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아는 목사님 한 분과 차를 타고 가는데, 저보고 하루는 그럽니다. 정 목사님, 저 많은 사람들이 차를 타고 가는 모습을 보면 참 신기하지 않냐고.. 어떻게 자동차라는 것을 만들어서 그 많은 사람들이 먼 거리를 출퇴근하는 모습을 볼 때 인간이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참 대단한 존재 같지 않느냐고 말합니다. 그러나, 사실, 자동차뿐만 아니라, 요즘 컴퓨터와 반도체도 하루가 다르게 기술이 발전 되어져 갑니다. 우리가 가지고 다니는 핸드폰만 하더라도 불과 20년 전 만 하더라도 상상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는 기술이 발달해서 전화기의 크기만 작아지는 것이 아니라, 전화기 안에 Mp3 Player가 있어서 음악도 들을 수 있고, 디지털 카메라의 기능도 있고,인터넷까지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런 것을 볼 때 인간이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참 능력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우리 인간은 모르는 것이 너무 많습니다. 지구 내에 있는 생명체의 숫자도 우리가 정확히 모릅니다. 감기의 원인도 아직 확실히 모르고 있는 상태입니다. 암의 치유도 아직 완전하지 못합니다. 우주는 여전히 신비한 것으로써 아직도 모르고 있는 상태입니다. 더구나 하나님에 대해서도 성경에서 말하는 것 외에는 알 수가 없습니다. 사람이 아무리 지혜롭다 하더라도 여전히 인간의 지식과 지혜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그래서 전도서5장 17절에서도 지혜자의 한계에 대해서 말합니다:

“하나님의 모든 행사를 살펴보니 해 아래서 하시는 일을 사람이 능히 깨달을 수 없도다 사람이 아무리 애써 궁구할찌라도 능히 깨닫지 못하나니 비록 지혜자가 아노라 할찌라도 능히 깨닫지 못하리로다“

지혜자가 능히 깨닫지 못하는 것이 많다는 것입니다. 그 중에 몇 가지만 말하면 첫째, 하나님의 모든 행사를 알 수가 없다는 것이지요. 지금 읽었던 17절에서 말합니다 “... 해 아래서 하시는 일을 능히 깨달을 수 없도다”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능히 깨달을 수 없다고 말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깨달을 수 없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만약 우리가 2차원에서 산다면 축구공을 보면 그냥 원으로만 보일 것입니다 왜냐면 2차원에서는 구형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3차원에 사는 우리 인간이 4차원 5차원, 차원을 초월하는 하나님을 알 수가 없는 것입니다. 단지 우리는 성경을 통해서 일부만 알 수 있는 것입니다.

둘째, 지혜자라 하더라도 장래 일을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전도서 15장 7절에서 말합니다: “사람이 장래 일을 알지 못하나니 장래 일을 가르칠 자가 누구이랴” 사람이 장래 일을 알 수 없다는 것입니다.

셋째, 지혜자도 죽음에 대해서 알지 못하고, 죽음에 대한 힘도 없다는 것입니다. 15장 8절에서: “생기를 주장하여 생기로 머무르게 할 사람도 없고 죽는 날을 주장할 자도 없고 전쟁할 때에 모면할 자도 없으며 악이 행악자를 건져낼 수도 없느니라” 지혜자라 하더라도 생기를 머무르게 할 수도 없고, 죽는 날을 주장할 수도 없다는 것입니다. 생기라는 것은 혼을 말합니다. 혼을 머무르게 할 지혜도, 능력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전도서 기자는 마지막으로 두 가지의 권면의 말씀으로 마무리를 하고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을 믿고 경외하는 삶을 살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전도서 15장 13절에서: “악인은 잘되지 못하며 장수하지 못하고 그 날이 그림자와 같으리니 이는 하나님 앞에 경외하지 아니함이니라” 악인이 잘 되는 것처럼 보일 수는 있으나.. 그 날이 그림자와 같다는 것입니다. 그림자는 실체가 아닙니다. 태양이 지면 있다가 사라져 버리지요. 그러나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은 다릅니다. 해가 항상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을 비출 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친히 동행하시기에 늘 형통한 삶을 살수가 있는 것입니다.

둘째, 수고하면서 즐거워하며 살라는 말입니다. 전도서 15장 15절에서: “이에 내가 희락을 칭찬하노니 이는 사람이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는 것보다 해 아래서 나은 것이 없음이라 하나님이 사람으로 해 아래서 살게 하신 날 동안 수고하는 중에 이것이 항상 함께 있을 것이니라” 우리가 이 세상에 살아가는 동안 수고해야지 먹고 사는 것은 정한 이치입니다. 수고하지 않을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수고하면서 힘들어하고 괴로워하고 불평할 것이 아니라, 수고하면서 즐거워하며 살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복된 삶인 것입니다. 수고 하는 가운데 그냥 하루하루 먹고 마시고 산다면 이것이 바로 복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욕심을 버리고, 하루 세끼 먹는 것에 만족하면서 수고하고 즐거워한다면, 그것이 복입니다. 인간의 지혜는 한계가 있습니다. 그러니 무한한 지혜와 지식을 가지신 주님을 경외하는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수고하면서 주안에서 항상 즐거워하며 살아가는 여러분 되시길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