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정갑 교수
콜롬비아 신학대학원에서 예배학 교수와 한미목회연구소 소장직을 맡고 있는 허정갑 교수의 예배탐방 이야기를 싣는다. 미국교회를 중심으로 예배의 모습을 때로는 진솔하게, 때로는 날카롭게 전달하는 필자의 시각을 존중해 되도록 본문 그대로 싣는다. 탐방한 교회의 역사적인 배경이나 예배 모습 전달에 초점을 맞추고자 편집을 최소한으로 했다. 아래 글에 대한 모든 저작권은 한미목회연구소(www.webkam.org)에 있다. -편집자 주-

찰스 스탠리 목사가 담임하는 교회로 알려진 제일침례교회는 9시와 10시45분 두 번의 주일예배가 있는데 그 중 두 번째 예배를 탐방하였다.

스탠리목사는 1971년도에 부임하여 방송설교를 통하여 전 세계에 잘 알려진 설교자이다. 교회는 1848년도에 16명의 교인으로 세워져 복음을 가장 효과적으로 멀리 그리고 빨리 전함에 그 목적을 두고 있다. 교회성장과 함께 수차례의 증축 및 예배실을 옮겨 다니었고 현재의 2,800석 예배실은 2006년도에 완공되었다고 한다. 교인수는 6,000여명이다. 예배실에 들어가니 극장식 편안한 개인의자로 준비된 공간에 40명의 오케스트라가 앉아서 한꺼번에 오르내릴 수 있는 무대와 그 뒤로 성가대석이 준비되어 있다. 한 눈에 음악을 중요시하는 교회임을 알 수 있는데 체계적인 음악목회를 펼치는 전형적인 남침례교의 대표적 교회이다.

▲찰스 스탠리 목사 ⓒ애틀랜타 제일침례교회 홈페이지
스탠리 목사는 교단의 총회장을 두 번이나 섬기었고 그 영향력은 대단하다. 그러나 아쉽게도 오늘 감기에 걸려 목소리가 좋지 않아 강단에 서지 않고 부목사가 설교를 전하였다. 예배시간이 되자 광고와 기도를 시작으로 잘 훈련된 40악기편성의 오케스트라가 잘 편곡된 곡을 전주로 연주하였다. 이처럼 훌륭한 오케스트라가 매주 예배를 인도하니 파이프 오르간은 물론이고 전자오르간조차 있을 필요가 없는 것이리라. 또한 나누어준 주보에 예배순서가 없다. 그리고 찬송가도 비치되어 있지 않다. 오로지 음악목사의 인도로 대형 스크린에 띄운 가사를 노래하고 여성중창단의 “주의 친절한”과 같이 잘 알려진 전통찬송을 편곡하여 노래하고 회중은 박수로 응답한다.

오늘 새로 온 방문객을 일으켜 세우니 약 200여명이 일어선다. 그리고 앞으로 있을 수난절연극을 광고하는데 이는 사순절을 강조하기 보다는 40일 동안 기도하며 준비하는 신앙생활을 안내하고 계속하여 광고하는데 평화의 인사를 나누면서 보니 동양 사람은 거의 없지만 백인과 흑인이 동등하게 섞인 회중임을 볼 수 있었다. 그러나 단위에 선 교회 지도자는 모두 백인남자이고 성가대도 다수가 백인이 중심인 교회이다. 남침례교는 여성안수에 반대하는 정책을 고집하여 교단의 분립을 초래하며 그동안 고통을 감수하지 않았던가?

▲ⓒ애틀랜타 제일침례교회 홈페이지
음악목사를 중심으로 조직된 남성4중창의 찬양을 딕시랜드 밴드반주에 맞추어 부르고 회중은 박수로 응답한다. 이곳은 안내위원 및 헌금위원도 모두 남자이다. 봉헌을 드리는 동안 입장한 120여명 단원의 성가대는 전곡을 완전히 외워서 오케스트라 반주에 맞추어 찬양한다. 특별히 금관악기의 소리가 아름답다. 오케스트라의 무대가 통째로 내려가고 성가대가 퇴장하자 설교자는 회중 앞으로 나와서 강대상도 없이 성경책만 들고 원고 없는 설교를 시작한다. 예배가 시작한지 35분이 지난시간이다. 설교자는 빌립보서 3:10을 읽으며 강해설교를 진행한다. 사도바울과 같이 우리가 처한 상황에 흔들리지 않고 굳건한 믿음으로 살기를 가르치며 고린도후서 12:1-10을 인용하며 우리의 약함이 강하게 될 것을 전한다. 회중은 거의 모두 성경을 들고 있고 무언가 열심히 적고 있다. 그들은 갖고 있는 성경에 색깔을 칠하고 지퍼가 달린 카버로 성경을 감싸고 있다. 마치 말씀을 보호하는 경건의 표현이기도 하다.

