현장 없는 신학 대안 제공하자

이번 실천신학회 학술대회에서는 처음으로 분과별 심화발표가 시도됐다. 목회상담분과에서 발표한 심상영 박사 외에 전도선교분과에서 하도균 교수(서울신대)가 ‘한국 초기성결교회 대거부락 전도운동’, 예배분과에서 조기연 박사(서울신대)가 ‘예배의 일반적 이해’, 디아코니아와 기독교 사회복지분과에서 김옥순 박사(한일장신대)가 ‘기독교 봉사개념의 기초로 디아코니아 어군의 의미’, 교회성장분과에서 최동규 박사(서울신대)가 ‘한국 포스트모던 문화의 도전과 교회성장 과제’, 설교분과에서 류원렬 박사(연세대)가 ‘존 웨슬리의 설교 연구’, 목회사회분과에서 조창연 박사(대한신학대)가 ‘한국 사회의 변화에 따른 개신교의 변화와 그 이념적 분화’를 각각 발표했다.

이후 김윤규 박사(한신대)와 김종렬 박사(목회교육연구원장)는 7개 분과별 발표 결과를 보고하면서 오늘날 실천신학이 해야 하는 교회적 과제를 외면하고 각 학회 분과만의 길로만 치닫고 있는 현실을 반성하고, 신학 없는 교회·현장 없는 신학을 실천신학의 재구성과 연계성으로 확보함으로써 교회의 실천문제를 ‘신학화’하는 작업이 중요하다는 내용의 종합토론을 진행했다. 김외식 전 총장(감신대)은 ‘한국 실천신학의 회고와 전망’을 주제로 한국 실천신학의 역사를 되짚으면서 이론신학이 목회현장에서 부작용이 일어날 때 실천신학이 그 비판적 기능을 담당해야 한다는 내용의 주제강연을 진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