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자의 든든한 후원자이자 성도들의 마음을 하나하나 어루만지는 사람, 목회자의 중보자가 되어 성도와의 다리가 되어주는 사람, 바로 사모다. 본지는 애틀랜타 사모들의 간증과 함께 사모가 가져야 할 역할과 사명을 들어보는 시간을 가졌다. 처음으로 애틀랜타제일장로교회(서삼정 목사) 서옥자 사모를 만났다.

“19살 어린 나이로 40일 금식기도를 하게 된 것은 “주의 종이 되어야 하는가? 약학도의 길을 계속 걸어야 하는가?”하는 진지한 물음 때문이었습니다.”

‘다시 태어나도 사모가 되겠느냐’는 기자의 물음에 1초의 주저함도 없이 ‘그렇다’고 답하는 서옥자 사모.

독실한 기독교 가정에서 태어나 어릴 때부터 교회에서 자라온 서 사모는 자기도 모르게 주의 종이 되어야 한다는 막연한 부담감을 가지고 있었다고 했다. 약학을 전공으로 택했던 그녀는 대학에 가서도 ‘주의 종’의 길을 택하지 않았다는 불순종의 느낌이 들었다. 그것이 바로 휴학 후 기도원에 들어가 40일 주야로 물만 마시고 금식한 기도한 이유였다.

“당시 기도제목은 ‘주의 종의 길로 가야한다면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고 그대로 순종하겠다는 것’과 ‘사랑의 은사를 구하는 것’ 두가지 였어요.”

더욱 간절히 기도하기 위해 먼 발치 산 위에 올라가기도 하고, 차디찬 눈 속에 무릎을 꿇고 하나님의 인도를 기다리기도 했다. 그러나 왠일인지 40일 기도가 끝날 때까지도 그렇다할 응답은 없었다. 느긋하고 매사에 긍정적인 타고난 천성 때문이었을까. 기도 응답이 확실하진 않았지만 “기도한 것이 어디에 갈까. 때가 되면 하나님께서 응답하시고 인도하실 거야. 딱히 약대 가기를 막지 않으셨으니 기다려보자”라는 믿음으로 다시 대학으로 돌아갔다.

15불 손에 쥐고 전전긍긍… “늘 채워주시는 하나님, 할렐루야!”

대학을 졸업하고 약사로 재직하던 당시 중매가 들어왔다. 상대는 목회자였다. 결혼 후 3년 정도 지났을 때, 선교사 350명 파송을 꿈꾸던 서 목사의 비전이 LA에 있던 한 친구의 이민 소개와 맞물려 미국행을 결심하게 되지만… 미국은 생각했던 만큼 간단한 곳이 아니었다.

3살 배기 아들 손을 붙들고 LA 친구 집으로 찾아갔다. 그러나 물설은 미국땅에서 어떻게 가정과 교회를 꾸려나가야 할 지 막막했고, 애틀랜타에 아는 목사님이 있어 3일 만에 애틀랜타로 이사를 오게 됐다.

“처음에 와서 3~4개월 동안은 직장을 못구해 전전긍긍했어요. 개척교회를 하려면 돈이 필요했기 때문에 직장을 구해야 했는 데, 영어도 능숙하지 못하고 단순노동직에는 고학력이 맞지 않아 손사레를 치는 곳이 많았거든요. 한국에서 가져온 돈은 떨어져 가고, 목사님은 ‘믿고 기다리자. 하나님께서 채우신다’는 믿음의 말로 권면하셨어요.”

그 때였다. 지갑에는 단 돈 15불, 렌트비 낼 날은 다가오는 데 3개월이 넘도록 구해지지 않던 직장이 구해졌다. “할렐루야!” 한 웨어하우스에서 땡스기빙을 맞아 평소보다 많은 직원을 고용했던 것이다.

‘어려운 가운데서도 때에 맞춰 채워주시는 하나님’을 날마다 체험하던 때였다. 개척교회를 꾸릴 때는 사례비를 받는 것 보다 헌금을 더 많이했던 시절도 있었다. 그러나 차도 기부받으며 날마다 비운만큼 채우심을 경험했다.

▲서삼정 목사, 서옥자 사모 부부

늦었지만 정확했던 40일 금식기도 응답, “주의 종 ‘사모’가 되어라”

“사모가 될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어요. 주의 종 하면 ‘전도사’가 되거나 ‘권사’ 정도로 생각하고 있었는 데 인도하심은 다른 곳에 있었어요.”

비전을 쫓아 믿음으로 크게 전진하시는 목사님을 보필해 ‘자잘하고 소소한’ 교회 내부일을 돕고 섬기며 교회 전체의 균형을 유지시키는 일을 담당했던 서 사모는 처음 개척목회 당시 부엌일부터 처음 이민온 교인의 정착도 도왔다. 점점 교회의 규모가 커지면서, 그 전까지 일과 교회직을 병행했으나 84년 본격적으로 교회 일을 맡아 사무를 보게 됐다. 현재는 “전교인 성경공부 교재를 직접 제작하고, 각 선교회(셀그룹) 교사 50명을 직접 훈련하는 사역”도 감당하고 있다.

교회 내에서 많은 일을 감당하지만, 서 사모에게는 굳은 철칙이 있다. 바로 “목사님의 영적 바운더리를 넘어서지 않는 것”이다.

“영적 질서를 넘어서지 않는 것이 정말 중요해요. 목사님께서 하셔야 할 일을 대신 하는 것이기 때문에 심방을 가게 될 때도 있고, 말씀을 전해야 될 때도 있는 데, 그럴 때 항상 목사님 기도를 받고 가려고 합니다.”

또 서 사모는 “사모라는 것을 의식하기 보다 하나님 딸로서 행복하게 주의 집에 거한다는 생각을 가지면 어떤 일이 있을 때에도 편안하고 유동적으로 처신할 수 있다”고 후배 사모들에게 조언도 아끼지 않았다.

40일 기도 두번째 기도제목 ‘사랑의 은사’도 끝내 이루신 하나님이다. 교회 성도들은 무슨 문제가 있으면 곧잘 ‘사모님 한테 얘기해 봐~”라고 말한다. 무슨 얘기든 귀기울여 잘 들어주고 이해해 주기 때문이다. 19살 ‘사랑의 은사를 주세요’하고 기도했던 서옥자 사모는 “불덩이 같은 뜨거움이 가슴에 임하길 기대했지만 바로 응답이 없었다. 그러나 50여년이 지난 지금 커다란 가마솥이 달궈지듯 천천히 그리고 뜨겁게 기도응답은 임했고 한번 뜨거워진 가슴은 잘 식지 않는다.”고 말한다.

어려운 가운데도 도우시고, 인간의 부족함을 완전하심으로 채우시는 하나님을 날마다 체험한다 고백하는 서 사모는 오늘도 주님의 길을 쫒아, 영원한 배필이자 한 교회의 영적 리더를 쫒아 열심히 전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