모든 환경이 우리를 주장함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 하에 있음을 철저히 고백하는 모습으로 무대 뒤 초록색 세계지도 중심에 걸린 나무십자가 외에는 기독교적 상징을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예배공간이다. 이들에게는 예배 후에 같이 식사함도 주일만큼은 생략하여 주일에는 친교식사를 제공하지 않고 있다. 하나님과의 긴밀하고 깊은 교제를 위하여서 상징이 필요하지 않음을 주장하고 있음이다. 그러나 단 위에 선 목회자가 거룩한 상징으로 표현되고 있는데 그 영향력은 엄청나다고 볼 수 있다.

교회 안에 예술적 표현과 상징이 존재하지 않기에 우리 삶의 모습 또한 예술적 아름다움의 표현 없이 살고 있지는 않는가? 아름다움과는 거리를 두고 신앙과 상관없이, 아니 오히려 신앙과 반대된다는 인식 속에 살고 있지는 않는가 말이다. 목회자는 양복과 넥타이 정장을 하고 성경을 손에 들고 열어서 한절씩 읽어가며 안내하고 있다. 다음 주는 찰스 스탠리목사의 아들인 앤디 스탠리 목사가 개척한 Northpoint교회를 방문하여 아버지교회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상징과 예배의 모습을 찾아보고자 한다.

설교자는 시편 139편을 찾으라고 한다. 우리의 내면과 중심에 계신 하나님의 모습을 찾고 성령의 인도하심을 의지하며 심장에 있는 소리를 전하고 싶다고 한다. 우리의 고통이 우리를 겸손케 한다고 설명한 바울의 경험, 즉 그가 지니던 몸의 가시가 하나님을 더욱 찾게 한다고 안내한다. 그리고 야고보서 4:6을 읽자고 한다. 또 시편 46:10을 설명한다. 성서인용은 모두 Amplified Bible(AMP)번역을 사용하며 서신서와 시편만 인용하는 설교인데 복음서와 구약의 이야기들은 전혀 언급되지 않고 있었다.

▲ⓒ애틀랜타 제일침례교회 홈페이지
이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강조 속에 삶에 대한 하나님의 처방을 전달하는 설교방식이다. 그러나 회중이 갖추어야 할 조건 중에 약 처방이 효과 있기 위하여서는 그들이 병들어 있음을 인정하여야만 한다. 지난 주일은 독감과 장염으로 교회출석을 하지 못하였다. 병에 걸리면 치유를 위하여 병원과 의사를 찾아가 처방을 받고 약을 먹는다. 자신에게 병이 있음을 인정하는 자 만이 의사를 찾아간다. 그러나 목사와 교회를 찾아가는 사람들은 꼭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다. 내려진 처방을 내 것으로 받고 먹어야 하는데 인정하기 까지 임상진단이 있어야만 하는가? 아니면 우리 모두 죄인임을 고백하는 공동체의 확인이 필요하지 않겠는가? 의사에게 찾아감과 목사에게 찾아가는 차이가 여기에 있다고 본다. 복음주의의 처방식 설교는 회중이 병들어 있음을 서로가 인정하고 삶의 적용으로 바로 옮겨져야 하는 것이 아닌가?

설교가 시작되면서 뒷면에 걸린 전자시계는 50분을 카운트 다운하였는데 50분설교가 1분을 남기면서 설교자는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는 우리 자신의 모습을 지적하며 병적 임상진단을 계속진행하고 있었다. 경제의 악화된 모습에서 직장을 잃은 사람들을 포함하여 모든 사람들에게 진정으로 하나님만 의존할 것을 고백하며 하나님의 은혜가 함께 하시길 간구하는 기도로 설교를 마치었다.

그리고 이어서 교인등록과 새로이 예수 믿기를 초청하며 목회자 팀이 기도하여 줄것을 약속하며 초청의 찬송을 부른다. 처음에는 버라이어티 쇼로 시작된 예배가 그리스도에게로 초청에 응한 사람들을 위한 기도로 마치고 설교자의 위탁으로 예배는 마치었다. 그러고 보니 축도도 생략된 것 같다. 세례예식은 1시에 매주 지하 소예배실에서 따로 진행하며 각 연령별로 나누어진 소그룹 성경공부에 전교인이 참여한다고 한다. 정확히 90분에 끝난 예배는 빌리그래함 전도 집회를 기억나게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