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한인사회에서 한인 교회가 신앙 활동의 중심에 서 있음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나아가 교회가 한인들의 문화 활동이나 정보 교류에 크게 기여하고 있음도 의심의 여지가 없는 사실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한인 교회가 미국의 한인 사회에서 구심적인 역할을 맡고 있다고 단언하여도 크게 잘못된 말이 아니다. 그런데 교회가 종교적, 문화적으로 긍정적인 기능을 수행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인 교회는 한인 사회 내부의 갈등과 분규에 휩싸이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애틀랜타 한인 이민사를 집필한다고 하면 먼저 “애틀랜타 한인 교회의 갈등과 분규를 어떻게 기술하려고 하느냐?”라고 물어 보는 한인들이 많다. 이러한 질문은 갈등과 분규에는 서로 대치하는 두 집단이 있는 것인데 그러한 갈등과 분규를 편파적이 아닌 방법으로 글을 쓸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다시 말해, 만약 한 집단을 옹호하여 글을 쓰면 다른 집단을 폄하하는 글이 될 것인데 그러면 그 집단이 가만 있을 리가 없을 것이니 어떻게 한인 교회의 갈등과 분규를 기술하려고 하느냐는 것이다. 사실 어떠한 갈등과 분규를 기록하면서 양 집단의 입장을 전부 충족시키면서 기록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그렇다면 한인 교회의 갈등과 분규에 관한 얘기를 기록하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 그럴 수는 없다. 많은 사람들은 그러한 갈등과 분규를 전부 빼고 좋은 얘기만 기록하면 좋은 역사책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충고하고 있기 때문이다.

애틀랜타 지역 한인교회 내부의 갈등과 분규에 해당하는 사례가 무수히 많기 때문에 애틀랜타에 수년 간 살아 본 한인들은 누구나 한인 교회를 둘러싼 갈등과 분규에 관한 이야기들을 들어 보았을 것이다. 아마도 애틀랜타 한인 교회의 갈등과 분규에 관한 주제만으로도 한 권의 책을 쓸 수 있을 것이다. 이 절에서는 애틀랜타 한인교회의 갈등과 분규 중에서 하나의 사례만 들어보고자 한다. 이 사례는 대표적인 사례이기 때문에 여기에 기록하는 것이 아니라, 한인 교회 내부에 갈등과 분규가 있었음을 실례를 들어가면서 보여주기 위해 기록하는 것이다. 이 글과 관련하여 특정인이나 특정 교회에 불이익이 가지 않도록 가명을 사용하고자 한다. 그리고 여기서 게재하는 사례는 한국일보 애틀랜타 지국의 1982년 7월20일 자 기사에서 인용한 것임을 밝혀둔다.

교회 신도가 목사를 상대로 폭행상해죄로 고소를 제기했던 사건의 청문회가 1982년 7월12일 오후 11시 디캡 카운티 매기스테이트 법정에서 캠벨 판사의 주재로 열렸다. 이 청문회의 피고는 한인 J교회 최중훈 (가명) 목사였고 원고는 이교회의 여전도회장 이미희(가명) 여사였는 데, 원고와 피고는 변호사의 도움을 받아 마주 앉아 공소 사실에 관한 증언을 하였다.

먼저 증언에 나선 원고 이 여사는 “최 목사가 ‘당신은 여전도회장으로서 목사가 이민 브로커 역할을 하고 다닌다고 소문을 퍼뜨리고 다녀서야 되느냐?’고 말해 ‘나도 들었습니다. 증인까지 대라면 대겠습니다.’라고 말하였다.”라고 진술하였다. 그런데 “최 목사가 이 말을 듣고 두 손으로 내 목을 누르고 나를 뒤로 밀어 붙여, 뒤에 있던 두 사람이 받쳐 넘어지지는 않았으나 목이 아파 병원에 가서 약을 먹고 주사까지 맞았다.”고 이 여사는 증언하였다.

이어 최 목사의 증인으로 출두한 박희두 씨는 “이민 브러커 운운 시비로 말다툼 중에 최 목사가 이 여사의 양 어깨를 밀쳤을 뿐이고, 이 여사가 넘어지지는 않았다.”고 증언하였다. 증인들의 증언이 전부 끝난 다음에 최 목사의 증언을 들었따. 최 목사는 “이번 사건은 L씨와 H씨가 교회 헌금을 빼돌렸기 때문에 일어났다. 그 돈은 하나님의 돈이다.”라고 증언하였다. 최 목사는 또 이 여사가 욕설을 하여 그만 하라고 양어깨를 내리쳤을 뿐이라고 덧붙였다.

이어 원고, 피고, 증인들의 증언이 끝난 후, 피고측 변호인은 이 사건은 원고 측이 욕설을 퍼붓고 약을 올렸기 때문에 일어난 경미한 일이라고 전제하고 피고가 사제인 목사이니 공소를 기각시키는 것이 마땅하다고 변론을 하였다. 이어 원고측 변호인은 증인들의 증언을 들어볼 때 목사가 여자에게 손찌검을 한 사실이 중요하다면서 조지아 주법에 의해 최 목사가 벌을 받아야 마땅하다고 주장하였다.

이날 청문회는 원고, 피고, 증인 그리고 양측 변호인의 증언과 변론을 들은 뒤 기각 판결로 끝나버렸다. 캠벨 판사는 변호사의 변론이 끝난 후 별다른 설명을 하지 않고 기각한다고 선언하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본 청문회의 판결을 전해들은 일부 한인들은 한인 교회에서 일어난 일들을 미국 법정까지 끌고 간 것 자체가 부끄러운 일이라고 말했다.

위의 분규 사례는 이민 교회가 겪어야 하는 진통 중의 하나였다고 본다. 한인 교회 분규의 유형을 보면 거의가 목사 지지파와 목사 반대파 간의 갈등으로 치달아, 어느 한 쪽이 따로 교회를 차리고 나가는 경우가 대단히 많다. 한국의 교회나 미국 속의 한인 교회의 갈등 유형이 흡사한 점이 많지만, 한국 교회의 경우보다 미국 속의 한인 교회 분규가 더 많은 것은 역사가 얕은 이민 교회가 갖는 진통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더욱이 한국에서 교회에 다니지 않던 사람이라도 일단 미국으로 이민을 오게 되면 교회를 나가게 되는 경우가 많은 데, 이러한 사람들이 미국 속의 한인 교회 교인들의 다수를 차지한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도 안될 것이다. 즉 교회의 본질을 잘 알고 있는 교인 수보다 그렇지 않은 교인 수가 훨씬 더 많을 경우에 일어날 수 있는 현상이라고 진단하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교회의 본질을 익히 알기 이전엔 교회를 하나의 사회 집단으로 보고 있기 때문에 야기되는 부작용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애틀랜타 지역에서도 우리는 수 없이 많은 교회 내부의 분규 현상을 보아 왔으나 해가 갈수록 분규의 빈도가 줄고 있음을 본다. 이는 초기 때보다 교회의 본질을 서서히나마 깨달아 가고 있다는 의미도 내포하고 있다고 여겨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