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일주일간 불교 승려들이 우대받는 나라를 다녀왔습니다. 비행기는 물론 모든 사람이 타는 곳에는 승려우대석이 있었습니다. 오히려 노약자 우대석은 보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오가는 비행기 시간을 빼고 일주일 짧은 시간동안 보고 느낀다는 것이 한계가 있지만 이번 태국 여행은 무척 인상 깊은 것이 많았습니다. 무엇보다 화를 내거나 소리 지르는 사람들이 별로 없다는 것, 그리고 인사를 참 잘했습니다. 공항 출입국 직원들 가운데도 깍듯하게 고개를 숙이며 인사하는 것도 보았습니다. 사람들은 걷다가 실수로 부딪히면 두손을 모아 공손하게 예의를 지켰습니다. 방콕은 1천만명이 산다는 대도시인데도 그 복잡한 가운데서 소리를 지르며 싸우는 광경을 한번도 보지 못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참 신기합니다.

1975년 태국과 접경한 나라들인 남부 베트남과 라오스와 캄보디아가 며칠 사이에 공산군들에게 넘어가는 때가 있었습니다. 당시 태국 북동부지역에서는 공산주의 게릴라들을 지원하는 세력이 확장되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공산주의 세력이 확장되어가는 상황 속에서 태국 정부는 물론 군부가 택한 세가지 전략이 있었다고 합니다. 첫째, 밀림 속에서 활동하고 있는 공산주의자들을 퇴치하기 위해 군대동원하는 것을 자제하는 전략을 택했습니다. 둘째, 공산주의 반란군 가운데 무기를 버리고 전향하는 사람들은 어떤 처벌도 받지 않고 옛날 생활로 돌아가도록 했다고 합니다. 셋째, 근본적인 문제해결을 위해 국가적인 에너지를 투자했다고 합니다. 게릴라들이 많이 활동하는 지역일수록 도로를 건설하고 관개수로를 건설하고, 외딴 마을에는 전기가 들어가게 하며 학교와 보건소를 지어주었다고 합니다. 가난한 외딴 지역에서 먹고 사는 것이 어려우면 당연히 공산 게릴라들을 동조하는 사람들이 많이지는 것이기에, 삶의 기본이 되는 먹고 사는 길을 마련해 주는 정책을 펼쳤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태국은 주변국가들 가운데 유일하게 동족상잔의 비극을 경험하지 않은 나라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더 놀라운 것은 공산반란군 지도자들 가운데 태국 정부의 주요 요직에 기용된 사람들이 많았다고 합니다. 그들의 지도력과 밀림에서 게릴라전을 펼칠 정도의 인내력, 그리고 가난한 사람들을 잘 살게 만들려는 열정을 높이 평가해서 비록 한때 공산주의 사상을 가졌던 사람들이지만 정부 요직에 기용했다는 것입니다.

영국에서 잠시 살아 보았다는 오토바이 택시 운전사가 이런 말을 합니다. "태국이 좋아요. 조금 벌지만 물건 값이 싸기 때문에 영국에서 살던 때보다 넉넉하게 삽니다." 길가에 늘어서 관광객을 상대하는 상인들도 좀체로 호객행위를 하지 않는 것이 신기했습니다. 값을 깎으려다가 일부러 더 깎으려고 머리를 쓰느라 뒤 돌아서면 잡으려고 하지를 않았습니다. 자존심이 강하고 자유로운 삶의 자세라고 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아무리 돈이 없어도 도시를 조금 벗어나면 온통 바나나, 맹고, 야자수 등 과일과 채소가 풍부한 나라이기 때문에 돈이 없어 잘 살지는 못하지만 아무리 가난해도 기본적으로 굶어죽는 문제가 별로 없기 때문이라 했습니다. 그러니 왠만해서는 개인의 자유는 물론 자존심을 버리는 일은 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전체 국민의 1% 정도만이 개신교와 카톨릭을 포함한 기독교 인구입니다. 그 이유 가운데 하나는 한번도 외국에 의해 나라 전체가 침략을 당한 적이 없고 서구의 식민지 경험이 없기 때문에 서양 종교에 대한 민족 자존심이 대단히 강하다고 했습니다. 그것만이 아니라 부자 나라는 아니지만 그리 가난한 나라도 아니기 때문에 더욱 그렇고, 불교가 그 국민에게 존경받는 종교이기 때문에 다른 종교가 들어간다는 것은 그만큼 어려운 것입니다. 이런 나라를 위한 선교정책은 옛날 E. Stanley Jones 선교사가 인도 선교를 하며 적용했던 선교전략이 유용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감리교 선교사였던 존스목사님은 인도 독립운동의 아버지인 마하트마 간디와 함께 일을 하면서, 기독교는 인도인들을 존중하고 사랑하며 인도가 영국으로부터 독립하는 일에 도움이 된다는 신뢰를 얻는 선교정책을 폈습니다. 그래서 크리스챤 학교를 세우는 일을 많이 했습니다. 오늘날도 태국과 같은 나라에서 선교를 하려고 하면 첫째, 삶에서 불교인들 보다 더 모범이 되는 삶의 열매가 있어야 할 것이고, 둘째는 기독교가 태국 문화를 파괴하려는 종교가 아니라 그 나라를 더 좋은 평화와 사랑의 나라로 만드는 일에 함께 할 수 있는 종교라는 것을 보여주어야 할 것입니다. 그렇지 않아도 선교사님 말씀이 얼마 전에 태국 왕비가 어느 모임에서 크리스챤들은 합력하여서 일을 잘 하는 모범을 보이고 있으니 불교 승려들도 그런 것을 배우면 참 좋을 것 같다는 말을 해서 기독교 선교활동에 큰 힘을 얻었다고 합니다. 더구나 한류의 인기는 대단해서 초등학교나 중고등학교에 한국 단기선교팀들이 와서 태권도 시범과 부채춤 같은 문화행사를 하고 짧은 설교를 하는 것을 허용하는 것만이 아니라 학교 교장들이 좋아한다는 말도 들었습니다.

제게는 어린 태국 신학생들의 순박한 모습과 열정적으로 통성기도하는 그 모습들이 인상깊게 남아있습니다. 신학생들은 대부분 태국의 기득권 세력인 타이족이 아니라 국경지역의 소수민족 산족출신들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시골 청년들 같이 더 수줍음이 많고 순박한 아름다움이 많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