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과에서는 지난과에 이어서 교부들 중 초대교회의 중요한 인물들인 파피아스(Papias), 이레니우스(Irenius), 그리고 터툴리안(Tutulianus)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교부 파피아스는 소아시아의 에베소의 동쪽에 위치한 ‘거룩한 도시’라는 의미를 가진 히에라폴리스(Hierapolis)의 감독이었습니다. 온천지인 이곳은 제사를 드리는 성소가 있었던 곳으로 ‘성소가 있는 도시’(City of the Hieron)라는 의미인 히에라폴리스가 된 것입니다. 참고로 폴리스(Polis)는 헬라어로 도시를 의미합니다.

한글 신약성경은 ‘히레라볼리’로 기록하고 있는 이 도시의 현재 이름은 파묵칼레(Pamukkale)라고 합니다. 파묵칼레라는 이름은 목화의 성(Cotton Castle)이라는 의미입니다. 그 이름의 유래는 그 곳이 오래 전부터 온천지로서 그곳에서 흘러나오는 온천수로 인해 멀리서 보기에 목화로 뒤덮인 성처럼 보인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입니다.

이레니우스에 따르면 파피우스는 사도요한의 제자였다고 합니다. 또 사도요한에 의해 감독직에 수임되었다고 합니다. 나중에 파피아스는 로마제국의 하드리아누스(Hadrianus)황제 때에 로마에서 순교를 당하였습니다. 하드리아누스는 로마의 열네번째 황제로서 76년 로마제국의 식민지인 스페인의 이탈리카라는 도시에서 태어났으며, 당시 트라야누스 황제의 먼 친척이었습니다.

이레니우스는 130~140년경에 로마제국의 속령이던 소아시아 지방에서 출생하여 서머나의 감독 폴리갑의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그는 갈리아지방, 즉 오늘의 프랑스의 리용에 가서 교회의 장로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로마제국의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황제(Marcus Aurelius)의 박해로 리용의 감독 포티누스가 순교한 후 리용의 감독이 되었습니다. 그는 신실한 목회자로서 복음을 전파하고 이단으로부터 양들을 보호하고, 기독교를 변호하는데 힘을 기울였습니다. 특히 그는 2세기 기독교 교리를 전체적으로 정리하고, 신론과 인간론과 구속의 교리를 해설하였습니다.

▲터툴리안
그는 교회적으로는 소아시아 교회의 전통과 로마 교회의 전통을 연합시킨 공헌이 있으며 202년경 셉티미우스 세베루스(septimius severus)황제 치하에서 순교하였습니다. 교부 터툴리안(Tertullianus)은 이레니우스를 “모든 가르침에 대해 호기심이 가장 많은 연구가”라고 말했고, 그리스의 섬 살라미스(Salamis)의 교회 감독이었던 에피파니우스(Epiphanius)는 그를 “성령에 의해 행동했던 사람이며 참된 믿음과 지혜의 은사로 입혀진 사람이며, 이단들의 헛된 소리를 극복하고 승리했던 사람”이라고 평하였습니다.

살라미스 섬과 관련한 역사적 사건이 있습니다. 그것은 B.C. 5세기에 페르시아와 아테네의 해전이 아테네 앞 바다의 작은 섬 살라미스 근처에서 있었는데 그 전투에서 당시 대제국이었던 페르시아가 작은 폴리스(도시국가) 아테네에게 패한 것입니다. 당시 페르시아의 왕은 크세르크세스로서 성경 에스더서에 나오는 아하수에로입니다. 이 전쟁역사와 관련하여 생겨난 음식으로서 살라미소시지라는 것도 있습니다.

교부 터툴리안은 지금의 튀니지 영토인 북아프리카의 카르타고에서 태어났습니다. 그의 본명은 퀸투스 셉티미우스 플로렌스 테르툴리아누스(Quintus Septimius Florens Tertullianus)입니다. 당시 그의 부친은 로마 장교로서 카르타고에서 주둔하고 있었습니다. 터툴리안은 아마도 모든 일에 있어 부지런한 사람이었으며 학문성도 뛰어났습니다. 특별히 로마법에 관해 심오한 지식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직업상 법률가는 아니었지만 분명 차분하고 냉정한 이성을 지닌 인물임에는 틀림없던 것 같습니다. 그는 기독교의 삼위일체(Trinitas)라는 단어를 처음으로 사용한 인물입니다.